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목줄 쥔 기업들 어디?

2019.04.01 10:46:58 호수 1212호

칼 뺐다 ‘다음 제물은?’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해임에는 국민연금의 개입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지분은 11% 남짓이지만 반대 의견을 미리 공개하면서 소액주주들을 결집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때 ‘주총 거수기’라는 오명까지 썼던 국민연금의 달라진 모습에 경영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저지하면서 국민연금의 투자 지분이 많은 대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이사나 감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진 것은 대한항공만이 아니다. 올 들어 기아자동차와 현대건설, 효성, 신세계 등의 주총서도 이사, 감사 선임안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첫 사례

다만 이들 기업에서는 표 대결서 사측이 우세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외에 SK와 신한금융지주 등 6개 기업의 사내이사,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앞으로 주총이 열리는 동아쏘시오홀딩스, KCC, 현대그린푸드, 대창단조, KT&G, HDC아이콘트롤스, 덕산하이메탈, 호전실업, 휴맥스, 동아에스티, 한솔케미칼, 한국카본, 와이지원, 신한금융지주, 이노션 15개 사에 대해서도 반대표 행사를 예고한 상태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총 의결권 행사를 통한 경영 개입에 대해 대부분의 기업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오랜 기간 대주주를 중심으로 경영진을 구성해 여러 주요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해온 국내 기업들은 향후 국민연금의 공격에 대비해 경영권 방어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등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국민연금은 운용액 637조원 가운데 약 17%에 해당하는 109조원가량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1668조원)의 약 6.5%가 국민연금으로부터 나온 셈이다.

지난 27일 금융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총 294곳에 달한다. 이 중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90곳에 이른다. 공시 의무가 없는 5% 미만의 지분을 소유한 기업들까지 더하면 국민연금의 영향권 아래 있는 기업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로 있어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은 7개사이다. KT(12.19%), 포스코(10.72%), KT&G(10.0%), 네이버(9.48%)와 같은 국내 대표 기업들과 하나금융(9.68%), KB금융(9.50%), 신한금융(9.38%) 3대 금융그룹이 이에 속한다. 

삼성전자(10.0%), SK하이닉스(9.1%), 현대자동차(8.27%) 등 시가총액 10위권 내 대기업들 역시 국민연금의 주요 투자처로 2대 주주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시총 10위권 내 기업 중 국민연금 보유 지분이 5% 미만인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3.09%) 오직 한 곳뿐이다. 

총수 경영권 박탈…적극적 반대 표시
공포에 휩싸인 재계 ‘타깃 기업은?’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가 공개한 ‘2018년 4/4분기 기준 주식 대량보유 내역’을 살펴보면 대림산업(13.54%), CJ제일제당(12.41%), 현대위아(12.31%), GS건설(12.13%), LS(12.04%), 한국타이어(7.89%) 등에도 지분을 갖고 있다.

국내 100대 기업 중 외국인 지분과 국민연금 지분의 합계가 기업의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넘어서는 기업은 약 40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사례처럼 국민연금의 결정에 의해 오너가 이사직서 물러나는 경우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선 조 회장의 연임 부결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한 긍정적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매우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빈도가 부쩍 잦아진 국민연금이 실제로 최고경영자(CEO)의 경영권을 박탈한 첫 번째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우려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국민연금이 주주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고려해 신중한 판단을 내렸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것을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국민연금을 강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총은 “국민연금이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한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이었다”며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라는 본질적 역할을 가진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되풀이?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단일 기관투자자의 지분이 한 국가 주식시장의 6% 이상인 곳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며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경영 활동에 개입할 경우 눈치 안 보고 활동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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