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제3자공화국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2023.03.28 13:14:46 호수 1420호

지난 6일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배상하는 해법을 공식 발표했다. 이는 2018년 대법원 판결로 배상 의무가 확정된 일본의 피고 기업 대신 정부(행안부) 산하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이 배상금을 변제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정부의 제3자 변제 발표가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용기 있는 첫걸음이라며 ‘미래와 국익을 향한 대승적 결단이자,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향한 윤석열정부의 강한 의지’라고 호평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윤정부가 일본의 사죄와 반성은 뒷전으로 둔 채 조공 보따리부터 챙기고 있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굴욕·굴종뿐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해 “검찰이 억지 쓰는 제3자 뇌물죄”라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검찰이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이 대표를 제3자 뇌물죄 혐의로 수사 중인 것을 빗대 비판한 발언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두산건설로부터 분당구 정자동 병원 부지 3000여평을 상업용지로 변경해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인 시민 축구단 성남FC에 2014∼2016년 55억원 상당의 광고 뇌물을 공여토록 한 뒤 용도 변경을 해준 것으로 판단해 지난달 16일 대장동 배임, 위례 부패방지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제3자 뇌물죄도 함께 적용했다. 

제3자 변제는 제3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타인의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고,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약속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제3자 변제와 제3자 뇌물죄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굵직한 사건일수록 당사자가 아닌 제3자까지 끌어넣는 ‘제3자 프레임’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제3자는 어떤 사건이 진행될 때 구경꾼이나 협조자 또는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자다. 그런데 최근 굵직한 사건에 제3자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게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가적으로 오랜 숙제였던 큰 사건을 해결하거나 거물 정치인의 수사에 과거엔 듣지도 못했던 제3자 프레임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자 프레임 이전에는 제3자 프레임과 비슷한 의미로 어떤 범위나 한계 안에 모두 끌어넣는 포괄적 프레임이 있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굵직한 사건엔 포괄적 협력, 포괄적 동반자, 그리고 거물 정치인 수사엔 포괄적 뇌물죄 등 포괄적 프레임이 적용됐다.

전두환, 노태우 등 두 전직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대가성 없는 돈을 받아 구속될 때 헌법상 막대한 권한을 지닌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포괄적 뇌물죄가 처음으로 적용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본인이 아닌 가족이 받은 돈 때문에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됐다.

그 후 법에도 없는 포괄적 뇌물죄는 20여년 동안 여론의 비난을 받다가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것을 끝으로 사라졌고, 형법에 규정돼있는 제3자 뇌물죄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농단 사건 때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법원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제3자인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낸 것은 대통령으로 인해 롯데가 혜택을 얻을 것이란 기대에 이뤄진 것이기에 이를 부정한 청탁으로 보고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다. 이때부터 포괄적 뇌물죄엔 있지도 않은 제3자가 등장한 셈이다.

이제는 대통령도 제3자 뇌물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대통령이 해외 기업을 유치하거나 국내 기업의 투자를 위해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주거나 세금도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해야하는데, 제3자 뇌물죄를 의식해 소극적인 국정운영을 하면 안 된다. 제3자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정부가 제3자 프레임에 갇혀 국정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전 정부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전 정부는 국정운영 파트너가 아닌 제3자일뿐이다. 

제3자 변제와 제3자 뇌물죄를 혼용해서도 안 된다. 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에서 당사자는 일본 기업과 강제동원 피해자고, 제3자는 ‘지원 재단’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당사자를 정부와 지원재단으로, 그리고 제3자를 강제동원 피해자로 바꿔 제3자 뇌물죄라고 주장했다. 

언뜻 보기엔 이 대표가 언급한 제3자 뇌물죄 주장이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맞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요 당사자인 일본 기업이 빠져 있어 설득력이 없다. 민법에 규정된 제3자 변제와 형법에 규정된 제3자 뇌물죄의 제3자는 성격 자체가 같을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 주요 이슈가 제3자 변제, 제3자 뇌물죄, 제3자 탓이라는 제3자 프레임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제3자공화국’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요 이슈에 당사자가 아닌 제3자를 끌어넣는 건 어떤 일이 애매모호하게 평가되고 있다는 증거다. 안타까운 ‘제3자공화국’이 아닐 수 없다.

먼 훗날 우리나라가 제3자 프레임이 극에 달해 3차원 세계에선 존재하지도 않은 제4자를 언급하며 제4자 변제, 제4자 뇌물죄, 제4자 탓이라는 제4자 프레임에 갇혀 ‘제4자공화국’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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