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네 번째 ‘유리상자’ 곽이랑

2020.11.09 10:26:48 호수 1296호

삶과 죽음에 대한 일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봉산문화회관에서 기획한 ‘유리상자-아트스타 2020’ 전시는 작가들의 동시대 예술에 대한 낯선 태도에 주목한다. 올해 전시공모 주제인 ‘헬로우! 1974’는 우리 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 공감을 비롯해 도시와 공공성에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를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선정됐다. 그 네 번째 전시로 곽이랑 작가의 ‘위로의식’이 열린다. 
 

▲ 봉산-유리상자 ⓒ곽이랑


곽이랑의 개인전 ‘위로의식’은 삶과 죽음을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마냥 무겁게 다가오진 않는다. 곽이랑은 20대에 암 진단을 받아 항암치료로 시간을 보냈다. 30대 초반이 된 최근에는 원격 전이 판정을 받고 병원을 오가는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누구나 알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속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곽이랑은 오랫동안 죽음을 직시하고 대면하는 삶을 살아오면서 삶과 죽음의 문턱 너머 세상을 설계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위로는 작품의 개념이 됐고, 삶을 바라보는 의식은 작품을 마주보는 태도로 자리 잡았다. 

유리상자 안에 높낮이가 다른 4개의 병원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일반적으로 유리상자 안에 작품을 설치할 때에는 외부의 빛이나 내부의 조명에 의해 가시성을 살리는 방법을 취한다. 하지만 곽이랑은 작품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도록 설치했다. 관람을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고 시선을 좌우로 돌려야 하는 불편함을 안긴다. 

20대에 암 진단 받아
30대 때 전이 투병 중 


타인의 삶을 엿보는 듯한 이런 행위를 통해 병원 커튼 안에 작가의 속살인 작품이 감춰져있는 셈이다. 병원 커튼에는 ‘충분한 분유와 약 한 가득과 한 줌의 뼛가루’라는 문구가 희미하게 적혀있다. 충분한 분유는 삶의 시작이고 약 한 가득은 삶의 영위이며 한 줌의 뼛가루는 죽음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커튼 사이로 무덤 혹은 여자의 유방을 형상하는, 크기가 다른 라탄줄기로 엮은 바구니가 봉긋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해방의 공간, 혹은 미완된 삶의 공간인 듯 듬성듬성하게 엮여 뒤집힌 바구니 안에는 현무암과 검은 가루가 자리하고 있다. 현무암은 곽이랑에게서 적출된 암덩어리를 은유한다. 

조동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곽이랑은 생과 사의 경계에 대한 자유, 경계선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믿음, 자신의 불행을 창작활동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예민했던 감정들을 추슬렀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절박한 만큼 작업에 집중했고 이는 성찰로 나아가는 과정이 되면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이랑은 “사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이다. 겪어보지 못한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일 것”이라면서 “투병생활을 시작한 뒤로 죽음은 줄곧 내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고 그것에 대한 의문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 봉산-유리상자 ⓒ곽이랑

그는 우연찮게 ‘열역학 제1법칙’이라는 이론을 발견했다고 했다. 에너지는 형태가 변할 수 있을 뿐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질 수 없다. 즉 우주 에너지의 총량은 시간이 시작된 때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일정하게 고정돼있다고 설명되는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언뜻 난해해 보이는 이 개념을 작가는 ‘언젠가 우리가 죽더라도 그것은 소멸이 아닌 다른 형태로써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불행 속에서 새로운 희망
관람객에 삶의 방식 전해

곽이랑은 “이런 일련의 상황과 생각들은 내 작업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됐다. 적출당한 그 덩어리들과의 미련 가득한 이별을 정리하는 위로 의식이 필요했고, 우리의 죽음은 소멸이 아닌 다른 형태로 변화해 순환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박소영 전시기획자는 “곽이랑의 내러티브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각색 없이 은유적으로 풀어낸다”며 “삶의 불행을 겪으면서도 절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간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동시에 감성적으로 우리와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도 모른다

봉산문화회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일기”라며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나열한 전시로, 관람객들에게 공감의 손길을 내밀며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한 번 더 주의 깊게 살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시는 다음달 27일까지.
 


<jsjang@ilyosisa.co.kr>
 

[곽이랑은?]

▲학력
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Die Universitat fur angewandte Kunst Wien TransArts Master
영남대학교 일반대학원 트랜스아트학과 재학

▲개인전
‘유리상자-아트스타 ver.4’ 봉산문화회관(2020)
‘일상적 해프닝’ 미디어극장 아이공(2019)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대구예술발전소(2016)
‘꿈의 공장’ 대구미술광장(2014)

▲수상
‘창작경연 ; 작가대전’ Top4 선정(2015) 
‘소통에 대한 UCC공모전’ 1등(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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