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금양호 비극 후일담

2017.11.07 08:57:02 호수 1139호

나라 위해 죽었지만…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2010년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인근 해역에는 금양호 선원 9명이 잠들어있다. 천안함 선체 수색 작업을 도와달라는 해경의 요청을 받고 주저 없이 뱃머리를 돌렸다가 캄보디아 상선과 충돌해 침몰한 금양호.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희생당했지만 이들은 보상금조차 받지 못했다. 남겨진 유가족들의 슬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꾸미잡이가 한창이던 2010년 4월2일. 30∼50대 선원 9명이 탄 100t급 저인망어선 98금양호가 군산 앞바다서 급히 백령도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1주일 전 침몰한 천안함 선체 수색 작업을 도와달라는 해경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날 백령도 남쪽 해상의 물살은 유독 거셌다. 그물이 조류에 엉키고 바닥에 걸려 찢어졌다. 선체 수색이 어렵다고 판단한 금양호는 다시 뱃머리를 돌렸지만 대청도 남서쪽 해상서 캄보디아 상선과 충돌해 침몰했다.

의사자 됐지만…

선원 2명은 시신으로 발견됐고 나머지 7명은 실종됐다. 희생자는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인 선원 2명이었다. 이후 희생자 유족의 힘겨운 ‘투쟁’이 시작됐다. 고인의 명예를 찾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었다. 

유족들은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희생된 만큼 이들을 ‘의사자’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침몰 당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구조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정치권이 나서 관련법을 개정하자 2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 3월에야 보건복지부는 결국 이들을 의사자로 지정했다.

그러나 의사자 지정에 따른 정부 지원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유족들이 선원 1인 당 국민 성금으로 2억5000만원을 이미 받아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다는 판단이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이미 보상금을 지급받은 경우 그 금액에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게 돼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 성금을 국가나 지자체서 받은 보상금으로 본 것이다. 법원은 2012년 12월 금양호 선원 유가족 1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의사자 보상금 청구소송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당시 “금양호 희생자 유족들은 이미 의사자에 준하는 예우와 보상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유가족 중 한 명은 “금전 문제에 집착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조심스럽다”면서도 “국민 성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의사자 지정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국민이 모아 준 성금이 국가의 보상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국가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재단을 설립해 희생자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사업도 어렵게 됐다. 실종 선원 허석희씨의 작은 아버지 용진씨는 “국가 보상금으로 장학금을 마련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돈이 없는데 어떻게 추모사업을 하겠냐”며 난감해했다.

간신히 의사자 지정 “보상금은 없다”
재단·추모공원 무산…고통 받는 유족

희생자들의 국립묘지 안장 문제도 힘겹다. 일부 희생자는 전과 기록이 있어 국가보훈처의 심의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의사자 가운데 전과 기록이 있는 경우가 한번도 없었다”며 “의사자 유족이 국립묘지 안장을 신청하면 전과 여부를 판단해 심의위원회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희생자 가운데 고(故) 정봉조씨의 유족만이 국립묘지 안장을 신청해 심의를 통과했다. 정씨의 위패는 대전현충원에 봉안돼있다. 사고해역의 관할 구청인 인천시 중구는 나머지 희생자 유족들로부터도 국립묘지 안장 신청을 받아 보건복지부를 통해 조만간 보훈처에 신청서를 낼 예정이다.


얼마 전엔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도 금양호에 대한 보상을 촉구했다. 안 의원은 지난달 13일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가의 부름에 의해 아무 조건 없이 수색 작업에 나섰다가 침몰된 우리 어민들을 국가가 나서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보상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어 “지금까지 해수부서 선주와 협상한 보상 내용은 과도하게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이 발생돼 도저히 선주가 받아들일 수 없는 보상 조건이었다”고 질책하며 “충분한 협상을 통해 선주를 위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안 의원은 “당시 희생되신 9명의 희생자에 대해서는 보상금 지급 및 의사자 지정의 대우가 있었지만,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의 부름에 의해 수색작업을 결정한 선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업인이 생업을 뒤로하고 아무런 대가 없이 국가의 요청으로 수색 지원 나가 사고를 당했다면 당연히 국가가 보상해야 하고, 이런 헌신적인 일을 격려해 국민의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겨운 사투

어느새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98금양호 선원의 희생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하지만 금양호 선원의 유가족들은 아직도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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