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한종해 기자] TV가 사라졌다. 그리고 삼성이 떨고 있다. TV도 그냥 TV가 아니다. 올 하반기 내 출시 예정인 최첨단 OLED TV다. 경쟁업체에 넘어갈 경우 차세대TV 기술유출이 우려된다. 삼성전자는 경찰 조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기술유출을 노린 경쟁사의 계획적인 도난에 비중을 두고 있다.
지난 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배송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50여대 중 2대가 사라졌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그랬는지 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단지 '무엇을' 가져갔는지만 알려진 상태다.
사라진 OLED TV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차세대TV 제품으로 지난달 31일부터 6일 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이파)'에 전시될 예정이었다.
도난? 분실?
해당 제품은 지난달 21일 수원사업장에서 한국의 물류업체 '이플러스 엑스포(이하 엑스포)'에 전달됐다. 엑스포는 삼성전자의 해외 전시를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엑스포는 2차 배송분으로 OLED TV 30대를 컨테이너 트럭에 실어 인천공항으로 보내 인천세관의 통관절차를 밝았다. 1차분 25대에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세관 통관절차를 마친 2차분 TV 30대는 지난달 24일 대한항공 화물기 편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통관절차를 거친 TV들은 트럭 1대에 실려 5시간 거리인 독일 베를린 만국박람회장에 28일 도착했다. 25~26일이 주말이었던 탓에 운송과정이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보고 있다.
28일 오전 전시회장에서 삼성전자 직원이 컨테이너를 열었고 그제야 TV 2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 TV 28대와 사라진 TV가 담겨있었던 상자만이 남아있었던 것. 삼성은 곧바로 현지경찰과 경기지방경찰청에 이를 신고했다. 삼성전자가 독일과 한국 양국 경찰에 신고를 의뢰한 것은 TV사 어디에서 도난당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비물량이 있어 전시에는 문제가 없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독일 현지에서 전시장으로 이동하던 중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OLED TV 같은 최첨단 제품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뜯을 수 없게 개별 제품마다 철제 도난방지 특수포장을 해 운반하는데, 만약 이 제품이 비행기에서 사라졌다면 공항에서 인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확인이 됐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측도 "TV가 사라진 시점이나 장소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나흘간의 독일 현지 운송과정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항공사 측도 해당제품을 화물기에 싣고 내리면서 무게를 확인했기 때문에 항공운송 과정에서는 분실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분실 사건에 대한 책임은 분실이 발생한 구간의 물류를 담당한 업체가 지게 된다.
기술유출 시 수조원대 피해 예상, 경찰조사 의뢰
경쟁사 큰 관심…입수하면 개발기간 큰 폭 단축
이에 운송을 담당했던 엑스포와 독일 현지 운송을 담당했던 대한항송의 위탁업체가 핵심 조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OLED TV는 화면 뒤편에서 빛을 쏘아주는 백라이트가 없다. OLED 자체가 빛을 내는 것. 이렇다보니 TV 몸체의 두께와 무게는 LCD TV의 3분의 1수준이다. 응답속도도 LCD보다 1000배 이상 빠르고 잔상이 거의 없어 업계에서는 향후 5년간 시장 규모가 500배 이상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꿈의 TV'라고 불리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OLED TV분야에서 LG전자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형 패널 제작비용이 엄청난 데다, 불량률도 높아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들도 아직 대형제품 양산에는 성공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기술 유출을 노린 절도라면 삼성전자에는 상당한 규모의 손실이 예상된다. 개발비에만 수조원이 투입된 데다 이 기술을 취득한 경쟁업체가 등장할 경우 전 세계 시장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니와 파나소닉은 OLED TV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개발에 나섰고 대만과 중국 TV제조사도 OLED TV 개발에 적극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OLED TV를 입수한다 하더라도 곧바로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내기는 어렵지만 기술 수준 추격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쟁업체들이 단순히 제품을 뜯어본다고 해서 쉽게 따라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아니지만 기술력 격차를 큰 폭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도 단순 사고로 인한 분실보다는 기술 유출을 노린 도난에 더 가능성을 두고 있다. 화면 뒤쪽에 주요 핵심 부분을 붙여 테두리를 극소화하는 삼성전자 TV 특유의 디자인 노하우도 유출 가능성이 있다.
막대한 피해 예상
삼성전자는 2001년 4월 미국 국제방송장비전시회(NAB)를 앞두고 63인치 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TV를 도난당한 적이 있다. 현지 힐튼호텔 로비에서 협력사 직원을 사칭한 사람이 PDP TV를 인수해 달아났다. 해당 제품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대형TV로 전 세계에 3대밖에 없었다. 경찰조사결과 힐튼호텔 종업원이 제품을 탐낸 나머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2002년 10월에는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 인근 창고에서 450만달러(약 56억원) 상당의 D램, S램 등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카드 칩 등 비메모리 반도체가 들어 있던 290개의 상자를 도난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