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허 찌른 ‘정치9단’ 박지원 속내

2012.08.06 10:10:29 호수 0호

"고작 8천만원으로 '대어'를 낚겠다고?"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자신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며 세 차례에 걸친 소환요구에 모두 불응해온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검찰에 전격적으로 출석했다. 얼핏 보면 검찰의 압박과 여론의 뭇매를 견디다 못한 박 원내대표가 드디어 항복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박 원내대표가 검찰의 허를 찔렀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이 박 원내대표를 향해 "역시 정치9단"이라며 입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검찰에 기습적으로 출석하자 수사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은 기자들은 물론이고 같은 당 의원들도 뉴스를 보고 알았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일 오전에 이해찬 대표에게 출석 의사를 밝힌 것을 빼고는 아무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측근들은 물론 검찰 역시 출석 1시간 전에야 이 같은 사실을 통보 받았다고 하니 무척 파격적인 행보임에 틀림없다.

당황한 검찰

때문에 검찰은 수사를 시작하면서 약 2시간여 동안이나 박 원내대표에게 인생역정을 묻는 등 허둥지둥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검찰의 이 같은 수사방식에 대해 일각에서는 박 원내대표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의도적인 심리전이 아니겠냐는 해석도 내놨지만 정치9단 박 원내대표에게 통할 리가 만무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갑작스런 박 원내대표의 자진출석에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검찰이 시간을 벌려 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가 지난 2007년 가을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그리고 이듬해 3월에는 목포의 한 호텔에서 2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보해저축은행 오문철 회장에게서는 2010년 목포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검찰 수사와 금융감독원 검사가 잘 마무리되도록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 같은 혐의에 대해 박 원내대표를 대상으로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무려 10시간 동안이나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으며 오히려 박 원내대표가 검찰이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에 출석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 원내대표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정치적 탄압이 명백한 수사에는 응하지 않겠다며 버텼지만 이미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에 상정되기 직전이었고, 새누리당에서는 표 단속에 나서며 박 원내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벼르고 있는데다 민주통합당 내부에서조차 "당당히 검찰조사에 응하라"라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었다.

8월에 예정된 임시국회 역시 박 원내대표를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가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또 수사에 응하지 않는 것이 실제로 불법사실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점점 커져만 갔다. 계속 검찰 수사에 불응할 경우 향후 대선 정국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부담까지 있었다.

그런데 박 원내대표의 기습적인 검찰 출석 한번으로 이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됐다. 정치권이 박 원내대표를 향해 "역시 정치9단"이라며 입을 모으고 있는 이유다.

소환 보이콧하다 검찰 기습 출두 노림수는?
'방탄국회' 논란 짐 벗고 정국 주도권 장악

우선 박 원내대표는 8월 임시국회가 방탄국회라는 논란의 짐을 훌훌 벗었다. 이미 검찰에 제 발로 찾아가 성실히 조사에 응한 만큼 방탄국회라는 새누리당의 비판은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에게 박 원내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은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을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새누리당으로서는 박 원내대표의 체포동의안이 통과되든 안 되든 무조건 남는 장사였지만 박 원내대표의 자진출두로 모든 것이 무산됐다.

검찰 수사도 사실상 벽에 부딪혔다. 검찰은 필요하면 박 원내대표를 한 두 차례 더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8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검찰이 박 원내대표를 다시 소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하다. 민주통합당은 이미 8월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단독으로 제출한 상태다. 또 검찰 자진출두를 통해 박 원내대표가 결백하다는 주장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무혐의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박 원내대표가 자진 출두를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8월 임시국회를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와 내곡동 사저 의혹 등에 관한 국정조사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잔뜩 수세에 몰렸던 박 원내대표는 '역발상의 선택' 한번으로 오히려 대공세를 펼칠 수 있게 됐다.
박 원내대표의 기습으로 허를 찔린 검찰은 전열을 가다듬고 역공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박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가 한명숙 전 총리 때와 같이 무죄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졌다.

검찰은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한명숙 전 총리를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당시에도 검찰은 한 전 총리의 혐의 입증을 자신했지만 당사자의 진술 외에는 마땅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결국 무죄로 판결났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만약 검찰이 확실한 물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 검찰 조사에서 제시하고 박 원내대표를 꼼짝 못하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장장 10여 시간에 걸친 조사를 벌이고도 돈을 줬다는 사람들의 진술 외에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만 봐도 검찰이 박 원내대표를 정치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발상의 선택


또 이 관계자는 "대선을 불과 5개월 여 앞둔 중요한 시점에 제1야당의 원내대표를 금품수수 혐의로 소환해놓고 검찰이 앞으로의 수사과정에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증거를 제시 못한다면 스스로 '정치검찰'임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검찰이 정말 박 원내대표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박 원내대표는 이번 검찰 출석을 통해 여러 가지 실익을 챙기게 됐다"며 "박 원내대표의 원맨쇼에 검찰과 정치권이 놀아난 듯한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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