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 잠적 전말

2012.08.29 15:18:30 호수 0호

희대의 사기꾼 '제2의 조희팔' 가능성 크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납치·감금, 살해, 밀항, 고도의 자작극…' 40일이 넘게 행방이 묘연한 삼부파이낸스의 양재혁 전 회장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키는 양 전 회장이 아닌 하인봉 ㈜CKA 대표가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부파이낸스 부도 잔여자금 2000억여억원을 사이에 둔 모종의 거래는 이뤄졌을까? 두 사람의 관계를 추적해 봤다.



1999년 9월 12일 파이낸스업계 대표주자였던 부산 삼부파이낸스의 양재혁 전 회장이 검찰에 구속됐다. 당시 양 전 회장은 고객투자금 1116억원을 빼돌려 한결파이낸스 등 5개의 계열사를 설립했고, 그 중 270여억원은 고급 빌라 매입 및 개인 유흥비로 탕진한 사실이 밝혀져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4년6월을 복역하고 지난 2004년 출소했다.

삼부사태 장본인

양 전 회장은 유사수신행위로 부산 서민경제를 뿌리째 뒤흔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1996년 1월 부산 삼부파이낸스를 설립한 뒤 '연수익률 30%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그러나 1999년 회사설립 불과 4년 만에 내부 부실운영과 이자 돌려막기에 의한 경영악화로 파산했다. 당시 부산지역 90여개 파이낸스사 중 '삼부사태'로 29개 업체가 파산했고 피해액만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사가 부도나면서 삼부파이낸스에 돈을 맡긴 투자자 6500여명의 2280억원이 날아갔다. 그 와중에 양 전 회장은 1000억대의 고객투자금을 횡령하려 했다. 그리고 구속된 것.

당시 이 사건의 피해인원이 3만여명으로 추산돼 부산경제에 막대한 파장을 몰고 왔다. 특히 높은 수익률 보장이라는 대대적인 광고에 속은 부산지역 영세서민들은 피땀 흘려 번 돈을 삼부사태에 날린 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양 전 회장은 2004년 출소 후 은닉해 둔 부도 잔여자금 2000여억원 상당을 손실 정산법인을 통해 찾으려 했다. 하지만 정산법인 ㈜CKA 대표 하인봉씨를 중심으로 몇몇 간부들이 이미 나눠먹기로 횡령한 후여서 그의 계획은 무산됐다. 그리고 하씨는 양 전 회장이 출소하자마자 삼부파이낸스 잔여자금 대부분을 들고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를 벌여 ㈜CKA 소속직원 2명을 58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했고 잠적한 하씨를 수배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 양 전 회장은 다시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됐다. 지난달 13일자로 양 전 회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하씨의 소재와 삼부파이낸스 부도 잔여자금 2000여억원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납치·감금·피살·해외도피 등 고도의 자작극? 
은닉된 수천억원 둘러싼 미스터리 실종사건

현재 이 '의문의 실종' 건을 두고 납치?감금설, 살해설, 밀항설, 자작극설 등 여러 의혹과 관측이 분분하게 진행 중이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의 주요 열쇠는 양 전 회장이 아니라 삼부파이낸스 부도 잔여자금을 관리해오던 하씨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부산 연제경찰서는 '양 전 회장이 지난달 13일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하씨를 만나러 속초로 간다며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실종신고를 지난달 19일 접수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를 나선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양 전 회장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태.

경찰의 발표를 종합하면 양 전 회장의 실종엔 미스터리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찰의 조사결과 양 전 회장은 지난달 13일 오후 2시쯤 '하씨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섰고 그 뒤 3시간 만인 오후 5시13분 속초항 방파제 부근에서 종적이 끊겼다. 경찰은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정상적인 배터리 방전이 아니라 누군가 배터리를 강제 분리한 신호가 기지국에 잡힌 것을 확인했다. 여기까지 종합해 보면 양 전 회장은 하씨에 의해 납치나 감금, 나아가 피살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열흘 후 CCTV에 양 전 회장이 찍히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실종 열흘 뒤인 지난달 23일 오후 4시, 양 전 회장의 아들의 주거지 인근 한 대형마트에서 양 전 회장이 아들 명의의 카드로 2만원 상당의 물건을 사는 장면이 CCTV에 찍힌 것이다. 또 화면 분석 결과 그가 평소 즐겨 입는 개량한복 차림으로 여유롭게 쇼핑한 것으로 확인돼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평소 양 전 회장은 가족들에게 "내가 하씨를 만나러 갈 수 있는데 혹시 연락이 두절되면 실종신고를 해라"라는 당부를 했다고 전해졌다. 이로써 납치·감금?살해 가능성은 대폭 낮아졌다.

이에 경찰 관계자들은 '양 전 회장과 하씨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 일각에선 '양 전 회장이 하씨로부터 잔여 자산을 넘겨받은 뒤 해외도피를 위해 잠적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섰다. '이미 양 전 회장은 이미 해외에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양 전 회장 주변 인사들의 말은 이를 뒷받침 해준다. 양 전 회장은 실종 하루 전인 지난달 12일 부산의 모처에서 측근과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내일 하씨를 만나 1000억원을 받기로 했다. 돈을 받으면 각자 투자분을 돌려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 전 회장의 한 측근은 "양 전 회장은 곧잘 '삼부파이낸스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에 이제 돈을 찾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돈을 챙기면 홍콩에서 자금세탁을 거친 뒤 미국으로 뜰 것'이란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양 전 회장은 잠적 중인 하씨와 수시로 통화를 했고, 수차례 만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양-하 둘은 만났을까?

한편 양 전 회장이 실제로는 하씨의 소재를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는 삼부파이낸스 부도 잔여자금 대부분을 들고 달아난 하씨를 찾아내기 위해 '고도의 자작극'을 펼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양 전 회장이 고의로 자신이 실종된 것처럼 꾸며, 경찰이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하씨의 소재 파악에 나서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관할서인 연제경찰서는 "납치·감금인지 혹은 고의잠적인지 현재로서는 예단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양 전 회장과 하씨의 소재파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하씨는 부산지검 외에 동래경찰서 등에서도 수배된 상태"라며 "1년여 넘는 도피행각 중에도 휴대폰·신용카드 등 생활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연고지를 중심으로 추적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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