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없는’ 해양경찰청의 현실

2017.12.13 10:48:17 호수 1144호

또 지각…왜 자꾸 늦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앞서 <일요시사>에선 해양경찰청 수뇌부들의 ‘부족한 함정 경력’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이번에는 최근 일어난 낚싯배 침몰 사고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해경의 ‘부족한 장비’에 대한 이야기다. 창설 61년 만에 해체 수모를 당한 해경은 올 7월 문재인정부서 다시 부활했다. 박경민 청장은 “완벽한 바다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선언했지만 지난 3일 발생한 인천 영흥도 낚싯배 사고의 성적표는 참담했다.
 



지난 3일 오전 6시9분쯤 인천 옹진군 영흥도 진두항 남서방향 1마일(약 1.6㎞) 해상서 낚싯배 선창1호(9.77t)가 급유선 명진15호(336t)와 충돌해 전복됐다. 이 사고로 선창1호에 타고 있던 22명 중 송모(43)씨 등 13명이 사망했고 오모(70)씨 등 2명이 실종돼 수색작업 사흘째인 5일 발견됐다. 이에 따라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5명, 생존자는 7명이다. 

또 늑장 대응

이번 사고로 또다시 해경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다시 해체해야 한다”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해경의 현장 도착시각이 당초 발표보다 늦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해경이 현장에 도착시각이 시의적절 했는지 여부다. 전복된 배 안의 ‘에어포켓’서 2시간43분을 버티다 구조된 낚시객 3명이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해경이 현장에 도착했던 시각이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가 영흥도 진두항 남서쪽 1.85㎞ 해상서 낚싯배가 급유선에 들이받히는 사고가 발생했으니 현장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3일 오전 6시6분. 급유선 명진15호가 인천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낚싯배와 충돌해 2명이 추락했다’고 신고한지 1분이 지난 때였다. 


영흥파출소 직원 3명이 구조보트를 묶어놓은 곳에 도착한 것은 이날 6시13분이다. 하지만 보트는 13분이 지난 6시26분에서야 계류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해경 전용이 아닌 민간 계류장에 보트를 두다 보니 어선 7대에 둘러싸여 배들을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보트에는 야간 항해를 위한 레이더도 없어 눈에만 의지해 7.5노트(시속 13.8㎞) 속도로 가다 서다를 반복해 6시42분이 돼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유 보트 두 척뿐
심지어 신형은 고장

사고 해역서 뱃길로 각각 25.7㎞, 12.8㎞ 떨어진 곳에 있는 해경 인천구조대와 평택구조대는 구조보트보다 한참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인천구조대는 배가 아닌 차량으로 50㎞ 떨어진 영흥파출소까지 이동한 뒤 민간구조선을 타고 오전 7시36분 현장에 도착했다. 보유한 보트 2척 중에 야간 항해 장비가 있고 최고 속도가 40노트(시속 74.0㎞)에 이르는 신형은 고장이 나 수리 중이었고 기상이 나쁜 상황서 구형 보트를 타기엔 위험했기 때문이다. 

평택구조대가 양식장 등을 피하느라 입파도 남쪽으로 우회했어도 19노트(35.1㎞)의 속도로 현장에 오전 7시17분 도착한 것을 감안하면 ‘인천구조대에 신형 보트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늑장 대응 논란이 거세지자 해경은 지난 4일, 3차 브리핑을 통해 출동 지시받고 구조보트 장소에 도착했으나 구조보트가 주위 민간 선박과 함께 계류돼 이를 이동조치하느라 13분이 지연됐고, 야간 항해 위한 레이더가 없어 보트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육안으로 이동했다고 해명했다. 

또 평택 해경구조대가 배치된 제부도서 사고 지점 간 최단거리는 양식장이 산재하고 수심이 낮아 저시정인 상황서 운항이 불가해 입파도 남쪽으로 우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천 해경구조대의 경우 보유한 보트 두 척 중 야간 항해 장비가 있는 신형은 고장, 수리 중이었고 가동 중인 구형 한 척으로 사고 해역까지 항해하는 것은 위험하고 장시간 소요될 것으로 판단해 육상으로 이동해 영흥파출소서 민간구조선을 통해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도착 왜 늦었나?
하필 신형은 고장


해경 관계자는 “구조대를 곳곳에 배치하면 대처가 빠를 수 있겠지만 여전히 인력과 예산이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사고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해체됐다가 올 7월 부활한 해양경찰의 구조체계가 여전히 개선될 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세월호 이후 구조·안전 분야 사업 예산을 늘려가고 있으나 해경은 여전히 낡은 장비와 예산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5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수색·구조 역량 강화, 항공기 도입, 해양사고 예방, 연안구조장비 등 구조·안전 관련 12개 사업 예산은 2014년 2550억원서 2015년 3366억원, 2016년 339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2558억원으로 몇 년간 추진해왔던 일부 사업들이 끝나면서 예산이 다소 줄긴 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강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 예산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2015~2016년 사이 수색·구조 역량 강화 분야는 40억원서 117억원으로 3배 가까이 증액됐고 연안구조장비 도입 예산도 24억원서 148억원으로 6배 이상 늘었다. 예산이 전혀 없었던 전문구조장비 인프라 확충도 43억원이 새롭게 편성됐다. 

하지만 해경의 장비 부족난은 여전하다. 

매년 예산 증가해도
장비는 턱없이 부족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해경에 필요한 헬기·비행기는 모두 52대다. 그러나 해경이 보유한 항공기는 헬기 17대, 항공기 6대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대뿐이다. 헬기·비행기의 40%는 기령이 18년을 지났고 야간 비행도 불가능하다. 


최근 3년간 헬기·항공기의 비행시간 대비 수리시간 현황을 보면 23대 중 6대가 수리에 훨씬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헬기 벨-412종의 경우 연간 평균 170시간을 비행했으나 수리시간은 무려 1643시간에 달했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전체회의에선 인천 영흥도 낚싯배 추돌사고와 관련해 정부를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일단 구조 과정서의 미흡한 해양경찰청의 대응에 대해 여야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 초기대응 실패의 책임으로 (해경이) 해체됐다가 다시 문재인정부 들어와 부활했는데 (시스템 미흡 지적에 대해) 과거 정부를 탓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해경이 신속히 구조출동에 나서지 못한 이유로 계류시설 미비를 든 데 대해 “이번 새해 예산안 심사 때 ‘관련 예산 편성이 이만큼밖에 안 되니 확대해달라’고 쫓아다닌 의원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장비 부족 탓?

같은당 이개호 의원은 “해경이 부활한 이후에 달라진 것이 아직 없다”며 “야간 항해가 가능한 신형 배는 고장 났고 고속보트 두 대는 야간운항 기능이 없어서 출동을 못했다. 이건 장비의 문제냐 아니면 현장 운영 기술의 문제냐”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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