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뛰는 '묻지마 칼부림' 실태

2012.08.27 18:01:50 호수 0호

혼자 죽으려니 억울해서 '푹'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올해 8월은 암울했다. 정확한 범행동기도 없는 '묻지마 범죄'가 하루를 멀다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기승을 부렸기 때문. 묻지마 범죄의 용의자는 대부분 길 가는 혹은 주택가에 난입해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거나 가차 없이 폭행을 가한다. 치안이 불안정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다음 피해자가 자신이 될까 살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15분 동안 칼부림이 난동한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는 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후 월 20만원의 고시원에서 살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던 김모씨. 김씨는 전 직장동료들이 자신을 왕따 시킨다는 생각에 이를 견디다 못해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하려던 중 자신만 죽는 것이 억울해 그들을 살해할 계획으로 과도 5개를 구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퇴근시간에 맞춰 김씨는 여의도 한복판에서 전 직장동료 두 명을 칼로 찌른 후 시민들이 그를 저지하려고 다가가자 지나가던 행인 2명에게도 칼부림을 가했다. 이에 총 4명이 흉기에 찔려 부상을 입고 그 중 한 여성은 중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난과 왕따로

묻지마 범죄는 8월18일 의정부역 칼부림 난동사건으로 시작을 알렸다. 유모(39)씨는 이날 오후 6시30분쯤 "왜 내 팔에 침을 뱉냐"고 말한 고등학생과 시비가 붙어 우발적으로 공업용 커터칼을 휘둘렀고 1호선 전동차 내에 있던 유씨와는 연고가 전혀 없는 승객 8명을 향해 무분별하게 흉기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렸다.

이에 유씨와 시비 붙은 고등학생을 포함한 승객 8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유씨는 의정부역 칼부림 이후 현장에서 120m 쯤 달아나던 중 뒤쫓아 간 공익근무요원, 시민 등과 대치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살인미수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피의자 유씨는 "전동차 안 바닥에 침을 뱉는데 고등학생이 시비를 걸어왔고 도망가려는데 계속 ?아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명했지만 칼을 왜 소지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

의정부역 사건 다음 날인 19일에는 인천 부평에서 두 남성이 지나가던 여성 행인 3명을 무차별로 폭행한 일이 발생했다. 용의자 A(25)씨와 B(25)씨는 부평시장 인근 골목을 지나다 마주 오는 여성 행인 3명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했다. 그들은 여성 3명을 주먹과 발로 수십 차례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 중 1명은 코뼈가 부러지고 앞니가 빠지는 중상을 입었다.

폭행을 당한 여성 윤모씨는 "길을 걷다가 술취한 남성 2명을 피해 지나갔으며 부딪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또 "이들이 갑자기 뒤쫓아 와 '야 거기서 봐'라고 말하며 함께 걷던 친구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민중의 지팡이라 불리는 경찰이 시민의 SOS를 묵살하고 홀연히 떠나버렸던 것. 두 남성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하던 중 여성 3명 중 1명이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나와 인근에 있던 순찰차에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관은 "먼저 접수된 절도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출동 중이다. 2분 뒤에 올 순찰차를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현장을 지나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 소식을 접한 수많은 네티즌들은 경찰의 늦장대책과 폭행사건 현장을 방관했다는 점에 분개했고 "시민의 도움을 묵살한 경찰을 해고하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일주일새 도심 한복판서 7번 칼부림 난동 
극심한 생활고·외로움 견디다 못해 범행

21일 오전은 더 끔찍했다.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일대에서 술에 취한 강모(39)씨가 술집주인 유씨를 포함한 4명에게 칼을 휘둘러 살인 및 중경상을 입혔다. 강씨는 파장동의 한 술집에 들어가 업주 유씨를 흉기로 위협한 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유씨의 목부위를 찔러 중상을 입혔다. 이후 술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는 손님 임씨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복부 부위에 상해를 입힌 뒤 도주했다.

강씨의 범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범행을 저지르고 정자동으로 달아난 강씨는 술집에서 500m가량 떨어진 단독주택에 들어가 일가족에 흉기를 휘둘러 고모(65)씨가 살해됐고, 부인 이모씨와 아들은 경상을 입었다. 강씨는 몸을 숨기려 단독주택을 찾았고 마침 문이 열려있던 고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후 거실에 있던 고씨가 소리치자 복부와 가슴부위를 10여 차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또 다른 황당한 살인동기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과 11범인 강씨는 S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바가지를 씌운 후 화가 났고 마침 과거에 자신을 홀대한다는 느낌을 준 H주점이 눈에 보이자 들어가 범행을 벌인 것이다. 강씨의 어처구니없는 동기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같은 날 울산에서도 묻지마 범행은 계속됐다. 21일 밤 이모(27)씨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단골 슈퍼마켓에 평소처럼 들어갔고 갑자기 여주인(53)에게 다가가 흉기로 배를 한차례 찔러 살인미수로 경찰에 구속됐다. 여주인은 전치 2주의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수사 중 이씨가 매고 있던 가방에는 그동안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듯 식칼 1개, 커터칼 7개, 망치, 드라이버, 마스크 등이 들어 있어 계획적 범행인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같이 죽으려고 했다" "느낌대로 갔다" "끌리는 대로 했다"며 횡설수설했다.

이씨는 10여 년 전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방 2칸의 단독주택에 혼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의 방에는 TV 1대만 놓아져 있었고 그 흔한 컴퓨터마저 없었다. 휴대전화는 있었지만 이미 통화기능이 안 되는 먹통이었다. 친구도 없었다. 중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으로 뾰족한 직업도 없었다. 그는 이혼한 부모가 한번에 20만원씩 주는 용돈으로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도 없이 홀로 집안에 틀어박혀 살아온 완벽한 은둔형 인간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왜 최근 우리나라에 묻지마 범죄가 연일 지속되는 것일까. 한 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의 처지가 똑같다.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이라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장기전으로 치닫으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실직자 등 경제적 낙오자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낙오자로 찍힌 사람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결국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해 버리고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쉽다"고 말했다.

히키코모리의 최후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들의 묻지마 범죄를 보고 듣고 나면 비슷한 범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는 게 사람 심리"라면서 "다른 사람과 쉽게 소통하지 못하고 혼자 삭힌 억울함, 분노, 불안 등이 묻지마식 범죄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모방범죄로 엇나갈 가능성이 많은 묻지마 범죄.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전예방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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