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시 부른 변영주 감독

2018.01.02 11:56:58 호수 1147호

“일본서 반응이 더 뜨거웠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이수 아트나인서 뜻 깊은 상영회가 열렸다. 변영주 감독의 1995년작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2>가 22년 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관객들의 부름에 다시 답한 것.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극장의 불이 꺼지자 숨을 죽였다.
 



1991년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이 전파를 탔다. 50여년간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묻혀있던 상처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합의의 이면

할머니들의 투쟁은 자신들에겐 또 다른 전쟁과도 같았다.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손가락질하는 시민, “조용히 좀 계시라”며 만류하는 가족들,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한 정부까지 할머니들은 두껍고 높은 벽을 오랜 시간 경험해야 했다.

그 사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1315회(12월27일 기준)가 됐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일인 8월14일은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됐다. 2007년 미국 하원의회 공개청문회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서 위안부 피해 여성을 연기한 배우 나문희씨가 영화제서 여우주연상을 타는 등 과거에 비해 거부감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2015년 12월28일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안부 합의가 맺어졌다. 박근혜정부서 진행된 한일 위안부합의는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민의 70%가 반대할 정도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할머니들이나 관련 시민단체 역시 한일 위안부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이후 지난 27일 한일 위안부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위안부TF) 보고서가 발표됐다. 위안부TF 보고서에는 국내외 소녀상·위안부 표현·위안부 관련 단체 설득 등을 둘러싼 비공개 부분 즉, 한일 간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해자와 소통이 부족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22년 만에 다시 상영된 <낮은 목소리>
버스 타고 수요집회 가던 할머니 담겨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위안부TF 보고서에 대해 “(보고서 결과를)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특히 피해자 중심 접근이라는 인권 보편적인 문제가 불충분하게 반영되면서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지원한 시민과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안긴 점, 외교부 장관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만큼 피해자 중심의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에 등록된 239명의 피해 할머니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32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서 피해자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낮은 목소리> 3부작이 다시 수면 위에 등장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 8일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2> 상영회서 변영주 감독과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윤 대표는 “최근 피해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도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직접 버스표를 사서 수요시위에 참석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 털어놨다.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DVD 제작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낮은 목소리>는 서울 근교 나눔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할머니들, 중국에 살면서 고국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할머니들이 작품의 화자로 등장한다. 집회 현장에 모여 시민단체 관계자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목소리, 중국으로 찾아간 제작진을 맞아 노래를 부르는 구슬픈 목소리는 상영 내내 관객의 귓가를 울린다.

역사적 사실보다 삶 집중
할머니 나신으로 끝맺음


<낮은 목소리> 3부작을 만든 변 감독은 “정말 긴 9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본인 기생 관광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주도서 생활하던 중 당시 요정에 근무하던 성매매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 여성은 어머니 자궁암 수술비 마련을 위해 성매매를 하게 됐는데, 그 어머니가 과거 위안부 피해 여성이었던 것.

이후 변 감독은 윤 대표를 따라다니며 할머니들의 생활을 눈에 담게 된다. 

변 감독은 “<낮은 목소리>는 역사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50년 만에 자신을 드러낸 이 여성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또 “작품이 할머니들에게 일종의 심리치료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당시 작품이 극장에 걸렸을 때 할머니들은 매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고 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이후 할머니들에게 일종의 ‘환호’를 보냈고 그런 반응은 할머니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서 “관객들이 자신의 별 것 아닌 모습을 좋다고 말해주고, 자신을 성적으로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자 할머니들은 카메라 앞에서 더 많은 말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낮은 목소리> 3부작은 모두 일본서 개봉했고 국내서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작품의 엔딩 크레딧에는 후원을 해준 사람들의 명단이 자막으로 처리됐는데 편수가 거듭될수록 일본어가 많이 보인다. 일본인 후원자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윤 대표는 “일본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위안부 문제가 일본 여성들의 인권이나 포르노 영화에 강제로 출연해야 했던 여배우 문제 등과 하나로 연결돼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작은 움직임이다. 그렇지만 <낮은 목소리>도 작게 시작해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나”라며 “내년에 <낮은 목소리>를 일본에서 상영하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낮은 목소리>는 할머니 한 분의 나신을 천천히 조명하며 끝을 맺는다. 카메라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할머니의 몸을 고요하게 응시한다.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엔딩이다. 


피해자 목소리는?

변 감독은 “작품을 준비할 때부터 엔딩은 할머니의 나신이라고 생각했다”며 “젊을 때의 할머니가 아니라 이미 늙어버린 몸, 다시 말해 이제는 끌려가지 않는 몸, 해방된 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들은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이제는 안전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할머니의 나신은 피해자의 피해가 아니라 피해자의 현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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