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들도 보는‘ 지라시의 세계

2019.02.18 10:27:35 호수 1206호

죽었다·불륜·사귄다…사람 잡는 ‘받은 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유명 PD와 여배우의 불륜설이 담긴 지라시가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유포됐다.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온라인 커뮤니티, SNS가 해당 내용으로 도배됐다. 진위 여부 확인보다 확산 속도가 훨씬 빨랐다. 4개월 뒤 문제의 지라시를 만든 사람들이 붙잡혔다. 지라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 요즘 초등학생들도 본다는 지라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받은 글이 돌기 시작했다. 나영석 CJ ENM PD와 배우 정유미씨의 불륜설이 담긴 지라시였다. 지라시에는 “#PD 티비엔(tvN)이랑 재계약 못 하고 퇴출당하는 분위기. 이유는 정유미와 불륜. 홍상수급으로 방송계서 버려지는 분위기라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디스패치>도 알고 있는데 씨제이(CJ)가 돈 주고 막았음등 추가 내용이 붙은 지라시가 메신저는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통해 마구잡이로 확산됐다. 지라시가 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두 사람의 이름이 올라왔다. ‘나영석’ ‘정유미’ ‘나영석 정유미’ ‘나영석 정유미 불륜등 관련 단어가 검색어 순위를 점령했다.

진짜야?
가짜야?

나영석 PD와 정유미는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의 연출자와 출연자로 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의 불륜설이 급속도로 유포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추측성 글이 쏟아졌다.

그러자 나영석 PD는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내용은 모두 거짓이며 최초 유포자와 악플러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저 개인의 명예와 가정이 걸린 만큼 선처는 없을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소속사인) CJ ENM 및 변호사와 이와 관련한 증거를 수집 중이며 고소장 제출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정유미의 소속사도 강하게 대응했다. 매니지먼트 숲은 사실무근인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사실인 양 확대 재생산해 배우의 명예를 실추하고 큰 상처를 준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말도 안 되는 루머에 소속 배우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매우 불쾌하다고 설명했다.

악성 루머의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 온라인 게시자, 악플러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 증거 자료 수집을 끝마쳤고, 오늘 법무법인을 통해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라며 속칭 지라시를 작성하고 게시·유포하는 모든 행위는 법적 처벌 대상이며 이번 일에 대해 어떠한 협의나 선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나영석·정유미 불륜설 지라시를 최초로 만들고 퍼트린 사람들이 붙잡혔다. 지난 12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두 사람에 대한 지라시를 최초로 작성한 방송작가 A씨 등 3명과 이를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에 게시한 간호사 B씨 등 6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에 욕설 댓글을 단 C씨도 모욕 혐의로 입건됐다.

가짜뉴스에 온라인 들썩
4 개월 만에 작성자 잡아

출판사에 근무하던 프리랜서 작가 A씨는 지난해 1015일 방송작가들로부터 들은 소문을 지인들에게 전송했다. 이 내용은 몇 단계를 거쳐 IT업체 회사원 D씨에게 전해졌고, 그는 지라시 형태로 이를 재가공해 회사 동료들에게 보냈다.

또 다른 버전의 지라시를 작성한 사람도 있었다. E씨는 지난해 1014일 다른 방송작가로부터 들은 소문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작성해 동료 작가에게 전송했다. E씨가 만든 지라시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확산됐다.

경찰에 따르면 짜깁기 형태로 가공을 거듭한 지라시는 약 120단계를 거쳐 기자들이 모인 오픈 채팅방으로까지 전해졌고, 이후 일반인들에게로 급속히 퍼졌다. 지라시를 최초 생산한 방송작가 등은 소문을 지인에게 전했을 뿐 문제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입건된 피의자 10명 가운데 중간 유포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는 방침이다.

나영석·정유미 불륜설이 담긴 지라시에 함께 거론된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도 지라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양현석 대표는 지라시로 인해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와 염문설에 휩싸인 바 있다.
 

▲ 배우 정유미

지난 13YG는 허위사실 유포자와 악플러 고소 건에 대한 진행 상황을 언론에 밝혔다. YG아티스트의 근거 없는 악성 루머가 담긴 지라시 최초 유포자는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해당 피의자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고 전했다.


YG는 지난해부터 악의적이고 왜곡된 루머 양산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팬들의 제보와 법무팀 별도 모니터링을 통해 악플러들을 상대로 대규모 고소·고발을 진행 중이다.

가공되고∼
확산되고∼

그러면서 이미 기소된 사건을 포함해 검찰에 송치됐거나 송치 예정인 사건은 현재 6이라며 올해도 근거 없는 루머에 대해 엄격한 대응 자세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지라시로 인해 피해자가 나타나고, 이들의 법적 조치로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가 밝혀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며 진위여부에 대한 파악 없이 확대·재생산했던 누리꾼에 대한 조사도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그런 와중에도 또 다른 내용의 지라시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퍼진다는 점이다.

지라시는 뿌리다라는 뜻의 일본말 지라스서 유래한 말로, 통상적으로 '찌라시'라는 말로 많이 쓰인다. 보통 받은 글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지라시는 작성과 유포를 통해 진실처럼 자리 잡는다. 대상이 되는 사람은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극적인 문구와 인지도 높은 연예인의 조합은 폭발적인 파괴력을 갖는다.

이번 경우처럼 지라시에 언급된 인물이 법적 대응 등의 강경한 조치를 취해 작성자와 유포자가 밝혀지는 상황에 이르러도 이미 금 간 이미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지라시로 유포된 내용은 연예인이 언론에 언급되는 과정서 끊임없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이미 그 상황서 진실과 거짓은 무의미해진다. 법적 조치는 말 그대로 지라시에 언급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인 셈이다.

강경한 대응
상처만 남아


처음 지라시는 증권가 정보지서 시작됐다. 실제 증권시장서 업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관계자들끼리 주고받던 정보글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으로 지라시가 등장한 시점은 1970년 말부터라고 전해진다. 그 당시에는 기업 정보원들이 동향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정치계와 연예계 등으로 영역이 빠르게 확장됐다.

과거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에는 문서화된 지라시가 사람과 사람을 거쳐 퍼졌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무차별적인 확산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문서화된 지라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사회·경제·문화·안보 등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지라시를 모아 만든 문서가 돈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정보의 질에 따라 구독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지라시의 영역은 끊임없이 확장됐다. 또 작성자의 범위가 증권가서 일반인으로까지 확산됐다. 재계 동향 등이 담겼던 내용도 이제는 헤아릴 수 없을 수준으로 다양해졌다. 심지어 정치권에선 정부가 정책 관련 발표를 하기도 전에 지라시 형태로 내용이 도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지라시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거짓인 사례가 많다.
 

▲ 안개 낀 여의도 증권가

사실을 조금 언급한 후 거짓을 섞은 형태의 지라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과정서 슬쩍 언급된 사실을 두고 지라시를 믿을 만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룹 카라출신의 구하라는 최근 지라시의 희생양이 됐다. “구하라가 약을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의 지라시가 빠른 속도로 유포됐다. 구하라 측에서 아무 대응을 하지 않자 소문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구하라 측은 구하라가 지속적으로 수면장애와 소화불량을 겪어 병원서 약을 처방받고 있었다. 그날은 정밀검사와 치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병원에 간 것까지는 사실이지만 나머지는 거짓인 것.

증권가 정보지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일반인도 무차별 피해

연예인의 생사를 넘나드는 황당한 내용의 지라시도 여전하다. 문제는 이 같은 소식에 당사자는 물론 관계자들이 큰 충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멀쩡하게 살아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죽었다는 지라시가 인터넷 등을 통해 번지는 과정서 사실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배우 변정수의 경우 2003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지라시로 인해 사망설이 크게 번졌다. 당시 변정수는 거짓 소문이 멀쩡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우 김아중은 최근 사망설에 휩싸였다. 배우 김혜정, 방송인 이의정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예인들이 생사 관련 지라시에 희생됐다. 이의정은 한 방송에 출연해 여전히 사망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이의정은 투병생활을 하던 중이라 사망설에 더 큰 상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일반인이 지라시에 언급되는 일도 잦아졌다. 그나마 법적대응이나 공개적으로 지라시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있는 연예인과 달리 일반인은 말 그대로 무차별적인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 이 과정서 ○○, ○○남 등 자극적인 표현은 물론 관계없는 영상이 교묘하게 관련 있는 것처럼 유포돼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기도 한다.

실제 한 대기업 직원 F씨는 다른 동료들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지라시가 유포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인사정보까지 함께 돌면서 사실로 믿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과정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지라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져도 이미 당사자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사회 혼란↑
처벌 수위↑

지라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자 이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번 나영석·정유미 사례로 작성자가 불분명하고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지라시라도 마음만 먹으면 잡아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지라시의 유포 단계를 역으로 추적하면 중간 유포자, 악플러 등도 함께 그물망에 걸려든다.

지라시를 만들거나 유포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특히 카카오톡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허위사실 유포 처벌 범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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