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특집>재계 총수들의 ‘살벌한 추석나기’ 대공개

2011.09.09 10:20:00 호수 0호

MK 기부하고, MB 옆구리 찌르니 총수들 “추석 물 건너갔네…”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석에 국민들은 한껏 들뜬 모습이다. 벅차오르는 기분에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다. 재벌 총수들도 일이 손에 안 잡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이유에는 차이가 있다.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50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면서 총수의 재산 환원이 재계의 이슈로 떠오른 데다 이명박 대통령이 에둘러 압박을 가한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성의표시’가 필수인 상황이다. 이에 총수들은 고민이 많은 표정이다. 지분을 내놨다 자칫 경영권이 희석될 수 있다. 정 회장의 기부로 ‘시세’가 1000억대로 오른 것도 부담이다. 어설프게 기부를 추진했다간 티도 안 날 뿐더러 경영권까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번 추석이 마냥 즐거울 수만 없는 이유다.

정몽구 회장, 기부왕 등극·실적 1위로 편안한 명절
이건희 회장, 상생안 질타로 이번엔 제대로 내놔야


“공생발전의 시대적 요구가 왔을 때 선순환으로 바꾸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역시 총수가 앞장서야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생발전, 건강한 기업 생태계 만들기’ 오찬간담회에 참석한 30대 그룹 총수들에게 이처럼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비롯,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회장 등 모두 26명의 기업 총수들이 모였다.

이명박 대통령
“총수가 앞장서야”



이날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이미 상당한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서 “총수들이 직접 관심을 가지면 빨리 전파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도 했다. 재계는 이 발언을 앞서 사재를 출연한 정 회장의 움직임을 다른 총수들도 이어 받아달라는 당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날 참석한 총수들은 대규모 사재출연이나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무거운 과제를 안고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따라서 이들 총수들이 마음 편히 추석을 보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만은 한가위를 만끽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사상 최대 규모인 5000억원을 사재에서 출연해 재벌가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한 때문이다. 게다가 사재 출연 발표 다음날 ‘공생발전 시리즈 2탄’ 격으로 1조1500억원 규모의 납품대금 조기집행계획을 내놨다. 금액도 예년보다 크게 늘렸다. 이 역시 정 회장이 직접 ‘통 큰 지원’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재계 안팎에선 갈채가 쏟아졌다. 이 대통령도 “굉장히 잘한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어느 정도 부드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차그룹의 인지도가 글로벌 시장에서 급상승하면서 미국?중국?유럽 등 전 세계 주요시장에서 점유율이 날로 상승하고 있다. 그 결과 상반기 순익에서 삼성을 앞지르기도 했다. 여기에 항상 발목을 잡았던 노사문제도 2년째 무분규 협상타결을 이뤄냈고, 올 초엔 현대그룹 정통성을 상징하는 현대건설 인수까지 성공하는 등 현대차그룹은 현재 창사 이래 최고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명절을 보낼 여건이 충분히 갖춰진 것이다.

반면, 가장 뼈아픈 추석을 보낼 것으로 보이는 인물은 이건희 회장이다. 현대차에 밀리면서 재계 1위 자리를 내줬을 뿐 아니라 기부에서도 선수를 빼앗겼다. 이에 따라 지난 2008년 특검 수사 이후 사재 출연을 약속한 점을 들며 1조원 규모의 기부에 나설 가능성이 언급됐지만 이 회장은 별다른 발표를 하지 않았다.

재계에선 이 회장이 시점이나 출연 규모를 조율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8월 마련한 상생안이 ‘보여주기식’에 그치면서 이 대통령의 호된 질타를 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총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3차 협력사를 포함한 중소업체에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상생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펀드는 중소업체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펀드 출범 이후 1년 동안 2000억원가량만 대출되는 데 그쳤다. 중소업체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작았던 게 패인이었다.
이처럼 중소 협력업체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삼성전자는 슬그머니 액수를 당초의 절반인 5000억원으로 줄였다. 이에 이 대통령은 해당 펀드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동반성장에 대한 대기업과 총수의 진정성을 수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회장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마음 편한 추석을 보낼 여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회동에 참석한 유일한 여성 총수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최근 맏딸인 정지이 전무가 화촉을 밝히면서 집안에 경사가 났지만 회사 분위기는 초상집을 방불케 한다. 현대건설을 현대차에 빼앗겼고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공들인 대북사업은 악화일로로 내달리고 있다. 또 최근엔 그룹의 축인 현대엘리베이터가 2대주주인 쉰들러그룹과 마찰을 빚으면서 경영권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사실상 상생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범현대가가 빠짐없이 참여한 사재출연에 홀로 이름을 올리지 않은 점도 부담이다. 특히 현대그룹은 현대가의 적통을 자임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청와대와 주변의 구색에 맞춰 무턱대고 기부를 할 수도 없다. 정 회장과 한 집안 식구인 만큼 비교가 불가피한 때문이다. 출연 규모에 따라 자칫 선심 쓰고도 비판을 받는 형국으로 흐를 수 있다는 얘기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은 그나마 나은 케이스다. 저마다 상생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1969년 LG연암문화재단 설립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개 공익재단에 약 4600억원 규모를 출연해 왔다. SK도 2006년 행복나눔재단을 설립해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고 사회적 기업 육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포스코 역시 성과공유제 확대, 벤처창업 지원 강화, MRO 사업 영업이익률 0% 달성 등 3대 분야 목표를 위해 향후 3년간 2000억~3000억원을 들일 계획이다. CJ 역시 진정성, 지속성,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3대 원칙을 기반으로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 정책을 펴나갈 방침이다.
재산 환원이 재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어 고심
기부 ‘시세’가 1000억원대로 뛰어오른 것도 부담


이밖에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현재현 동양 회장 등은 일자리 창출을 내걸었으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물가를 잡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도 추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문제는 범현대가의 통 큰 기부 이후 총수의 재산 환원이 재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성의표시’가 필수인 상황이다. 그러나 총수들에게 기부는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다. 지분을 내놓는 것이 경영권 유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일부 지분을 내놓아도 우호 지분이 많기 때문에 경영권에 문제가 없지만 다른 기업들은 사정이 다르다”며 “총수가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경영권을 내걸고 지분을 기부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추석 후 총수가
내놓을 카드에 관심

재산 기부 ‘시세’가 1000억원대로 뛰어오른 것도 부담이다. 모대기업 고위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의 기부 이후 총수의 재산 환원을 검토하고 있지만 수백억원 정도에 그쳐 ‘내도 티가 안 날’ 상황”이라며 “대신 돋보일 수 있는 여러 방식을 고민 중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결국 정 회장을 제외한 여타 대기업 총수들은 마음 편한 추석을 보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기부안 마련에 머리를 싸매리란 관측이다. 추석이 지난 후 이들 총수들은 대체 어떤 카드를 들고 나타날까. 그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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