<김삼기의 시사펀치> 속인주의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아동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2023.07.17 12:26:42 호수 1436호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이 살해·유기되는 범죄를 막기 위한 출생통보제 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해 ‘유령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고, 지자체가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는 제도다.



감사원이 2015~2022년 기간(8년) 중 의료기관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 2236명의 1%인 23명을 추적해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피해자를 밝히면서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여야 합의가 빨리 이뤄져 법안이 쉽게 통과됐다.

그런데 감사원이 찾아낸 지난 8년 동안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은 실제 6000명을 훨씬 넘었다. 그중 출생신고 의무가 없는 외국인 아동 4000여명을 제외하니 2236명이 된 것이다. 문제는 선진국을 자칭하는 한국이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아동 4000여명에 관해선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법안(제정법)을 발의했고, 출생통보제 법안이 통과되기 2주 전인 6월15일엔 같은 당 소병철 의원도 동 법안을 발의해 현재 이 두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이 법안이 제정법안이라 공청회도 열리고 다각도로 검토된 후 여야 합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법안 통과까진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필자는 아동이 태어난 곳에 출생등록을 하는 속지주의적 요소가 속인주의(부모 국적을 따름)를 채택한 한국 제도와 충돌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출생통보제 법안 지연에 더 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만약 한국 국적법이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면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법안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아동 2236명이 대상인 출생통보제 법안은 사회적 이슈가 돼 쉽게 통과됐지만,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법안은 4000여명의 외국인 아동 실태가 드러나지 않아 법안이 쉽게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지자체와 함께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외국인 아동 실태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최근 경찰청은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 2236명 중 감사원 발표 후 출생신고 된 아동 113명을 제외한 2123명을 조사한 결과 숨진 아동이 지난 6일 기준 27명으로 파악됐고, 수사 의뢰된 867건 중 소재 파악이 안 된 아동만도 677명이 된다며, 숨진 아동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출생등록이 되지 않은 4000여명의 외국인 아동에 대해선 아직 실태 파악은 고사하고 어떤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튼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 7조 1항에 위배되는데도 한국이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이유로 출생신고 의무가 없는 외국인 아동 4000여명을 방치하고 있어 우리가 과연 선진국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법무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체류 외국인은 225만명이고, 이 중 19세 이하 미등록 아동은 5078명으로 추산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농어촌과 노동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면 일손을 구할 수 없는 등 외국인은 이미 우리 사회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국의 외국인 아동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편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자국서 태어난 모든 신생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시민권 제도를 갖고 있다. 이는 미국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 행정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한 수정헌법 14조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 당선된다면 취임 첫날 ‘불법 이민자 자녀에 대한 시민권을 중단하고 원정출산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리고 “시민권 자격을 갖추려면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시민권자이거나 합법적인 거주자여야 한다”는 속인주의적 발언을 했다.

원정출산을 양산하는 출생시민권 제도는 현재 30여개 나라가 시행하고 있다. 주로 미국,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등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다. 이 나라들은 유럽인의 이민을 촉진하기 위해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이민법을 제정하고자 출생시민권 제도를 만들었다.

원정출산은 해당국에 의료, 교육, 복지 등 광범위한 경제적 부담을 지운다. 그리고 여권이 범죄에 악용되면 국가안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제재판소는 국적이 국가와 개인을 연결하는 법률적 고리로서 ‘진정한 유대’가 있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앞으로 원정출산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면서 각국의 규제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뉴질랜드는 이미 국적법을 개정해 2006년 이후 뉴질랜드 원정출산은 불가능해졌다. 대다수 유럽 국가는 속인주의를 원칙적으로, 속지주의를 보완적으로 적용해왔으나 복잡한 반이민 정서를 반영해 과거의 속인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한국은 이 같은 세계적 추세와 반대로 속인주의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켜 속지주의를 보완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독일이나 한국처럼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속인주의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아동 출산등록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고,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속지주의 사각지대에 있는 원정출산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는 셈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