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 묻힌 ‘판사 게이트’ 추적

2018.01.29 10:49:40 호수 1151호

‘○○○ 리스트’ 터질까 벌벌 떨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법조계가 충격에 빠졌다. 박근혜정부 시절 판사들의 동향을 수집한 ‘판사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난 것. 그런데 대법원이 정운호 법조게이트 때 브로커 이동찬과 최유정 변호사의 재판 동향도 보고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내막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대국민사과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23일,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발표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를 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조직적으로 일선 법관들을 뒷조사한 정황이 확인됐다. 2016년 8월24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했다는 ‘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 문건이 대표적이다. 

양승태 대법관 
사과 내막은?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이 추진하는 사안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법관들을 추려 특정 연구회 회원 여부, 정치적 성향을 비롯해 법원 내부 통신망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까지 파악해 문건을 작성했다. 

핵심그룹과 주변그룹까지 나누는 등 문화계 블랙리스트 못지않은 사찰 항목을 완성했다. 

그런데 서초동 안팎에선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더 조사하면 정운호 법조게이트 때 로비를 받은 의혹이 있는 판사들과 관련된 내용도 줄줄이 나올 것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정운호 법조게이트와 관련이 깊은 법조인 A씨의 말을 들어보자.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다 뒤지면 법조브로커 최유정 변호사와 이동찬과 관련된 내용이 나올 것이다”며 “법원이 주시하고 있던 사건이었으며 이들이 재판할 때마다 보고서가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판사 사찰 문건 파문 
정운호 법조비리에 재판 동향까지 파악

현재 최 변호사는 2심서 징역 6년을 선고 받았으며, 대법원에선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 이동찬씨는 2심서 징역 8년에 추징금 25억원이 선고됐다. 

이에 대해 A씨는 “당시 법원 분위기는 이들이 법조계를 흐려놨다며 중형을 선고했다”며 “법원은 이들이 아무 말도 못하게 확실히 묻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은 사법 정의를 허물었다. 그 과정 수많은 판사가 연루됐다. 

정운호 법조 게이트는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에게 수십억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주며 법조브로커 이동찬씨를 통해 판·검사에게 로비한 사건. 

건국 이래 최대 법조 스캔들이었다.

당시 이동찬씨가 판사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명 ‘이동찬 리스트’다. 여기에는 재판을 앞두고 수차례 전관 변호사와 통화한 판사부터 법조 브로커와 여행을 다녀온 판사 등도 포함된다. 사건이 불거지자 검찰은 이들 판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 1명 판 1명
단 2명만 기소 


법원은 충격에 빠졌다. 그러다 ‘레인지로버 판사’로 알려진 김모 전 부장판사가 뇌물수수 혐의로 2016년 9월5일 구속됐다. 그는 정 전 대표에게 각종 재판 청탁 명목으로 1억8000만원 상당의 금품과 물품을 받은 혐의였다. 

김 전 판사는 정 전 대표가 타던 레인지로버를 시세보다 싼 값에 산 뒤 그 돈을 돌려받았다. 딸이 네이처리퍼블릭 후원 미인 선발대회서 입상하며 정 전 대표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다음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법 역사상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6년 조관행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된 이후 10년 만이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사과문을 통해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일지언정 이 일이 법관 사회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 자체로 먼저 국민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깊은 자성과 절도 있는 자세로 법관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양 전 대법원장은 정말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웠을까 의문이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검찰에 이제 그만하자’라는 사인을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사건의 방향은 이들 예측대로 흘러갔다. 검찰은 당시 정 전 대표를 비롯해 이동찬씨와 연관된 판사를 이 잡듯이 수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 한 이후 다른 판사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검찰은 정 전 대표에게 금품을 받은 박모 전 부장검사와 수사관 두 명을 기소했다. 박 전 검사는 정 전 대표에게 감사원 감사 무마 대가로 1억원을 받은 혐의다. 

정 전 대표가 감사원의 서울메트로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감사원 고위 간부와 인연이 있는 박 전 검사에게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박 전 검사를 상대로 의혹을 확인하려 했지만, 정운호 법조 게이트가 터지자 그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지난해 5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선 판·검사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검찰 관계자는 “검찰 고위 간부는 수사조차 하지 않고 수사관들만 줄줄이 기소했다.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고 비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의혹 많던 판사들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검찰에게 법원은 갑이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이후 서초동에서는 무사히(?) 넘어간 판사들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OOO 판사다. 그를 두고 ‘OOO 판사 살았네’ ‘수십억 받은 가장 확실한 판사였는데…’ ‘그냥 옷 벗고 나갔더라’ 등의 얘기가 돌았다. 

실제로 OOO 판사는 정운호 법조 게이트서 로비 의혹이 가장 짙은 판사였다. 앞서 OOO 판사는 최 변호사가 변론한 이숨투자자문 대표였던 송창수씨의 사기 사건 항소심에서는 형량을 절반 이상으로 줄여 준 바 있다. 

송씨는 서울구치소서 함께 수감돼있던 정 전 대표에게 최 변호사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 한 장본인이다. 

법조 비리
은폐 의혹

OOO 판사의 이름은 정 전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 항소심에도 등장한다. 최 변호사가 정 전 대표의 항소심을 맡았다. 하지만 사건 배당 날 정 전 대표의 핵심 법조 브로커인 이민희씨와 저녁 식사를 대접 받고 “선처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이후 OOO 판사는 회피 신청을 해 재판부가 바뀌는 일도 있었다. 
 

최 변호사가 맡았던 2건의 항소심 사건에 모두 OOO 판사가 등장한 것. 이 외에도 OOO 판사는 이민희씨와 연예인, 모델까지 동석한 술자리에 참석한 의혹도 일었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사표를 냈지만 법원은 이를 수리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은 “법원 자체조사를 통해 사실확인을 한 뒤 사표를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많은 판사 연루됐지만 
1명만 총대 메고 수습

하지만 양 전 대법관이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OOO 판사는 특별한 수사 없이 지난해 법복을 벗었고 현재는 서초동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검찰은 이런 사안을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은 채 덮었다”고 입 모았다.

이런 배경에는 검찰이 판·검사 1명씩 기소하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는 전언도 있다. 

수사 대상에 올랐던 B씨의 지인은 “검찰이 이 사건 다 까버리면 법원은 정말 난리 나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OOO 판사의 수뢰혐의에 대해서도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양 전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로 묻혀버렸다”고 말했다. 

앞서 법조인 A씨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조사하면 이동찬씨를 비롯한 비리 판사들에 관한 보고서도 등장할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당시 법원에서는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침소봉대했을 뿐. 

또 나올라
노심초사

국민 10명 중 7명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검찰이나 특별검사가 강제로 수사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3차 조사를 담당할 별도 조사 기구를 꾸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운호 법조 게이트와 관련된 문건이 나온다면 법조 비리의 새로운 서막을 예고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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