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등골브레이커’ 해외전지훈련의 이면

2017.12.26 11:03:35 호수 1146호

“돈 없으면 야구도 못해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서울과 경기 지역서 고등학교 야구선수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몸살을 앓는다. 바로 ‘돈’ 때문이다.
 



한두 푼이 아니라 몇 백만원씩의 목돈이 들어간다. 해마다 정례화 돼버린 고등학교 야구부의 해외전지훈련 비용이다. 부모들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지나친 부담

언제부터인지 국내 야구계에는 프로야구단뿐만 아니라 대학교와 고등학교는 물론 심지어 중학교 야구부에까지 야구부의 1월 동계훈련으로 해외전지훈련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됐다. 한 겨울에는 외국의 따뜻한 지역을 찾아 적게는 한 달, 길게는 50일 이상 체류하며 훈련을 하는 것이 적어도 수도권 지역의 모든 고등학교 야구부와 대학교 야구부에서는 일정이 됐다.

야구 인프라가 잘 조성돼있고 기후가 좋아 최근 전지훈련지로 각광 받고 있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이나 전통적인 전지훈련지인 일본의 가고시마, 미야자키, 오키나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과 야구에 적당한 기후를 자랑하는 대만과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가 선호하는 전지훈련 지역이다.

문제는 이러한 장기간의 해외전지훈련에 충당되는 막대한 비용을 선수들의 부모들이 대부분 오롯이 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훈련인가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현상

야구 최고 명문고 중 하나인 서울고등학교는 지난 2017년 1월과 2월에 걸쳐 약 50일에 가까운 동계 해외전지훈련을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다녀왔다. 총 인원 46명(선수 41명, 코칭스탭 5명)의 체류 및 훈련비용으로 총 약 2억2000만원(2억1679만1700원)이 소요됐다.
 

이는 모든 훈련비용을 코칭스탭을 제외한 선수들이 부담한다는 관례로 추정해 볼 때 선수 1인당 530만원의 비용이 전가됐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약 50일을 체류하면서 4년제 종합 정규대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을 뛰어 넘는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지금은 엄격하게 금지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중학교서 고등학교 야구부로 진학예정인 선수들은 졸업 전 해의 12월이면 상급 진학대상 학교 훈련에 참가해 해외전지훈련도 동행했었다. 그때 일본으로 가서 50여일을 체류했는데 전지훈련 비용만 500만원이었고, 신입생은 야구부 입단비도 있어서 회비와는 별도로 100만원을 냈다.

여기에 야구부 월회비, 고등학교 때부터는 나무배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지훈련을 떠나는 아들에게 100만원가량을 더 들여 나무배트 다섯 자루를 사줬고, 용돈까지 쥐어주니 그 해 12월에 아들의 야구관련 비용으로 약 1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만들어야 했다.(중략) 

급여를 받는 봉급생활자로 목돈을 마련할 길은 은행서 대출을 받는 것이었고 그렇게 대출금을 일 년에 걸쳐 갚고 나니 다시 똑같은 상황이 그 후로도 반복됐다.(중략) 이건 미친 짓이다.” 

경기도 지역 A고등학교를 졸업한 야구선수 학부모의 말이다.

미국 500만∼600만원 이상 부담
관리 단체들 손 놓고 수수방관

“현재 아이에게 야구를 계속 시켜야 할지, 그만두고 공부를 시켜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중략) 동계전지훈련 비용이 이제는 중학교 300만원 고등학교 500만원은 아예 기준 금액이더군요.(중략) 이젠 돈 없는 애들은 야구도 못해요.” 

서울지역 B중학교 졸업예정 야구선수 학부모가 말했다.


이제 국내서 적어도 고등학교 야구는 돈과의 싸움이 돼버렸다. 최근 수년에 걸쳐 전국적인 규모의 고교야구대회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 야구부들이 챔피언을 독식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이렇듯 거대한 자본의 논리가 큰 배경으로 숨어있는 것이다. 

투자대비 효과의 극대화라는 명제가 국내 고등학교를 비롯한 모든 아마추어 야구계를 또한 지배하게 됏다.

돈과의 싸움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돈과의 싸움이 돼버린 우리나라 엘리트 학교 야구부에 관한 관리 기구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상위 단체인 대한체육회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까지 지난 수년간에 걸쳐 문제의 제기와 민원을 끊임없이 받아오던 직접적인 관리 단체들이 아직도 손 놓고 수수방관한 채 직무유기의 행태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무능함에, 수많은 야구선수의 학부모들은 오늘도 갈 길을 잃은 채 홀로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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