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전원책 투트랙 청사진

2018.10.22 10:06:02 호수 1189호

2000년 이회창식 벤치마킹?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변신을 준비 중이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이 이끄는 변신이다. 두 사람은 연일 당이 나아갈 청사진을 제시하며 당원들을 직·간접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두 사람이 제시하는 청사진은 과거 한나라당과 닿아 있다.
 



“당헌·당규와 상관없이 전권을 가졌던 2012년 비상대책위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주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새누리당’이라는 정체불명의 당명과 빨간 색깔로 당색을 바꿨을 때 한국당은 침몰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한국당 조강특위 외부위원 4인(전원책·강성주·이진곤·전주혜)은 ‘당원·당직자·당협위원장·국회의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고언’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밝힌 핵심 내용이다.

침몰 원인
새누리당

입장문의 제목은 고언이었지만, 내용은 질책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화살은 2012년 비대위를 향해있다. 당시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2012년 이전 한나라당(한국당 전신)은 정권 재창출에 적신호가 켜졌었다. 이명박정권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소고기 파동으로 지지율 7.4%까지 추락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2009년 재보궐선거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설상가상 한나라당은 친이(친 이명박)계와 친박(친 박근혜)계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2010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전격 회동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이후 권력의 추가 친박계에 쏠리면서 친이계에 대한 친박계의 공천학살이 일어났다.

여기에 더해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관이 2011년 10월 재보궐선거서 선관위를 디도스로 공격한 사건이 발생하자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2012년 2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상징색을 파랑색서 빨강색으로 바꿨다.

잠복기에 들어갔던 친이 대 친박의 갈등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폭발했다. 2016년 12월 친이계 중심의 비박(비 박근혜)계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출범했다. 2017년 2월 새누리당은 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2017년 3월 한국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파면으로 명목상 여당 지위를 잃었다.

한국당 조강특위 외부위원 4인은 지난 2012년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한 후 당 내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과정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4인은 기존의 한국당이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다”며 “한국당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원로 정치인부터 모사까지 지금 한국당을 회복 불가능한 중환자로 여긴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연 한국당은 보수주의, 자유주의에 복무했나. 자유와 책임, 도덕성에 충실했나. 미래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이냐”고 지적한 뒤 “한국당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 두 분을 감옥에 보내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소속 의원 몇 분이 법정에 가봤느냐. 왜 다들 피했을까. 친이, 친박 할 것 없이 처참한 보수궤멸에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권력자에 대한 계파의 충성경쟁에도 일침을 가했다. 

이들은 “왜 그때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느냐”며 “명망가 정치, 보스정치에 매몰돼 당내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충성경쟁을 벌일 때 한국당은 무너졌다. 권력을 재창출한 뒤에는 대통령 눈치를 보거나 아부하기에 바빴다. 그러면서도 뒤편에선 ‘제왕적 대통령제’라며 탓했다. 절대권력이 무너지면 그를 공격하는 세력에 동조하기에 급급했다”고 날을 세웠다. 

외부위원 4인은 “새로운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에게 문호를 개방해 경쟁하자”며 입장문을 마무리했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 저격
비박 영입·친박 설득 동시에


조강특위 외부위원 4인이 한국당의 침몰시기로 2012년 비대위를 지목한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의 혁신 좌표를 2012년 이전으로 설정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나라당 시절로의 회귀를 뜻한다.

한국당 비대위가 연일 ‘보수대통합’을 부르짖는 일도 한나라당으로의 회귀와 맥을 같이 한다.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은 바른미래당에 잇단 구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전 위원은 조강특위 출범 당일인 지난 11일 기자들에게 “(다른 정당) 일부 중진 의원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통보했다. 곧 일정을 잡겠다”며 보수 단일대오 작업에 착수했음을 알렸다.

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비대위의 역할은 내적으로 혁신, 외적으로 보수대통합이다. 조강특위가 출범했으니 이제 보수대통합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며 “문재인정부의 폭주를 막는 대의에 동의하는 누구라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하자는 제안을 하겠다”고 전했다.

한국당 비대위는 비박에게 구애를 펼치는 동시에 친박도 아우르는 작업을 잊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부정하는 태극기부대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일이 대표적이다. 

전 위원은 지난 15일, 언론 인터뷰서 태극기부대를 보수 통합 대상에 포함시킬지에 대해 “그분들(태극기부대)을 흔히 말해 극우라고 하는데 극우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룹”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비호하고 석방하라고 요구하는 시위세력을 앞으로 보수 세력에서 제외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 비대위원장도 지난 17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태극기부대와) 무슨 통합을 이야기하는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묶고 연결하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며 “미래의 새로운 비전을 내놓고 새로운 꿈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를 통합해나가야지 ‘누구랑 이야기를 못 한다’ 이렇게 선 그을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계파주의
작심 저격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변호도 잊지 않았다. 변호사인 전 위원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 재판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재판부를 비난한 뒤 “하루 10시간씩, 일주일에 나흘씩 하는 재판에 친박, 비박 중 누가 가봤느냐. 전부 다 피해갔다. 본인에게 오물이 튈까, 따가운 시선이 꽂힐까 싶어서 피해가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비박, 친박에게 담론을 제시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전 위원은 김 비대위원장에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박근혜정권에 대한 평가, 박 전 대통령 탄핵 등에 대한 당의 입장을 명확히 해야 정체성을 확립하고 인적청산을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전 위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한국당 모든 문제의 뿌리는 박근혜 문제”라며 “유승민 의원이 떨어져 나가고 바른미래당이 생기고 김무성 의원이 떨어져 나갔다가 돌아오고 이런 현상도 모두 박근혜 관련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친박계, 비박계의 상호 입장이 정리되지 않으면 누가 ‘칼질’을 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며 “그런 과정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밝혔다.

한국당 내부서 박 전 대통령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박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당의 최대 주주였다. 한국당에는 아직도 친박계 인사들이 많다. 한국당의 핵심 지지층은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의 ‘무죄’와 ‘석방’을 주장한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려왔다. 김 위원장 역시 탄핵에 대해 “당 안에서 의견이 아주 많이 갈린다. 그 상처가 아직도 상당히 깊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해왔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면 당의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겠다”며 대법원 선고 후로 입장 정리를 미뤘다.

끝장토론 제안에 당 내 반응은 엇갈린다.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질 뿐”이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찬성하는 의견이 공존한다. 김용태 사무총장은 “전 위원의 아이디어인 만큼 앞으로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끝장토론 제안
박통 파헤치자

박근혜정권 경제정책인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혁신을 이끄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며 친박, 비박 모두에게 어필했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상징이라 불리는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해 총선을 승리로 이끈 바 있다.

전 위원은 입장문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한국당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한 반면, 김 비대위원장은 조강특위의 주장에 대해 “비대위 차원의 해석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해석 중 하나일 수 있다”며 “(보수 위기는)역사의 큰 흐름을 놓쳤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계파를 초월한 인재영입도 한나라당으로의 회귀를 증명한다. 한국당 비대위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대선주자급 인재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친박계, 오 전 시장은 친이계다.

김 비대위원장은 “한 분 한 분 다 보면 소중한 분들이고 나름대로 저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경륜을 쌓아온 분들”이라며 “단점을 봐서 쳐내기에 앞서서 그분들의 장점을 볼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영입 방침을 밝혔다.
 

지난 6·13지방선거를 통해 보수 진영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대 행정대학원 특강이 표면상 이유였지만, 원 지사를 만나 보수통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원 지사는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줄곧 개혁 소장파라는 평가를 받은 만큼 범보수 인사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서 탈당해 바른정당에 합류한 후 국민의당과 합당한 바른미래당 소속이었지만, 지방선거 당시 다시 탈당해 현재 무소속 신분이다.

황교안·오세훈·원희룡 접촉
바른미래 11인도 한국당으로?

원 지사는 김 비대위원장과의 회동에 앞서 입장문을 통해 이번 회동 목적이 한국당 입당이나 보수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하며 “무소속 도지사로 도민에게 이미 약속했듯이 중앙정치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오로지 도정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들 대선주자급 인사들에 대한 영입이 성사될 경우 과거 이회창 전 총재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이뤘던 한나라당과 비견될만하다. 한국당 내에서는 지난 2000년 때 이 전 총재가 이끈 인재 영입이 역대 보수정당 인재 영입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는 평가가 있다. 

현재 보수 성향의 중진 의원 중 이때 영입된 인사들이 다수다. 대표적으로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2000년 2월 이 전 총재에 의해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영입됐다. 김 비대위원장의 인재 영입은 2000년 당시 이 전 총재의 성과를 재연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한국당 안팎에서는 한국당 비대위의 행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 내부에서는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손님이 주인을 내쫓고 안방을 차지하려 한다” 등의 비유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외부서의 평가는 더욱 박하다. 특히 한국당 비대위가 통합의 대상으로 지목한 바른미래당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전 위원의 보수대통합 발언들에 대해 지난 12일 “한국당은 다음 총선에서는 없어져야 할 정당이다. 결국 수구·보수로 한 쪽으로 밀려날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지난 15일에는 “한국당이 쇄신도 없이 바른미래당과 통합하자는 것은 막말로 웃기는 얘기”라며 “만약 우리 당에서 갈 사람이 있다면 수구·보수로 가라”고 날을 세웠다.

하태경 최고위원도 “태극기부대는 (헌법기관인)헌법재판소를 해체하라고 했던 집단”이라며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과 함께 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극우대통합”이라고 가세했다.

대선주자급
접촉 시도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한국당을 비난한 데는 실질적인 당내 동요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바른미래당 의원 30명 중 바른정당 출신과 일부 국민의당 출신을 포함한 6∼7명 의원들은 한국당과의 연대 또는 통합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한국당의 보수대통합 추진과 관련 지난 17일 “바른미래당서 11명이 자유한국당으로 간다는 얘기가 여의도 바닥에 쫙 돌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