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냄새의 기억’ 김지수

2019.11.04 10:16:52 호수 1243호

가족의 냄새로 쓴 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경기도 소재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김지수의 개인전 풀 풀 풀-을 준비했다. 김지수의 작업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서 맡았던 오래된 책 냄새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책과 아버지의 냄새가 뒤섞인 곳에서 김지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 요란한 냄새, 캔버스에  과슈, 116.8×91cm, 2019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의 기억으로 남는다. 김지수 작가는 아버지의 서재서 맡았던 오래된 책 냄새의 기억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오래된 책들이 쌓여 발산하는 냄새와 아버지의 냄새가 뒤섞인 공간서 작가는 많은 것을 떠올렸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예민한 후각은 대부분의 기억을 붙잡았다.

가족의 체취

풀 풀 풀-전시에선 후각이 예민한 김지수의 근원을 묻는 유전감각과 작업실에 불이 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냄새나무드로잉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실제로 사용한 낡은 서류가방, 이끼로 작업한 설치작품 아버지와 나도 선보인다.

유전감각은 가족의 체취를 채집해 작은 유리병에 넣고 가까이 갔을 때 관객이 이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설치한 작업이다. 김지수는 체취를 맡았을 때 떠오르는 인상을 시구로 옮겨 적었다.

태초의 이끼로 뒤덮인 숲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한 체취’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냄새’ ‘일만년 된 원고지와 원고지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깊고 넓은 냄새’ ‘새하얀 노트에 고급잉크로 써내려간 시의 냄새등이다.


어릴 때부터 후각 발달해
아버지의 서재 기억 남아

김지수는 직접 조향한 향을 전시장 전체에 퍼지게 하고 이를 겹겹이 퇴적된 동굴 속의 빛을 타고 흘러나오는 냄새라고 명명했다. 냄새나무는 작업실에 불이 났던 사고를 계기로 무언가 탔을 때 나는 냄새, 그을림 등의 강렬한 기억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업이다.

김지수는 나는 감각이 많이 발달돼있다. 그중에서 후각이 특히 발달해 어린 시절 형제들 사이서 별명이 개코였다고 말했다. 우리 몸에는 400개가 넘는 후각 수용체가 있는데 그중에서 개인마다 활성화의 정도에 따라 냄새의 민감도가 다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지수는 자신이 후각적 상상력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특별한 냄새는 역사학자인 아버지의 서재 냄새, 그리고 정원서 나무를 손질할 때 쓰던 오래된 가위의 손잡이 냄새다.

김지수는 아버지의 서재에선 오래된 책 냄새와 아버지의 체취가 섞여 묘한 향이 났다. 나는 가끔 서재에 혼자 들어가 책을 보거나 상상하길 즐기며 그 냄새공간을 점유했다이런 아버지의 서재와 정원은 나의 작업에 있어서 영감의 원천이자 작품 유전감각의 출발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래 전 식물학 전공자와 융합 프로젝트를 할 때 식물 실험실에 처음 들어선 순간의 냄새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털어놨다.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초록 식물들이 있었는데 식물 고유의 냄새와 다른 화학약품 냄새가 섞여 그곳만의 독특한 향이 났다고 기억했다.

냄새로 연결된 세계
다른 생명체와 교감

김지수는 식물의 다양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서 영감을 얻어 식물 추출물을 활용해 식물과 사람이 냄새로 교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올해 5월에는 우연히 퍼포먼스 워크숍에 참여해 손, 정수리, , 발 등의 신체 냄새를 맡는 행위를 했다.

그때 상대의 체취를 언어로 표현한 게 태초의 이끼 숲에서 방금 걸어 나온 냄새였다.

그는 그날의 경험 이후 지인들의 냄새를 상상하며 마치 시처럼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글을 쓰며 체취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보이지 않는 냄새로 연결돼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식물과 사람, 동물들은 서로 좋아하고 꺼려하는 냄새로 모이고 흩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김지수가 감각의 근원에 대해 묻고 탐색하는 작업 유전감각과 함께 다양한 생태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의 냄새를 맡고 채집하는 여정서 드러난 회화와 드로잉으로 구성돼있다.
 

▲ 아버지와 나 detail

김지수는 근원적인 감각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서 나와 세계가 냄새라는 감각으로 마치 생명의 그물처럼 연결돼있음을 느낀다이런 냄새는 나에게 다른 생명체와의 교감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시로 표현해

김노암 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는 김지수는 냄새 분자들의 운동을 엔트로피로 이해한다. 동물과 사람, 식물의 흔적이 향기의 숲을 이루고 자연과 사회, 역사, 숲과 인간의 생이 교차하는 사건, 세계를 인간의 후각과 냄새로 기록하고 표현한다이번 전시는 가족의 체취를 채집한 유전감각 설치작업과 냄새나무 드로잉을 통해 예측할 수 없는 향의 운동을 은유하는 작업을 선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사방으로 솟아오르고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햇빛과 물, 공기가 만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이라며 그것은 식물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며 인간의 정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jsjang@ilyosisa.co.kr>

 

[김지수는?]

학력

단국대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미술학 박사(2012)
이화여자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석사(2004)
성신여자대 서양화 전공(2002)


개인전

풀 풀 풀-아트스페이스 휴(2019)
풀 풀 풀-더듬어 가는 냄새통의동 보안여관(2018)
초록덮개-감각하는 식물들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2016)
울림, 그리면서 그려지는 생명의 그물문화예술공간 일리아(2014)
공존&공영스페이스 15번지(2013)
망연한 증폭인사아트센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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