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국방부가 병사 진급 심사제를 본격적으로 강화하며 군 복무 환경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30일 군 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마련된 ‘병 인사관리 훈령 개정안’이 이르면 내달 일선 부대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앞서 군 당국은 지난해 6월 개정한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통해 병사 진급에도 심사를 적용하도록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진급 누락 기간의 확대다. 기존에는 진급 심사에서 탈락해도 최대 2개월 후에는 진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진급 심사 강화에 따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병사는 전역하는 달 1일에 상병, 전역 당일에 병장으로 진급하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 18개월 복무기간 중 단 하루만 병장 계급을 달고 전역하는 ‘병장 하루 체험’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진급 심사의 핵심은 체력 평가다. 일병에서 상병으로 진급하려면 체력 2급 이상을 받아야 하며, 평가 항목 중 체력이 70%의 비중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복무 태도와 성실성 등이 평가 대상이 된다.
사실 병사 진급 심사제 자체는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이미 일선 부대서 시범 운영돼왔지만, 진급 누락의 영향이 제한적이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전역 직전까지 낮은 계급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규정을 대폭 강화하면서 현역 병사와 예비 장병, 그리고 이들의 부모들까지 거센 반발을 보이고 있다.
과거 병사 월급이 미미했던 시절에는 진급 여부가 군 생활 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최근 병사 복무 여건 개선과 함께 진급이 실질적인 복무 동기와 직결되면서 제도 변화에 대한 반발 심리가 증폭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병으로 복무 중인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징집제로 의무복무하는 병사들에게 진급 차등을 두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자원 입대자가 아닌 의무복무자에게 과도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하소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서도 찬반 논란이 뜨겁다. “요즘 병사들 기강이 해이하단 말이 많이 나오는데 진급 심사해서 군 기강 확립이 된다면 좋은 제도 아닌가”라는 옹호 의견이 있는 반면, “억지로 끌려왔는데 진급 누락으로 현타(현자 타임, 씁쓸함과 허탈감을 느끼는 상태)올 장병들 생각하면 부적절한 조치”라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예비역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는 “나 때도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불성실한 병사들이 줄었을 것”이라며 환영하지만, 다른 이들은 “의무복무자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이번 제도가 강군 육성과 성실 복무 유도를 위한 필수 조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그동안은 진급 심사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고, 탈락해도 1~2개월만 지나면 진급이 가능해 실효성이 떨어졌다”며 “이번에 진급 누락 기간을 대폭 확대하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제도 강화는)병사들이 계급에 부합되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사전에 심사해 계급장을 달도록 하는 취지”라며 “전투기술, 개인 역량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그런 걸 갖출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것으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진급 심사 기준이 체력에 지나치게 치중돼있어 신체조건이나 훈련 적응에 불리한 병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대는 다양한 신체조건의 청년들이 모이는 곳인데, 획일적인 체력 기준으로 진급을 결정하면 일부 병사들은 구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 문제도 해결 과제다. 체력 평가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지만, 복무 태도나 성실성 평가에서는 지휘관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진급서 누락된 병사들의 사기 저하는 물론 부적응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같은 기수 동기들이 상병이나 병장으로 진급하는 동안, 혼자 일병 계급에 머물러 있다면 심리적 위축은 물론 집단 내 소외감, 갈등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체력 평가와 달리 태도나 성실성 평가는 명확한 척도가 부족해 평가자의 개인적 판단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심사 기준을 정량화하고 투명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급 누락자에 대한 사후 관리와 심리적 지원 체계도 병행돼야만 한다”며 “징집제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병사들의 권익과 복무 현실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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