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태풍 음모론’ 왜?

2018.09.04 09:03:29 호수 1182호

까칠한 현안 솔릭으로 덮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얼마 전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솔릭’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솔릭 자체에 대한 피해는 적었다. 하지만 과도한 태풍 보도로 인해 묻힌 현안들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선 ‘음모론’이 불붙는 모양새다.
 



지난달 24일 오후 제19호 태풍 ‘솔릭(SOULIK)’이 당초 예상보다는 적은 피해를 입히고 한반도를 벗어났다. 이번 태풍 ‘솔릭’ 만큼 경로가 많이 바뀐 예는 드물다. 솔릭은 한반도 상륙지점부터 수없이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목포였다가 군산으로,한 때는 충남 당진까지 북상하는 것으로 예측됐으나 정작 상륙한 곳은 당초 예상지점인 목포였다. 

시시한 ‘역대급’

이동속도도 변화무쌍했다. 상륙 직전에는 사람이 걷는 속도인 시속 4km로 느렸다가 한반도에 상륙해서는 시속 50km의 빠른 속도로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당초 기상청은 솔릭이 2010년 제7호 태풍 ‘곤파스(KOMPASU)’보다 강력한 위력을 떨칠 것으로 전망했다. 제주도와 남부지방에는 큰 피해를 입혔지만 인구밀도가 높고 높은 건물이 많아 더 큰 피해가 예상됐던 수도권은 결국 비껴갔다. 

하지만 태풍 상륙 소식에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득학교 8688교는 휴업 또는 휴교를 결정했다. 갑작스런 휴교령은 많은 학부모에게 혼란을 더했다. 태풍 피해를 입지 않은 수도권 시민들은 ‘설레발 태풍 예보였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행방이 묘연해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설레발이 심하다’는 뜻의 ‘솔릭스럽다’라는 신조어마저 생기기도 했다.

당초 솔릭의 위력을 ‘역대급’ ‘수도권 관통’ 등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예보한 기상청에 대해 분노하는 시민도 상당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기상청을 폐지하라’ ‘기상청장을 파면하라’ 등의 격앙된 내용의 청원이 40건 이상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23일 온라인상에서는 “이미 일본 기상청에서는 태풍 솔릭이 점차 소멸할 것으로 예측했고 기상청도 알고 있지만 설레발을 쳐서 소멸한다고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학부모들의 원성도 자자했다. 경기도 일대 거의 모든 학교들이 휴교령을 내리고, 그에 맞춰 유치원과 어린이집들도 휴교령을 내렸다. 재난에 따른 긴급 휴교령은 충분히 가능한 조치다. 

하지만 한 학부모는 “과연 그럴 정도의 심각한 문제였는지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휴교령을 내렸는데, 정작 약간의 구름과 비만 내리니 당장에 아침부터 학교로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3개 정도의 태풍이 직접적으로 지나간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태풍까지 더해도 연간 10개 남짓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난무했지만, 실제 역대급 태풍이라 할만한 것들의 상륙 직전 중심기압은 940∼960대, 최대풍속도 40∼60m/s대. 여러모로 수치상으로 솔릭은 그 근처에 갔다고 보기가 다소 어렵다. 

게다가 사실 그런 소위 말하는 역대급‘들도 실제 피해 규모를 살펴보면 솔릭을 맞이하던 언론의 태도만큼 심각한 건 아니었다.

이에 대해 25일 기상청은 “기상 예보의 최우선 원칙은 기상재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예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상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피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과잉으로 보이더라도 최악의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SNS에 올라온 태풍 관련 댓글에는 기상청에 대한 질타와 정부의 과잉대응에 따른 국민 불편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정부 입장에선 태풍 매미에 버금가는 강한 태풍이라는 기상청의 예보와 언론의 호들갑에 초비상사태에 들어갔다. 


마치 정부 기능이 일시 마비된듯한 느낌이었다. 

공포에 떨었던 국민들 한바탕 난리
허무한 결말에 “다른 꿍꿍이 있나”

실제로 솔릭이 한반도로 북상하면서 고용 등 주요 경제정책 논의가 ‘올 스톱’ 사태를 맞기도 했다. 특히 기획재정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 분야의 한해 결산을 심사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회의를 일시 중지하거나 산회(散會)하는 등 태풍의 영향을 받았다.

이 같은 논란에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은 “재난 대응에 과유불급은 없다”고 일축했다. 

김 장관은 “태풍이든, 폭염이든 이제 재난에 대해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가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 보인다”며 “정부가 과할 정도로 앞장서고 국민들이 스스로 조심하니 다행스러운 결과가 온 듯하다”고 말했다.

인적·물적 피해가 예상보다 적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선 태풍에 대한 과도한 대응에 대해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태풍 솔릭이 북상할 때 소득 양극화 심화 등 경제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서 태풍으로 인해 묻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23일 발표된 올해 2분기 소득분배 지표가 10년 만에 최악을 기록하자 “상황을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서 “7월 고용통계 동향과 가계소득 동향서 나타난 상황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득분배 악화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한 언급은 이날 나오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은 태풍 ‘솔릭’ 대책 논의를 이유로 원래 이날 오후로 예정돼 있던 규제혁신과 관련한 외부 일정을 연기했다. 


일각에선 “경제지표 악화와 관련된 결정”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해당 규제가 태풍 피해를 주관하는 부처와 겹쳐 논의 끝에 이날 오전 최종 취소 결정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못믿을 기상청

통계청과 관련된 이슈도 솔릭으로 인해 흐지부지된 느낌이다. 황수경 전 청장이 이끌던 통계청은 가구소득 동향조사 집계 방식을 섣불리 변경했다가 소득분배 지표가 심각히 악화된 결과를 도출, 정부와 청와대를 향한 비난을 촉발시켰고, 청와대가 발표한 가계동향 결과를 “제공한 적 없다”고 잘못 발언을 해 ‘청와대의 조작 발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황수경 통계청장과 남재철 기상청장을 전격 경질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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