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내는’ 적십자 회비의 이면

2018.03.06 08:31:53 호수 1156호

“안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죠”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한적십자사가 매년 연말연시에 발송하는 지로통지서를 두고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공과금 또는 세금 고지서처럼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가 발송되는 데다 대한적십자사가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를 어떻게 알고 지로통지서를 발송하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일각에선 적십자의 ‘구시대적’이고 ‘반강제성’을 띤 모금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적십자사가 매년 연말연시에 발송하는 회비 고지서를 ‘지로 고지서’ 형태로 제작하고 있어 논란이다. 고지서가 세금이나 공과금 등과 똑같이 구성된 탓에 ‘의무 납부’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의무로 알고…

최근 시민 A씨는 적십자로부터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우편에는 ‘지로 고지서’ 형태로 발송된 적십자사 회비 고지서가 들어 있었다. 고지서가 세금이나 공과금 등과 똑같이 구성된 탓에 A씨는 적십자 회비를 의무로 착각하고 올해도 납부했다. 

A씨 외에도 많은 국민들이 연말연시면 항상 날아오는 적십자 회비가 ‘의무 납부’인 줄 알고 매년 회비(1만원)를 납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십자는 고지서 내에 “적십자 회비는 자율적으로 참여하시는 국민 성금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놨지만 얼핏 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또 회비 고지서의 색깔이나 용어 등 구성 역시 우리가 내는 세금·요금 고지서와 똑같아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적십자사가 걷은 회비는 지난 2014∼16년까지 1500억원에 달한다.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적십자의 모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문구처럼 적십자 회비는 의무적으로 내는 요금이 아닌 개인이 선택해 내는 성금이다. 하지만 고지서 형태로 발송돼 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을 줘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적십자사 측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며 적십자사 회비 납부율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인식이 지속적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십자사는 여전히 소득에 상관없이 25∼75세의 모든 세대주에게 회비 고지서를 발송하고 있다. 12월에 1차로 고지서를 발송하고 납부하지 않은 세대에 한해 이듬해 2월 2차 발송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고지서 형태로 발송해 독촉하는 느낌을 준다면 이는 강제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원한다면 적십자사가 고지서 수령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는 지난해 초 성명을 내고 적십자의 반강제적 회비모금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대구참여연대와 우리복지연합 등이 참여하는 연대회의는 당시 “적십자의 특혜모금 방식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행정기관에 개인정보 요구를 중지하고 반강제성 지로 납부제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지로통지서 두고 세금고지서와 혼동
“반강제성 납부제 폐지해라” 목소리

적십자회비 모금은 1953년 한국전쟁 고아와 전상자들의 구호를 위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성원을 당부하는 선포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국가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적십자 모금에 국가가 개입했을 수 있었다. 


실제 적십자 활동은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적십자는 60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과거와 같은 낡은 방식 그대로 국가행정기관의 손을 빌려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 아닌 지로 납부제 모금 방식은 앞으로 계속 저항을 받을 것이고, 모금액 역시 줄어들 것이라고 연대회의 측은 지적했다.

적십자회비라는 명칭이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회비’라고 기부금을 지칭하는 것은 자발적 성금의 성격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연대회의는 “회비는 모임의 개설이나 유지를 위해 회원이 내는 돈이다. 적십자는 회원도 아닌 전 국민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반강제적인 지로 용지를 배포하고 있다”며 “회비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성금’ 등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십자회비는 1996년까지 통·반장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수납해 사실상 세금인 것처럼 모금됐다. 이 부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지금의 지로 용지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도 통장이나 반장, 공무원들이 각 세대나 법인을 찾아 회비 모금을 하고 있다.

지로 용지도 공과금 고지서와 유사하게 납부기한을 명시한 형태인 데다 통·반장이나 공무원들이 납부를 독촉하기 때문에 준조세(세금은 아니지만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적십자회비 고지서를 받았다는 한 직장인은 “납부 실적이 저조하다면 투명한 경영과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낼 수 있도록 해야지, 무조건 내라는 식으로 고지서만 발부하면 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 시민단체에 따르면 전 세계 198개국 적십자 중 세금 같은 지로 용지를 세대주·사업자·법인에 발송하는 방식으로 모금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일본은 적십자 지사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거나, 적십자 관계자의 가정방문을 통해 회원가입을 신청한 경우에만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미국은 공동모금단체(United way)나 홈페이지를 통해 모금하고 있다. 프랑스·독일 역시 적십자 회원에 한해서만 회비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적십자 측은 “여러 문제점을 고려해 1996년 제도개선위원회를 거쳐 지로제도가 선택됐고 2000년부터 현행의 지로 용지 배부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라며 “지로 용지상에 ‘적십자회비는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성금입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으며 2018년 2월 중 시행할 2차 모금부터 그 문구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도록 글자 크기를 확대해 정면에 노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주소 어떻게?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가기관이 아닌 특수법인 대한적십자사가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를 어떻게 알고 지로통지서를 발송하느냐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1953년부터 주민등록법 및 시행령, 대한적십자사조직법 및 시행령에 의거해 행정안전부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는다. 연간 약 400만건의 개인정보가 행정안전부서 대한적십자사로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