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제일은행 총파업 사태 막전막후

2011.07.04 06:00:00 호수 0호

“꼭두각시 행장은 빼고 얘기 합시다”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위태롭기만 하던 SC제일은행의 노사관계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노조가 노동쟁의의 최고 단계인 총파업에 돌입한 것. 절반에 가까운 직원이 여기에 동참했다. 당연히 영업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조합원인 간부급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리차드 힐 행장이 노조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서면서 파업은 장기화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노조, 한미은행 파업 이후 7년 만에 총파업 단행
노사 타협점 이끌어내지 못해…장기화 수순 밟나



SC제일은행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단행했다. 지난달 27일 노조 2800여명은 버스 65대를 대절, 속초로 떠났다. 전체직원(650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파업에 나선 것이다. 은행 노조의 장기 파업은 지난 2004년 한미은행 이후 7년만이다.

2800명 파업

SC제일은행 노사 갈등은 사측이 지난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개별차등 성과급제’를 제안하면서 촉발됐다. 성과급제는 근무평정을 5등급으로 나눠 봉급인상률을 차등 적용하고 최하등급을 두번받게 되면 지점근무가 아닌 개별영업을 시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진은 성과급제에 대해 ‘노사가 윈-윈 하는 제도’라고 설명했지만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성과연봉제는 결국 외국계 경영진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의 직원들을 희생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번 총파업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터질게 터졌다는 입장이다. SC제일은행은 업계에서 유독 심한 ‘수익’ ‘성장’ ‘결과’ 중심 경영방침으로 직원들의 반발을 키워왔다는 평가다. 실제 이 같은 불만은 스탠다드차타드(SC)가 제일은행을 인수한 직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이번 파업은 비노조원인 간부급 은행원들의 공감마저 얻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SC제일은행 간부급 은행원은 “제일은행 시절에는 일에 대한 보람과 사명이 있었는데 이제는 상품을 몇 개 더 팔고, 실적을 얼마나 더 올려야하는 지에 대한 생각뿐”이라며 “직원들은 이번 사건을 생존권의 문제로 보고 있다. 여기가 한국이지 영국이 아닌데 경영진은 이윤추구와 성과만능주의로 모든 걸 판단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총파업으로 SC제일은행은 영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영업지점을 통합운영영업점과 일반영업점으로 나눠 파업에 대처하고 있다. 통합운영영업점은 모든 은행 업무가 가능하며 SC제일은행 전 지점의 5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일반영업점에서는 입출금, 당좌거래 등의 단순업무만 이뤄질 뿐 대출 업무, 카드 발급, 펀드 가입 등의 업무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SC제일은행 측 관계자는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려 노력 중이지만 파업이 길어지면 피해는 불가피하다”며 “업무 로드가 걸린 직원들도 피로를 호소해 파업 찬반 여부와 상관없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바람과 반대로 파업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조가 “협상이 되기 전까진 돌아오지 않겠다”고 밝힌데 대해 리차드 힐 SC제일은행장이 처벌 가능성을 시사하는 ‘강수’를 둔 때문이다.

파업 다음날인 28일 오전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과 리차드 힐 SC제일은행장을 만나 중재를 시도했다. 하지만 양측은 약 1시간의 면담 끝에 서로의 이견만 확인한 채 협상은 결렬됐다.

당시 김 위원장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은 다른 시중은행들이 SC제일은행보다 경영성과가 좋다”며 “국민과 직원들은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한국에서 보여준 투기적 경영행태에 실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성과제가 포함하고 있는 상시 퇴출제도는 노동조합으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영진이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도외시한 경영전략으로 노사간 소모적인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여론도 전달했다.

이에 대해 리차드 힐 행장은 “성과연봉제는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키고 조합원을 보호하는 제도”라며 기존 입장을 지켰다. 리차드 힐 행장은 또 “파업이 길어지면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이 위험에 처해질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처벌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이다. 리처드 힐 행장은 직원들과 잘 어울리는 등 친화적이고 밀착형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뿐, 정책 결정에 대한 권한은 전무하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SC제일은행의 대주주인 스탠다드차티드은행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리처드 행장을 노조는 ‘꼭두각시’에 비유했다.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융통성을 발휘할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총파업은 장기화 수순을 밟고 있다. SC제일은행 경영진은 노조원이 집결해 있는 속초의 한 콘도 인근에서 노조와 접촉 중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타협을 이끌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은행 노조 지지

한편, 대만의 전국은행노동조합은 한국 금융노조와 SC제일은행 노조에 연대 서신을 보내 파업 지지를 표명했다. 라이 완 치 노조위원장은 “대만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를 비롯한 5만2000명의 노조원들을 대신해 SC제일은행 노조의 무기한 총파업을 적극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성과연봉제는 SC가 글로벌 정책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시행하려고 하지만 이는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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