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11)눈치

2018.12.05 10:22:29 호수 1195호

당과의 약속 어쩌나?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황후라면 무후(측천무후)를 이르십니까?”

“당의 고종 황제가 무후의 의견이라면 전폭적으로 믿고 따른다 하였소.”

“그 이야기는 여러 군데서 들었습니다. 향후 그녀가 당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돌고는 합니다.”

“그런 연유로 그녀를 예의 주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유신이 무열왕을 주시했다.


태종과의 약속

“그 외의 다른 하문 사항은 없으신지요.”

“지금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침공을 개시하지 않았소.”

“그 일로 진군하려던 중이었습니다.”

“하여 당나라에서는 우리 신라의 역할에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을 터인데.”

말을 하다 말고 무열왕이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가 있는지요?”

“선황제인 태종과 약속한 바 있습니다.”

“약속이오!”

원효가 눈을 반짝였다.


“당나라에서 고구려를 침공할 경우 우리가 적극 협력하기로 한 사실 말인가요?”

“바로 그 이야기요. 하여.”  

무열왕이 잠시 멈추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당이 고구려를 점령할 경우 우리에게 평양성 이남을 준다고 하였지만 믿을 수 없소. 그러니 그 부분은 전적으로 상대등 대감이 적절하게 대처하도록 하세요.”

말을 마친 무열왕이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태종 무열왕이 김유신과 원효를 만나 나름의 유언을 전하고는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기어코 숨을 놓았다.

김유신은 즉각 화백회의를 소집하고 무열왕의 유언에 따라 태자인 법민을 보위에(문무왕) 앉도록 했다.

법민이 보위에 올라 장례를 지휘하고 그 소식을 접한 인문이 당나라에서 숙위하다 돌아와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인문이 유신을 찾았다.


“대감, 고할게 있습니다.”

“제게 말입니까?”

“전하께 바로 고해야 하건만 지금 경황이 없을까보아 대감께 대신 고하고자 합니다.”

유신이 인문의 굳어 있는 표정을 살피며 가만히 그의 입을 주시했다.

“황제께서 명을 주셨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유신이 이미 모든 사실을 꿰뚫고 있다는 듯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왜 고구려를 치지 않느냐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야 상중이니 어쩔 수 없지 않소.”

“물론 황제께서도 그 사실을 아시고 계십니다.”

“국상 중임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일으키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유신이 고개를 돌려 먼 곳, 당나라가 있음직한 곳을 주시했다.

“비록 상중이지만 황제의 명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황제의 명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인문과 대화를 나누고는 유신이 홀로 문무왕을 만났다.

유신으로부터 당황제의 칙명을 전해 들은 문무왕이 미간을 찡그렸다.

“대감, 아무리 상국이라 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유신이 이어서 무열왕이 남긴 선덕여왕시절의 이야기, 고구려 점령 시 영토 처리 문제에 관한 약속을 전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무열왕의 불신은 전하지 않았다.

“당시 선왕께 이야기를 들어 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짐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유신이 말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전하, 지금 우리에게는 백제의 잔당 처리 문제가 급선무입니다. 그러니 고구려 공략은 백제의 잔당 처리로 돌리도록 하시지요.”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허나.”

“말씀하십시오.”

백제 잔당 처리로 당의 시선 돌려
문무왕, 군사 거느리고 직접 출정

“그런 경우 신라의 의지를 확고하게 보이기 위해 전하께서 직접 거둥하셔야 합니다.”

“짐이 직접 말입니까?”

“그래야 저들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당을 염두에 두고 천천히 일을 진행시켜야 합니다.”

“일이 빨리 마무리되면 당나라의 요구가 집요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말이지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문무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있습니다.”

“무엇이오?”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우리 입장을 전하도록 하십시오.”

유신의 말을 되새기던 문무왕이 곧바로 유신과 함께 신라의 군제를 개편하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그 소식을 전하도록 조치했다.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인문·진주·흠돌을 대당(경주 부근에 설치한 육정 중 하나)장군으로 천존·죽지·천품을 귀당(지방군 단위)총관으로 품일·충상·의복을 상주(경북 상주)총관으로 진흠·중신·자간을 하주(창령)총관으로 군관·수세·고순을 남천주(이천)총관으로 술실·달관·문영을 수약주(춘천)총관으로 문훈·진순을 하서주(강릉) 총관으로 진복을 서당(중앙 군단) 총관으로 의광을 낭당(중앙 군단 중 하나)총관으로 위지를 계금(무관의 직명)대감으로 삼았다. 

군제를 개편한 문무왕이 유신 등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경주를 출발했다.

물론 방향은 고구려가 아닌 구 백제 지역이었다. 경주를 출발해서 시이곡정(始飴谷停, 대전 대덕 근처로 추정 됨)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척후병이 백제 군사들이 옹산성(甕山城, 대전 대덕)을 차지하고 길을 막고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보고를 전했다.

문무왕이 즉각 장군들을 소집했다.

“지금 옹산성에 백제의 잔당들이 주둔하고 있어 길을 막고 있다하오. 경들의 의견을 제시하시오.” 

“전하, 옹산성이래 봐야 성의 규모도 그렇고 병사의 수도 많지 않으니 바로 섬멸하도록 하시옵소서.”

품일이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이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대장군은 어찌하면 좋겠소?”

문무왕이 유신에게 고개를 돌렸다.

“급히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서두를 필요 없다니요?”

“당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당을 생각해서라도 진군을 서둘러야지요.”

유신과 인문의 대화에 문무왕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전하, 상국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인문이 재차에 걸쳐 서둘러 옹산성 칠 것을 건의하자 문무왕이 모두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당연히 상국의 명을 받들어야지. 그러나 일단은 저들에게 사람을 보내 한번 회유해보고 뒤를 준비할 일이야.” 

“그러면 너무……”

인문이 말을 하려다 문무왕이 주시하자 서둘러 입을 닫았다.

문무왕이 곧바로 공격을 자제시키고 회유를 선택해서 옹산성으로 사람을 보냈다.

뒤를 준비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백제의 달솔(達率)인 조복과 은솔(恩率, 16품 관등의 셋째 위계)인 파가를 만나 회유책을 제시했으나 항전의 결사 의지를 밝히자 할 수 없이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론 내렸다.

“대장군, 백제의 잔당들을 섬멸하시오!”

“하오나, 전하.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저희 신라군이 대군을 편성하였으나 출정식을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출정식이라니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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