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회고록> 3000억 파문 일파만파 전모

2011.08.15 11:40:00 호수 0호

YS “혼자 책임진다 해놓고 말년에 이래 뒤통수치기가?”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발간한 회고록으로 파문이 일파만파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전 대통령 측에 3000억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에 대해 “1995년 11월 수감 직전에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이후 그동안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며 “이제 역사를 위한 기록을 남기는 자리이니만큼 핵심적인 내용은 밝혀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썼다. 20년이 지난 불법 정치자금은 과연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밝힌 노 전 대통령의 저의는 무엇일까? 확산되고 있는 <노태우 회고록> 파문을 총정리 해봤다.

회고록에서 “YS에 대선자금 3000억 건넸다” 밝혀
공소시효 완료 검찰 수사 불가능, 파문으로 끝날 듯

노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출간한 <노태우 회고록>(상·하권)에서 “199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양대 선거를 맞아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면서 정치자금과 북방외교를 비롯한 6공화국의 비화를 공개했다. 특히 대선 비자금을 상세히 공개하면서 “비자금으로 파생된 일들로 함께 일한 많은 사람과 국민에게 걱정과 실망을 안겨준 데 대해 자괴할 따름”이라며 “내가 마지막 사람이었기를 진실로 바란다”고 썼다.

“YS의 요청으로
3000억원 지원”


이번 회고록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노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 측에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힌 부분이다.

그는 김 총재가 그 해 5월 대선후보로 결정된 직후 대선자금과 관련해 “적어도 4천억원에서 5천억원이 들지 않겠느냐. 그 많은 자금을 조성할 능력이 없으므로 대통령께서 알아서 해 주십시오”라며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금진호 상공부장관과 이원조 의원을 김 총재에게 인사시키면서 선거자금을 김 총재 쪽에서 직접 조성하고 나는 뒤에서 돕기로 했다”며 “그 후 금 장관과 이 의원 두 사람이 각각 1천억원 정도의 기금을 조성해줬다고 들었다”고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 김 총재와 당 선거 관계참모들로부터 자금이 모자란다는 SOS(긴급요청)를 받았다”며 “금 장관을 통해 한몫에 1천억원을 보내줬다”고 밝혔다.

이에 “김 총재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이제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며 “결국 내가 김영삼캠프의 선거자금 3천억원 조성을 도운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금고에 대해 “1993년 2월 25일 청와대에서 인사를 나누고 대통령 취임식장으로 떠나기 전 그 금고에 100억원 이상을 넣어두게 했다”고 전했다.

그는 비자금 사건 수사를 통해 드러난 2757억원의 보유 배경에 대해서는 김 전 대통령이 당선 후 청와대로 자신을 찾아오지 않아 전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가 끝난 후 이현우 안기부장의 보고를 받고는 예상외로 많은 자금이 남아 있어 깜짝 놀랐다”며 “앞으로 후임자가 나라의 큰일에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판단했지만 그는 끝내 청와대에 오지 않아 남은 자금을 후임자에게 전해주지 못한 채 퇴임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 정부가 6공 사람들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잡아들이는 상황이라 통치자금 문제는 상의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며 “남은 자금을 반드시 후임 대통령에게 인계해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퇴임하더라도 국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모은 돈은 훗날 유용하게 쓰자’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정치, 통치자금은
대기업으로부터 ‘충당’


노 전 대통령은 “나의 재임 시까지 여당의 정치자금은 대부분 대기업으로부터 충당했다”며 “기업들은 정부의 국책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얻은 이익을 상당 부분 정치자금으로 내놨고 정권 측에서는 이 자금을 정치 또는 통치에 필요한 여러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집권 시절 통치자금 마련 방법과 관련해서는 “서울올림픽이 끝나자 기업인들의 면담신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면담이 끝날 때쯤 그들은 ‘통치자금에 써 달라’며 봉투를 내놓곤 했고, 기업인이 자리를 뜨면 바로 이현우 경호실장을 불러 봉투를 넘겨줬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인들의 방문은 통상적으로 추석이나 연말, 그리고 선거가 있기 전에 이뤄졌다”고 전했다.

그는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돈 문제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면서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아 정치적으로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남아 있던 돈은 대부분 금융기관 등에 위탁해 놓았다가 전액 몰수돼 국고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이런 일들이 필요한가’ 하고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지만 취임하고 보니 살펴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수감직전에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지고 어떤 처벌도 나 혼자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며 “이후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회고록을 작성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마당에 사실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밝히는 이유를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에게 걱정과 실망감을 안겨준 데 대하여 자괴할 따름”이라며 “이런 일로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이 법정에 서는 일은 내가 마지막이기를 진실로 바란다”고 했다.

YS측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저의 의심스러워”
노측 “YS와 대화 육성 녹음테이프 있다” 폭로


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폭로에 김 전 대통령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김기수 비서실장은 “김 전 대통령은 보도 내용을 보고받고 어이없어하셨다”며 “그 사람 지금 어떤 상태냐?”라고 반문했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4, 5년 전에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인 그가 회고록을 어떻게 썼는지, 이제 와서 그런 주장을 했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김 전 대통령이 감옥에 넣은데 대해 앙심을 품은 것 아니냐”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특히 “노태우씨가 자기 월급에서 줬다면 모를까, 이원조 의원과 자기의 동서인 금진호 장관을 통해 기업에서 받은 더러운 돈을 자기 주머니에서 준 것처럼 말하는데, 노씨는 무슨 더러운 돈을 그렇게 많이 받았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김 실장은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느냐. (노태우 전 대통령이야말로) 도둑놈 아니냐”며 노 전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더러운 돈을 당에다 주고 나서 김 전 대통령의 이름을 들먹이는데, 회고록이 오랫동안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사실 관계가 의심스럽다”면서 회고록 내용을 반박했다. 김 부소장은 “후보에게 대선자금을 직접 전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 자금은 당으로 가지 후보가 개인적으로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다”면서 “20년 지난 일을 이제 와서 얘기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공고시효 완료
검찰수사 불가능


김 실장과 김 부소장의 이러한 반박에도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측이 강력 부인하고 나서자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 측이 당시 대선자금 지원과 관련해 김 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고 폭로해 김 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전직 사정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녹음은 노 전 대통령이 재직 중인 시점에 청와대에서 이뤄졌다”며 “녹음된 대화에는 ‘3000억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등장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는 1995년 당시 김 대통령 측과 접촉해 아버지의 구속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무산됐다”면서 “재헌씨는 전·현직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의 공개 문제를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구속돼 있던 노 전 대통령은 정국에 미칠 파장, 진행 중인 비자금 사건 재판에 미칠 악영향, 향후 노 전 대통령 사면·복권 문제 등을 고려해 녹음테이프를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녹음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은 함께 구속돼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까지 알려졌으며, 전 전 대통령도 테이프를 공개하자고 설득했지만 노 전 대통령 측에선 끝끝내 테이프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노태우 정권 당시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장관도 “옛날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며 “책이 정식으로 나오고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이 쓴 이상 진실 그대로다”고 회고록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편 박 전 장관은 <노태우 회고록>과 관련해 “이미 3년 전에 회고록은 초본이 완성됐다”면서 “그러나 참모들이 YS 비자금을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 때문에 회고록 출간이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박 전 장관은 또 “YS는 이에 대해 역사 앞에 당당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YS가 떳떳하다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 그러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면서 “그러나 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으로 밝혀진 이번 사안에 대한 검찰 수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정치자금위반법은 공소시효가 5년이다”고 밝히며 공소시효가 완료돼 관련자를 재판에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공소시효를 감안하지 않고 수사가 진행된다고 해도 노 전 대통령의 건강이 극도로 좋지 않아 사실상 수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역사를 위한 기록을 남기는 자리’라며 회고록에서 밝힌 노 전 대통령의 폭로는 전 대통령 간의 앙금과 김 전 대통령 측의 강한 반발만 불러일으키는 선에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논란 속에 전 전 대통령도 회고록 출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전 전 대통령 관계자에 따르면 1979년 10·26, 12·12 사태를 겪으며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해 권좌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재임 시절, 그리고 퇴임 후 5공청산과 김영삼 정부의 비자금 수사 등에 대한 내용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회고록 파문에 빠진 정치권에 또 한 번의 후폭풍이 들이닥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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