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덴셜타워 자살사건 전말

2017.09.11 10:31:17 호수 1131호

보험설계사는 왜 뛰어내렸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또 한 명의 보험설계사가 자살했다. 보험설계사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통해 실적을 쌓는 일을 주로 한다. 대인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직군이기도 하다. 50대 감정노동자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푸르덴셜 타워 21층서 양모씨가 투신했다. 푸르덴셜 생명 지점장으로 근무했던 양씨의 죽음에 보험업계는 이내 술렁였다. 1996년 해당 보험사에 보험설계사로 입사한 양씨는 2001년부터 지점장으로 근무했다. 계약형태는 1년 단위의 위탁계약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왜 죽었나

그가 죽음을 택한 것은 사측의 갑작스러운 해촉 이후 삶을 비관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다.

고인의 직장 동료들은 그가 해촉 당한 건 부당한 실적평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고인이 2년여 전부터 사측으로부터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았고, 부당한 평가를 받은 그가 임원과 면담했으나 얘기가 잘 풀리지 않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해촉의 근거가 된 평가를 두고 사측과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이를 비관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해당 보험사 측은 말을 아꼈다. 보험사 측은 6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경찰에서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며 “고인에 대한 애도와 유가족을 배려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 장례 관련 비용은 사측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선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고인의 유족과 주변 인물을 통해 정확한 투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갑작스러운 보험설계사의 자살에 업계는 미묘하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 7일 오후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보험설계사와 실적 압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전제하면서도 “지점장은 영업보다는 관리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적 부진을 이유로 해촉 당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2001년부터 지점장으로 일해
사측 해임 비관? 실적 압박?

일각에선 고인이 보험설계사의 권리 보장 등 산재한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자살을 택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고인의 지인 2명은 그에게서 유서 성격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자에는 지인들에게 당부한 업무 협조 내용 등이 담겼다. 두 사람은 언론과의 인터뷰서 보험설계사의 법적 지위 보장을 위해 사측과 공방을 벌여온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라고 말했다.

보험설계사의 지위가 불안정하다는 주장은 하루이틀 새 나온 게 아니다. 

보험설계사는 위촉과 해촉 과정서 보험사의 입김이 강하고 안전장치 또한 없기 때문에 고용 절벽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실제 올해 4월 보험업계 통계에 따르면 생명보험회사 21곳의 13개월 차 설계사 등록 정착률은 평균 40.2%에 불과했다. 10명 중 4명만 자리를 지키고 나머지 60%는 자의 혹은 타의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뜻이다.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한 지 1년 남짓 됐다는 강모씨는 “업계서 오래 종사한 선배 말로는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면전서 망신 주거나 공식석상서 인신공격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오세중 보험인권리연대 대표는 “보험사들이 해촉할 때는 계약직 노동자로 취급하고 관리할 때는 자영업자처럼 내버려 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에도 보험설계사가 자살한 일이 있었다. 

그해 3월 인천의 한 아파트서 알리안츠 생명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조모씨가 투신해 사망했다. 조씨의 언니는 동생의 죽음 이후 서울 여의도 알리안츠 생명 본사 앞에서 보험설계사의 열악한 처우 개선과 동생의 명예 회복을 외치며 홀로 시위를 진행했다.
 

사건은 20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알리안츠 생명은 원금 보장은 물론 연 1.0%의 확정이율을 제공,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한 연금보험 상품을 홍보했다. 설계사들을 대상으로 이 상품에 대한 교육이 수차례 이뤄졌다. 

실적 좋은 보험설계사로 손꼽혔던 조씨는 이 상품을 상당수 고객에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상품 판매 이후였다.

수익 보장을 약속했던 상품서 원금 보장은커녕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고객들의 항의는 고스란히 조씨에게로 집중됐다. 조씨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급여는 물론 집의 담보 대출, 결혼 패물까지 처분해 고객들의 손해를 배상했지만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견디다 못한 조씨는 결국 유서를 남기고 삶을 정리했다.

2012년에도 보험설계사 자살
법원 “강제 해촉 손해배상”

법원에선 지난 2014년 강제 해촉당한 보험설계사에게 보험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모씨는 모 생명보험 소속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영업 실적 1위를 기록하는 등 우수한 설계사로 이름이 높았다. 


하지만 그가 사업단장의 부당·불공정 행위에 대해 탄원서 등을 제출하자 사측은 이씨를 무단결근과 보험 부당 모집 등의 이유를 들어 강제 해촉했다.

하루아침에 나앉게 된 이씨는 사측에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며 소송을 진행했다. 1심은 보험사의 주장이 모두 인정돼 패소했지만 항소심에선 이씨가 내규를 위반하거나 부당 모집을 한 사실이 없고 무단결근이 계약 해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보험사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유 없음’으로 기각했다. 

당시 항소심을 담당했던 변호사는 “보험설계사의 강제 해촉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번 판결로 정당한 사유나 절차 없이 함부로 설계사를 해촉하는 경우, 보험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아주 고무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오토바이 배달원 등 50개 직군 약 230만명에 달하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노동 기본권을 보장하고 고용·산재보험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보험설계사는 그 중에서도 51만여명으로 그 수가 가장 많다.

문 대통령의 공약으로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보험설계사들이 사회보험의 우산 밑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험업계에선 보험사의 일방적인 부당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보험사 비용 증가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노조 설립?

보험인권리연대는 지난 6월 창립총회를 열고 고용노동부에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위한 준비 절차에 들어갔다. 특수고용근로자들은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없는 상황일 때가 많았다. 전국셔틀버스연대의 경우 노조로 인정받지 못해 처음부터 법외노조로 조직된 바 있다.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 근로자들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고용노동부에 권고하면서 노조 설립의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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