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리뷰> 25년 전, 그때 그 시절의 우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2020.10.13 12:16:55 호수 1292호

참신한 아이디어 톡톡, 영화 내내 번지는 미소

▲ ⓒ롯데엔터테인먼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불과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있었던 만큼 고졸과 대졸 사이에 차별이 존재했다. 컴퓨터라는 물체에 손을 올려놓는 것조차 낯설기도 했고, 직장 내 서열이 낮은 여성은 ‘미쓰O’이라 불리며 커피와 구두 심부름은 물론 재떨이도 때맞춰 비워야 했다. 담배는 실내에서 피는 게 당연했던 그때다. 



신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하 <삼진>)은 그 시절을 말한다. 회사에 빨리 입사해도 고졸 출신이란 이유로 대리라는 직함을 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임신이라도 하면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며 멸시를 당하고, 능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내쫓기는 참극도 있었다. 물고기가 펄떡펄떡 날뛰는 시냇물에 화학성 물질이 가득 담긴 폐수를 흘려보내도 나몰라라 하기도 했으며, 사람이 죽어 나가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비윤리적인 마인드가 자리 잡힌 시절이기도 했다. 

세 친구

<삼진>은 그 시절 상고 출신이자 직장 내 최하위 서열로 온갖 부조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세 여성이,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고 끝내 승리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업무 능력에 있어서 그 어떤 대졸보다 솜씨가 뛰어나지만, 잔심부름이나 하는 것이 고작인 이자영(고아성 분), 잡학다식의 보유자로서 상황판단 능력이 탁월한 정유나(이솜 분), 수학경시대회 최고 우승자 출신이지만, 현실은 거짓 영수증이나 메우는 심보람(박혜수 분)이 그 세 친구다. 

애사심이 가득한 세 사람은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다는 회사의 지침에 꼭두새벽부터 나와 영어를 공부한다. 세 사람뿐 아니라 삼진그룹 내 고졸 출신 모든 여성이 대리의 꿈을 가슴에 담는다.


그러던 중 자영은 우연히 삼진그룹의 옥주 공장서 폐수를 처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린다. 그제라도 일을 수습하려 하는 모양새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사람들은 점점 더 아파지는데, 서류를 보면 문제가 없다. 

뒤늦게 회사에서 서류를 조작한 사실을 알게 된 세 친구는 끊임없이 진실을 파헤친다. 그릇된 욕망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언론에 고하려 하지만, 꼼꼼한 대기업은 광고로 진실을 은폐한다. 내부고발자 위치에 놓인 세 친구는 자리를 뺏기고 망신을 당한다. 세 친구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삼진>의 주된 내용을 보면 경제 영화다. 한국의 글로벌화가 대두되던 시기 ‘기업 사냥꾼’이라 불리는 외국 기업이 건실한 한국기업을 망가뜨리고 싼값으로 이를 인수하려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를 토익을 배우며 대리를 달고 싶은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풀어낸 우화다. 

토익 600점 진급 위해 새벽부터 영어 공부
촌티 나지 않은 세련함 극중 곳곳서 묻어나

어려운 경제 문제를 다루지만 중학생이 봐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이종필 감독을 필두로한 제작진이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은 게 느껴진다. 삼진그룹과 영어토익반 간 대결구도를 만들면서 선악을 정확히 구분한 것이 영리한 선택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치하게 여겨질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미장센과 조명 등 분위기 자체를 우화적으로 풀어내 적절하게 전달된다. 

제작진 못지 않게 배우들의 공도 크다. 다소 촌스럽게 전달될 수 있는 대사들이 배우들의 올바른 해석 덕분에 촌티나지 않게 전달된다. 매우 세련된 느낌이다. 세 배우가 반 박자 빠른 느낌으로 치는 대사 호흡은 초반부부터 흥미를 유발하며, 영화 전반에 유쾌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언제나 연기를 잘하는 고아성이 중심을 잡고, 이솜이 톡톡 튀며, 박혜수가 미소를 준다. 세 배우의 시너지가 영화 곳곳서 발휘된다. 여기에 김원해, 조현철, 김종수, 해해선, 백현진, 이주영, 이성욱과 같은 조연들이 각자 자기의 영역서 뛰어난 연기를 펼친다. 거슬리는 부분이 거의 없다. 

“너 하고 싶은 걸 찾아” “남을 보지 말고 너를 봐” 등 교과서적인 표현들이 현시대의 바람과 적절히 맞닿아 있다. 경제 영화기도 하지만, 20대의 성장 영화기도 하다. 우화와 성장, 기업의 윤리, 경제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지만, 고추장과 기름에 쓱쓱 비빈 맛있는 비빔밥처럼 잘 버무려졌다. 

유쾌한 웃음


연인과 가족, 친구와 보든, 혼자 보든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올법한 좋은 영화다. 오랜만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남녀노소 모두에게 재미를 느끼게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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