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정출산 금지법 파장] 대한민국 1% 로열패밀리 표정 엿보기

2009.01.20 09:50:05 호수 0호

서민 ‘시큰둥’ 재벌 ‘화들짝’ 황태자 국적은 이미 글로벌

미국에서 원정출산 금지 법안이 논의 중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더 이상 미국 원정출산이 불가능하다. 이를 놓고 유독 대한민국만 시끌벅적하다. 통과 여부가 희박한 법안에 대해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서민들과 재벌들의 표정은 완전히 상반된다. 서민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시큰둥한 반응이다. 안 그래도 불황에 일반인은 꿈도 못 꿀 형편에서다. 반대로 돈 좀 있다는 재벌가 로열패밀리들은 화들짝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그동안 앞 다퉈 만삭인 며느리·딸들을 미국행 비행기에 태운 재벌가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미국에서 이른바 ‘원정출산 금지법안’이 제출됐다. 미국 연방하원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지역구 출신인 엘튼 갈러글리 공화당 의원은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현행 이민·국적법을 개정한 법안을 마련해 최근 하원 법사위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신생아의 부모가 외국 국적자일 경우 신생아의 시민권 자동취득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갈러글리 의원은 “원정출산 온 외국 산모에게 의료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막고 미국 내 불법체류를 근절하기 위해 법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50개 주와 괌 등 자국 영토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시민권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속지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해산을 코앞에 둔 한국인 산모들이 남산만 한 배를 붙잡고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떠나는 이유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사회적 문제인 원정출산이 사실상 어렵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법안의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현재 ‘원정출산 금지법안’에 지지하는 동료의원이 한 명도 없다. 지금까지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선 속지주의 폐기 법안을 여러 차례 의회에 제출했으나 입법화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각국 가운데 유독 대한민국만 시끌벅적하다. 통과 여부가 희박한 법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인 것. 그만큼 미국 원정출산이 기승을 부린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11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미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 대상국에 한국이 포함되면서 사회적 질타로 잠시 주춤했던 원정출산이 다시 고개를 든 분위기다. 한때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은밀히 이뤄지던 원정출산이 중산층까지 급속도로 확산될 기미마저 보인다.
서민들은 대체적으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안 그래도 불황에 일반인은 꿈도 못 꿀 형편에서다. 원정출산을 위해 3개월 정도 미국에서 체류할 경우 비용으로 최소 5000만원이 필요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추산이다. 이보다 저렴한 ‘패키지 상품’도 봇물을 이루지만 역시 서민들에겐 부담스런 돈이다.
반대로 5000만원을 껌값 정도로 여기는 소위 ‘돈 좀 있다’는 집안의 사정은 다르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1%’인 재벌가 로열패밀리들은 화들짝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그동안 앞 다퉈 만삭인 며느리·딸들을 미국행 비행기에 태운 재벌가로선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이번 ‘원정출산 금지법안’이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높지만 한인들의 이미지 실추 우려와 언론들의 한국인 원정출산 실태 고발 등 미국 현지의 ‘반 원정출산’기류는 이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사실 부유층의 원정출산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재벌그룹 총수일가의 미국 원정출산은 때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수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알 만한 재벌 집안은 모두 원정출산을 떠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황제’의 가업을 이을 ‘황태자’들의 국적 논란이 그것이다.
미국 원정출산 관련 가장 많이 구설수에 휘말린 곳은 삼성그룹 일가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장녀 세령 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자녀 모두 미국에서 낳았다.
아들 지호 군은 이 전무 부부가 미국 유학생활을 하던 2000년 1월 뉴욕에서 출생했다. 딸 원주 양도 마찬가지로 2004년 3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이들의 출생 비밀은 이 전무의 처제인 상민 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카 사진을 올리면서 밝혀졌다. 상민 씨의 홈페이지는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고 이는 삼성가의 원정출산 시비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자 삼성그룹 측은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한 의도적인 원정출산이 아니다”라며 “첫째는 이 전무 부부가 유학시절 출생했고, 둘째는 첫째와 같은 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미국에서 낳았다”고 해명했다.
이를 의식해선지 이 전 회장의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는 2007년 7월 한 달 간격으로 모두 국내 삼성그룹 계열 병원에서 아들을 출산하기도 했다. 이서현 상무는 득남 전 딸만 셋을 뒀는데 이중 일부는 이 전무의 자녀들이 태어난 뉴욕의 같은 병원에서 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범 현대가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2∼4세들이 아산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태어난 것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정도원 강원산업 회장의 큰딸 지선 씨와 사이에서 1남1녀를 두고 있다. 정 사장 부부는 199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중 현지에서 딸 진희 양을 낳았다. 아들 창철 군은 1997년 서울아산병원에서 태어났다.
뿐만 아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 정대선 BS&C 사장은 노현정 전 아나운서와 2006년 8월 결혼, 이듬해 5월 미국 보스턴 한 병원에서 아들을 얻었다. 당시 노씨의 친정어머니가 미국으로 건너가 출산을 도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노씨가 재벌가의 고질병인 원정출산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의혹이 흘러나왔고 회사 측은 “정대선-노현정 부부는 결혼 직후 노 사장이 2005년 10월부터 유학 중이던 미국 보스턴으로 떠나 줄곧 미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첫 아들을 미국에서 출산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영구 귀국한 상태다.

물론 이들만 원정출산 논란에 휘말린 게 아니다. 다른 재벌가의 원정출산 사례는 비일비재할 정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원정출산을 계획 중인 재벌가 며느리·딸들도 많다. 이미 미국 국적을 갖고 경영수업 중인 황태자들도 수두룩하다.
재계 관계자는 “유치원을 시작으로 학교에 함께 다니다가 유학도 같이 가는 게 바로 재벌문화”라며 “심지어 재벌가 산모끼리 원정출산을 함께 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출산을 위해 바다를 건너는 재벌그룹 일가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란 이유를 댄다. 일단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 추후 재벌가문의 필수코스인 유학 기회를 비교적 쉽게 제공할 수 있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부는 원정출산을 병역기피 수단 등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재벌그룹 2∼4들의 병역면제율은 40% 정도로 일반인의 병역면제율(8%)에 비해 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병역면제 사유를 살펴보면 시민권 등 국적 관련 부분이 가장 많다.

미국 시민권 보유로 병역면제를 받은 재계 인사는 조정호 메리츠그룹 회장을 비롯해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의 장남 동범씨와 차남 동진 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주가조작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LG그룹 일가 방계 3세인 구본호 씨, 한솔그룹 일가인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과 조동일 한솔그룹 부회장 등도 미국 시민권을 내세워 입대를 피했다.
재력가들이 해외 재산 도피를 위한 사전 교두보로 원정출산을 통해 얻은 외국 국적을 유지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 국적일 경우 해외 자금 거래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는 자칫 불법 환치기, 재산 국외도피, 외환 밀반출 등 불법외환유출로 이어져 외환시장의 안정화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관세청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외환시장 안정을 위협하는 불법외환 거래에 대해 특별단속을 벌여 재산 국외 도피 409억원을 비롯해 1조4015억원 상당의 불법외환거래를 적발했다. 이 금액은 2007년 같은 기간 적발금액에 비해 4배 증가한 수치다.
주요 불법외환거래 유형은 ▲재산 국외도피 ▲무역가장 지급 ▲대외채권 미회수 ▲외환 밀반출 ▲금 밀수출 ▲환치기 불법송금 등이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원정출산의 남아 출산율이 80%에 이르는가 하면 국적을 포기한 사람 중 남성이 무려 98%에 달하는 현상은 병역기피 또는 재산도피 목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며 “재벌가의 기회주의적인 원정출산 행태를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지만 이를 막기 위해선 한국인의 의무를 포기하는 만큼 권리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벌총수 해외도피처 1위는?
원정출산도 미국, 도피출국도 미국

재벌가 원정출산의 메카인 미국은 재벌그룹 총수들의 해외 도피처로도 각광(?)받고 있다. 총수들의 도피성 출국지 선호 1순위로 미국이 꼽히는 것.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 X파일’로 한창 시끄럽던 2005년 9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 이듬해 2월 입국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도 검찰의 ‘현대차 비리’수사가 진행되던 2006년 4월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 회장은 일주일 후 다시 국내로 돌아왔다.
두 그룹은 각각 신병 치료와 예정된 출장이라고 해명했지만 민감한 시기의 급거 미국행은 누가 봐도 검찰의 수사를 피하자는 ‘도피성 외유’로 비춰졌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은 교통과 통신 등이 발달돼 있어 은둔생활에 적합한 곳”이라며 “특히 수많은 인종이 모여 이룬 나라답게 아시아계 사람이 많아 눈에 띌 염려가 적어 장기간 체류하기에 제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총수들이 모두 미국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을 비롯해 베트남, 홍콩, 마카오 등 동남아시아도 총수들이 해외 도피처로 선호하는 지역이다. 


한국인 원정출산 실태
신생아 1%가 미국인


원정출산을 떠나는 한국인 임산부는 1년 최소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연간 한국 신생아 100명당 1명꼴로, 곧 1% 정도가 미국 시민권을 갖는 셈이다. 미국, 캐나다 등이 주요 대상국이다. 특히 괌, 사이판 등 미국 자치령이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포털사이트를 통해 미국 원정출산 고객을 모집하는 업체는 20곳이 넘는다. 원정출산 과정은 ‘출산→산후조리→자녀 출생신고→자녀 사회보장번호(주민등록번호 해당) 수령’등의 4단계로 이뤄진다. 비용은 최소 5000만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진료비로 유출하는 돈은 연간 약 1조2000억원으로, 이중 원정출산 비용이 40%가량을 차지한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