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지팡이' 경찰만 까는 K-장르물의 한계

2021.07.06 10:49:12 호수 1330호

어쩌다 동네북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1986년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34년이 지났다. 과학수사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과학수사력은 그사이에 해외에 수출할 정도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살인의 추억은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 빠른 시간안에 범인을 잡는다. 경찰의 수사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영화계가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무능에만 머물러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빨리 해결된다. 한국의 과학 기술은 세계 최고다. 언론에 공개되는 사건은 미제 사건이다.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의 사건이다. 전체의 단면만 보고 경찰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발언은 없었으면 한다.”

무능 이미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단골 취재원인 박지선 숙명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유튜브 채널 ‘그알저알’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의 말처럼 국내의 과학수사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를 34년 만에 검거한 것은 국내의 과학 기술력과 경찰의 집요함이 일궈낸 쾌거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에 따르면 현재 경찰은 사망한 지 오래된 시신의 지문이 심하게 건조됐거나 물에 불어서 지문 식별이 힘든 경우에도 지문 추출이 가능하다.

전국에 CCTV가 깔려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강도,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일으키고 경찰의 수사망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최근에는 연쇄살인범이 되기조차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한 번 죽이면, 다른 사람을 죽이기 전에 잡히기 때문에 연쇄살인이 어렵다는 것.

오히려 단 한 번의 살인으로는 형량이 적어 이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했을 때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다. 연쇄살인이라는 단어가 현실에서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내 미디어계는 장르물 범람의 시대에 돌입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장르물이 이른바 대세의 흐름을 보인다. 장르물이 다루고 있는 소재가 대부분 강력 범죄다.

스릴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스펜스다. 사건과 인물 간의 갈등이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범인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는지, 주인공이나 공권력이 이 범인을 어떻게 잡아내는지를 밀도 있게 그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범인 세력과 주인공 세력이 똑똑하게 상대의 심리나 의중을 간파하면서, 속고 속이는 싸움이 벌어질 때 관객은 장르적 쾌감을 느낀다. 좋은 스릴러 영화의 공식 중 하나는 경찰의 잘못된 수사에 개연성을 부여한다는 것.

실수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명확히 제시하며, 범죄자를 잡는 세력을 단순히 무능하게만 그리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발신제한>과 <미드나이트>는 앞선 수작의 공식과는 반대로 경찰의 무능에만 의존한다. 작품 속 경찰이 무능하지 않았다면 두 영화는 러닝타임조차 채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실에서처럼 상식적으로만 수사했어도 사건이 종결됐을 테니 말이다. 

특공대 뚫은 혈혈단신 은행원
피 튀기며 싸워도 조사 안 해?

<발신제한>은 자동차 폭파사건으로 인해 파생된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성규(조우진 분)는 이름 모를 상대로부터 전화로 협박을 받고 있다. 그러던 중 성규 후배의 자동차가 폭발한다. 이 사건을 총괄하는 경찰서장(류승수 분)은 몇 가지 단서만으로 성규가 사건의 진범이라고 확신한다. 

성규가 자신이 협박당하고 있고, 자동차에서 내리는 순간 차가 폭발한다고 호소하고 있음에도 서장은 의심을 풀지 않는다. 심지어 폭발물이 설치된 차에 성규의 자식들이 타고 있었음에도 총구는 그에게 향한다.


경찰로부터 지속적인 의심을 받은 탓에 위협을 느낀 성규는 도주를 결심한다. 그리고 경찰 특공대가 둘러싸고 있는 현장을 가볍게 돌파한다. 특수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은행장 한 명에게 너무 쉽게 경찰 통제선이 뚫린 것이다.

실소가 나올 정도로 허술한 장면이다. 이때부터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드나이트>도 헛웃음이 나는 건 마찬가지다. 실종된 여동생 소정(김혜윤 분)을 찾던 종탁(박훈 분)은 파출소에서 사라진 동생의 실마리를 찾는다. 우연히 소정을 본 뒤 경찰에 알리러 온 경미(진기주 분)를 만나서다. 

파출소에는 소정을 죽이려 했던 연쇄살인범 도식(위하준 분)도 함께 있었다. 경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도식이 진범인 것을 안 경미가 종탁에게 사실을 말하려 하자, 도식은 종탁을 노린다.

해병대 출신인 종탁은 칼을 든 도식을 순식간에 제압한다. 그러던 중 경찰이 들이닥친다. 경찰은 칼을 내려놓으라는 말을 듣지 않자 종탁을 전기충격기로 사용해 기절시킨다. 

놀라운 점은 이때부터다. 흉기를 들고 다투던 두 사람의 혈흔이 낭자하고 파출소가 심하게 훼손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의심없이 도식을 풀어준다. “왜 싸움이 벌어졌는지” “흉기는 어디서 났는지” 등 정황을 알아보려는 생각조차 없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연쇄살인범을 놓아준다. 

이후부터 영화가 아무리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도, 파출소 신에서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과연 현실의 경찰이 이토록 무지하고 나태한지 의문이다. 경찰 인력 중 악한 마음으로 권력을 활용하는 이도 있고, 때론 초동수사에서 미흡한 점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 무책임한 경우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경찰의 무능에만 의존하는 허술함이 분명한 서사는 아무리 좋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열연하고, 화두로 던지는 메시지가 의미 있어도 몰입을 방해한다. 화려한 편집 기법을 활용한 카체이싱 장면이나, 눈을 사로잡는 액션도 의미가 퇴색된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해 MBC <실화탐사대> SBS <궁금한 이야기 Y> 등 사건 사고를 기반으로 수사의 전반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도 열풍이다. 경찰이 진범을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공권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이미 다각도로 체험한다. 

허술한 서사

국내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영화계의 시선은 여전히 30여년 전에 향해 있다. 창작자들이 너무 쉬운 길로만 가려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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