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10)

2012.02.06 12:00:09 호수 0호

“적을 어르고 달래서 안심시켜라”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안심시키며 시간 번 뒤 소멸시효 원군 기다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보증 책임 면하게 돼

“자아, 그럼 이렇게 해봐요. 첫째, 지금부터 어떠한 경우라도 돈 한 푼도 지급해서는 안 되고, 둘째, 각서나 어떠한 증서를 작성해 주어서는 더욱 안 돼요. 셋째, 상대방이 녹음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 보증금액에 대해 인정한다거나 채무를 승낙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돼. 넷째, 그 남자들에게 전화가 오거나 찾아 올 경우 모든 요구를 들어 주는 체하며 안심을 시켜야 해요. 다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채무를 인정하는 어떠한 말이나 증거를 남기는 서류를 작성해서는 안돼요. 다섯째, 그 남자들에게 전화가 와서 독촉을 하면 ‘예예’ 하며 내일 모레쯤 한번 만나서 얘기 하죠, 하는 등 적당히 시일을 끌다가 최종적으로 안 되겠다 싶으면, 지금 만나봐야 돈이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서로 감정만 상하지, 어차피 돈이 있어야 해결될 것이 아니냐? 조금만 시일을 주면 돈 나올 곳이 있는데 그때 가서 한번 얘기를 나눠보자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방 남자들은 약이 오르다가도 딱히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잘만하면 돈을 받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살살 구슬리며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할 거야. 그러면 설득을 당하는 체 하는 등 그렇게 시일을 끌다가 더 이상 지연술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마치 코너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고백 하는 것인 양 말하는 거야. 정기예금을 탈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고, 얼마 동안만 기다려 줄 수 없냐는 식으로 말하는 거지. 그러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만약에 채무를 인정할 경우 일정금액을 감액해 줄 수 있냐고 반문 하는 거야. 상대방이 믿을 수 있게 안심시킨다, 이거야. 그렇게 하여 최종 34일을 넘겨야 해요.”
그녀는 필요한 말들을 메모하면서 이해되는 부분에 가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가 그래도 여전히 뭔가 불안하듯 물었다.

눈치 채도 본전

“아니, 내가 서툴게 하다가 상대방이 눈치를 채면 어떡하지?”
“뭐, 눈치 챌 것이 있겠어? 그리고 설령 눈치 챈다 해도 지금보다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우리 차 사장이 손해 볼 것은 없잖아? 채무를 인정치 않고 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조만간 돈이 생기면 그때 가서 대화를 해보자고 하는데, 기다리지 않고 굳이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며 골치 아프게 법으로 조치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모든 게 심리전이라고 보면 되지. 상대방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처럼 하다가 시간을 벌어 소멸시효라는 원군을 기다려 보증 채무를 면책 받으면 된다 이 말이야. 어설프게 하는 연기가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진실로 비쳐질 수가 있지 않겠어?”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마치 이번 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하달받기라도 하듯 말했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시효가 완성되고 난 다음부터는 마음대로 하라고 나자빠지는 거지. 그래도 곤란하면 상황을 봐서 차 사장이 채무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채무부존재소송을 거는 거야. 아니면 그 사람들이 약속어음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면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돈을 지급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거야.” 
“내가 이길 수 있는 거야?”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문제는 이 방법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거지. 아니면 보증 채무금을 갚아주든지?”
“내가 돈 갚을 능력이 있다면 왜 찾아와서 귀찮게 하겠어? 사실 나 이혼 직전이야. 지난번 하던 의류사업이 부도가 나서 이미 신용불량이 되어 죽을 입장이야. 그 여파로 남편도 매일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고 있는데, 이번 보증 채무까지 알게 되면 내가 온전하겠어?”


“나 역시 차 사장이 친구에게 당해 억울한 보증을 섰고, 지금 처한 상황이 그렇게 어렵다고 하고, 무엇보다 그 남자들은 내가 보기엔 선의의 정당한 채권자들이 아닌 악의적인 진상꾼들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이런 방책이라도 조언을 해주는 거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그 남자들이 집으로 찾아와 남편을 만난다거니 뭐니 하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하며 만약 찾아오면 경찰에 신고한다면서 화를 내니까, 그때부터는 말들이 부드러워지던데. 아마 뭔가 켕기는 게 있긴 있나봐?”  
“사실 원칙적으로 한다면 남의 돈을 빌렸거나 책임지기로 했으면 갚는 게 도리 아니겠어?” 하고 나는 그녀의 채무불감증을 지적하듯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정색을 하며 도리어 역정을 내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돈을 빌렸거나 그 돈을 단 한 푼이라도 받아썼다면 당연히 갚아야지. 아무런 책임과 문제가 없다고 하며, 괜히 나를 끌어넣어가지고 보증을 세워 덮어씌운 거야.  뭐 그 사람들은 잘한 건가? 아무 상관도 없는 남자들이 내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인 최 뭔가 하는 여인의 사주를 받아 나를 협박하며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하고 억울해 죽겠다는 몸짓을 했다.

보증에 운명이 달라져

“그래 알았어요. 어쨌든 한판 승부를 건다는 각오로 잘해보시고, 나머진 그때 가서 돌아가는 사정을 잘 살펴 대처하도록 해. 그리고 상황변동이 있으면 연락을 주고.”
“알았어, 오케이! 그래도 동지가 최고네. 아무런 대책 없이 밤잠을 설쳤는데 오늘부터는 편히 잘 수 있겠어. 임 이사, 바쁜데 좋은 얘기 정말 고마워. 많은 고민을 하다 찾아왔는데 역시 찾아오길 잘 했네.”
그 말을 끝으로 밝게 웃는 모습을 보이며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 후 그녀가 전하는 말로는 그 남자들이 아마추어인지 모르지만, 별 수 없이 그녀의 지연술에 말려 약속어음 소멸시효인 3년을 넘기고 말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남자들은 사실을 모른 채 말로만 협박이 아닌 뭔가 보여주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돈 갚을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자 그제야 ‘아뿔싸’ 하고 화를 내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편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고 하며 안심을 시켰다.
찾아온 남자들은 화를 내며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 다음 날 약속어음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답변서를 제출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보증 책임을 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게 연신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가끔 차 사장을 생각할 때면 ‘사람이 한 번 인정에 이끌려 보증을 잘 못 서게 될 경우 자신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보증을 서준 그녀보다 친구의 우정을 믿고 자신을 위해 보증을 선 친구를 배신하고 책임을 넘기는 사람과 더불어 무책임한 사회로 변모해가는 현 세태가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 컨설팅 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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