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호리 아트스페이스에서 민병훈 작가의 개인전 ‘영원과 하루’를 준비했다. 민병훈은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사랑이 이긴다>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민병훈은 첫 개인전 ‘영원과 하루’에서 제주도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감성적이고 명상적인 시점으로 포착한 영상 20점을 선보인다. ‘천사의 숨’ ‘깃털처럼 가볍게’ ‘영원과 하루’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할 때’ ‘볼수록’ ‘안개처럼 사라지리라’ 등 제목에서 연상되듯 민병훈 특유의 감성적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구성됐다.
여유로움
민병훈은 수년 동안 제주에서 바다와 숲을 거닐며 자연의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흔히 ‘불멍’ ‘숲멍’ ‘바다멍’(불·숲·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행위)처럼 온몸이 나른해지고 더없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오랜 시간 지친 모두에게 적절한 심리적 위로와 감성적 치유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에는 삶의 내밀한 감수성이 묻어난다. 단순한 일상의 표면에 밀착된 연출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시간적 사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민병훈은 평범한 자연의 모습을 느슨한 시간으로 연출했다.
감성적 영상미 돋보여
자연의 이미지 재해석
초고속 카메라에 포착된 일상의 순간들이 매우 느린 속도로 상영되는 모습에선 묘한 편안함과 신비로운 안도감까지 느껴진다. 관람객들은 그 안에서 어떤 풍경이 반복되는지, 자연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언뜻 단순하고 지루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그 너머엔 스쳐 지나쳤던 자연의 생생한 내면이 존재한다. 민병훈의 카메라는 우리가 어떤 새로운 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에 답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카메라 렌즈의 객관적 기록을 기반으로 하되,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압축된 이미지의 조각을 날 것 그대로 모니터에 옮겨온 셈이다.
민병훈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영화의 고정된 상을 지속하면서도 변형된 영화 형식의 자유로움과 역동성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단편부터 장편까지 장르와 장르, 현실과 환상 사이의 벽을 빠르게 넘나들며 하나의 키워드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 낸 영상미로 큰 주목을 받아왔다.
초고속 카메라로 포착한
일상의 순간 느린 속도로
관람객은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영화 속 세계의 고정된 질서를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민병훈이 기존의 질서를 뒤틀고 예술적 순간에만 몰입하지 않고 항상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통찰자적 시선을 고정해왔다는 점도 확인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민병훈이 촬영한 미디어 영상작품도 소개된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제주 곳곳을 돌아다닌 여정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번 영상을 통해 자연 이미지의 순수한 조형성과 시공간의 리듬을 자유롭게 실험하고자 했다. 이는 아방가르드 영화 운동 성격의 ‘실험 영화’나 자신의 사유를 영화 형식 속에 녹여낸 ‘시적 필름’의 탁월한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생동감
김나리 호리 아트스페이스 대표는 “민병훈은 다큐멘터리 문법의 비관습적 변주와 확장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시도했다. 이번 작품은 기존의 영상 미술 형식을 보다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에 새로운 생동감과 감성적 힐링을 전할 수 있는 전시로 기억되리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다음 달 19일까지.
[민병훈은?]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을 졸업했다.
1998년 <벌이 날다> 2001년 <괜찮아, 울지마> 2006년 <포도나무를 베어라>로 토리노국제영화제 대상, 코트부스국제영화제 예술 공헌상,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비평가상,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 은상 등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13년 <터치>로 마리클레르영화제 특별상 수상 및 가톨릭 매스컴상을 수상했고 영상자료원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 함부르크영화제와 상하이영화제 등에서 <사랑이 이긴다>, 전주국제영화제 및 실크로드국제영화제 등에서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가 초청 상영됐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