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고려제강 오너 일가가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버지의 주식 증여 결정으로 인해 아들이 최대주주로 부상한 모양새다. 타이밍도 완벽했다. 주가가 한창 떨어진 시점에 증여가 이뤄지면서 증여세 절감 효과를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제강그룹은 고 홍종열 창업주가 1945년 설립한 고려상사를 모태로 한다. 홍 창업주는 해방 후 기반시설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와이어로프와 어군탐지기 등 수산용구를 수입해 팔았다. 이후 1961년 고려제강소를 세웠고, 1969년 회사 이름을 고려제강으로 변경했다.
어느새 꼭대기
고려제강그룹은 ▲고려제강 ▲고려강선 ▲홍덕산업 ▲홍덕섬유 ▲서울청과 ▲케이에이티 ▲케이앤에스와이어 ▲키스트론 ▲키스와이어홀딩스 ▲석천 등으로 구성돼있다. 키스와이어홀딩스를 제외한 다수의 계열 회사는 순환·상호출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핵심 계열회사인 고려제강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석천 지분 6.5%를 보유 중이며, 석천은 고려제강 지분을 14.1% 갖고 있다. 고려제강은 홍덕산업 지분 32.5% 쥐고 있으며, 홍덕산업은 석천 지분 23.9%를 소유하고 있다. 그 결과 ‘고려제강→홍덕산업→석천→고려제강’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구축된 상태다.
그나마 그룹의 순환·상호출자 고리는 2년 전과 비교하면 다소 단순해진 형태다. 홍덕산업과 고려제강 사이의 상호출자 관계가 끊어진 덕분이다.
2011년까지만 해도 홍영철 회장 일가는 고려제강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을 직접 지배했다. 하지만 이듬해 그룹 지배구조 재편 작업과 함께 키스와이어홀딩스, 석천, 홍덕 등이 순환·상호출자 관계를 형성하면서 오너 일가의 계열회사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다소 희석됐다.
그룹 계열회사 간 순환·상호출자 고리는 고려제강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간접 지원하는 방편이 되고 있다. 현재 그룹은 홍 창업주의 차남인 홍영철 회장이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홍 회장과 그의 장남인 홍석표 사장은 고려제강 지분을 각각 16.5%, 15.03% 보유 중이다.
또 다른 오너 일가 구성원인 ▲홍희연(3.95%) ▲홍순자(1.41%) ▲신가윤(0.14%)▲홍정민(0.14%) ▲홍준형(0.08%) 등도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또한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키스와이어홀딩스도 고려제강 지분 15.3%를 쥐고 있다. 키스와이어홀딩스가 100% 오너 가족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너 일가의 고려제강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50%를 넘긴다. 여기에 석천(14.1%), 문화재단1963(1.0%)까지 포함시키면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67.98%에 달한다.
주가 하락이 곧 승계 기회
장남, 어느 새 최대주주
순환출자와 상호출자가 혼재된 그룹 지배구조는 향후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이 예상된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업 지배구조 투명화 요구가 거세지는 데다, 중견기업도 지배구조 개선 대상에 포함될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제강그룹은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에 속하지 않은 만큼 총수 일가 사익편취(내부거래) 및 순환출자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견기업으로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넓힐 경우 키스와이어홀딩스, 홍덕산업, 석천 등이 공정위의 사익편취 대상으로 지정될 수 있다.
체제 전환이 이뤄질 경우 키스와이어홀딩스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될 것으로 점쳐진다. 홍 회장과 홍 사장이 50.25%, 49.75%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키스와이어홀딩스는 일찌감치 지배구조의 최상단을 점유한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 오너 일가는 고려제강 주가 하락을 틈타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홍 사장이 주식 장 폭락을 틈 타 대규모 주식 증여 과정을 거치며 그룹 후계자인 최대주주로 급부상했다.
지난달 25일 홍 회장은 홍 사장에게 115만주(5%)를 증여했다. 이날 종가는 1만9550원으로, 종가 기준 225억원 규모다. 증여 이후 홍 사장의 지분율은 기존 15.07%에서 20.07%로 변경됐고, 홍 회장의 지분율은 16.49%에서 11.49%로 감소했다.
고려제강 오너 일가가 주가 하락 시기에 맞춰 증여를 결정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홍 회장은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2월4일 약 35억원에 해당하는 20만주를 홍 사장에게 증여한 바 있다.
주가 하락 시점에 주가가 하락하면 증여세를 아끼는 데 유리하다. 주식을 증여할 때 부과되는 세금은 결정일 전후 2개월(총 120일) 평균주가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주가가 하락한 시점에 증여가 이뤄지면 증여세 절약을 기대할 수 있다.
8부 능선 넘었다
다만 고려제강의 3세 승계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홍 회장이 건재한 데다, 홍 사장은 아직까지 대표이사에 임명되지 않았다. 고려제강은 홍영철 회장이 2017년 3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