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재계 강한 압박 드라이브 내막

2011.06.30 18:51:21 호수 0호

‘상생’ vs ‘포퓰리즘’ 치열한 기싸움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정치권과 재계가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이 반값 등록금, 감세 철회 등 정치권의 친서민 행보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잇따라 반기를 들면서부터다. 여야 정치권은 경제단체장들과 기업총수를 국회에 출석시켜 결판을 내겠다고 이를 갈았지만 총수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불참해 갈등이 심화됐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에 “재벌을 더 이상 비판하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한나라당은 이에 반발, 대기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서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여당은 재벌 비판 말라” 청와대, 지도부에 요청
 재계 “표에 홀려 집단이성 망각, 1년 반만 참자”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경제단체장과 기업총수를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한바탕 벼른 이면에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계 때리기’를 통해 ‘서민의 대변자’ 또는 ‘친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켜 내년 있을 선거에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연일 ‘상생’을 외치지만 재계는 이를 ‘포퓰리즘’으로 규정짓고 날 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날 세우는 정치권

민주당은 지난 6월 29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국회 공청회와 청문회에 불참한 데 대해 ‘오만불손한 태도’라며 극렬하게 비난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날 조 회장의 불참으로 환경노동위원회 한진중공업 청문회가 무산된 데 대해 “경총과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이 모두 나서서 재벌총수의 국회출석을 반대하는 것은 국회에 대한 능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와 관련, “한진중공업 노동자 13명이 전쟁포로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민주당이 재벌·대기업의 반인권적, 반인도주의적, 반윤리적 태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재계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목 할 부분은 ‘친 대기업’ 색깔이 강했던 한나라당 또한 연일 대기업을 때리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황우여 체제 출범 이후 달라진 원내지도부의 색채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당이 대기업과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는 4·27 재보선에서 드러난 등 돌린 민심이 촉매제가 됐다. 대기업의 무차별적 골목상권 파고들기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富)의 편법세습 등은 재벌에 대한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거센 반감을 불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당 내에서는 ‘MB노믹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MB정부는 그동안 각종 규제완화와 고환율, 법인세 감면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유인했지만 그동안 대기업은 자기 욕심 차리기에 바빴다.

이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 3년간 ‘친 대기업’ 정책을 펴왔지만 일자리 창출 등에서 대기업의 극히 소극적인 태도로 경제정책 전반이 어긋났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한나라당의 대기업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잇따라 정책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법인세 감면 철회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한데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대기업의 편법증여에 과세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대기업이 자회사인 비상장기업에 일감을 몰아줘 상장할 때 엄청난 수익을 자녀에게 편법 증여하는 경우에 증여·상속세를 매기는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부 대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자녀에게 부를 대물림하고 이를 토대로 그룹의 경영권을 쉽게 확보 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주는 통로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즉 MB노믹스에 반기를 든데 이어 대기업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법세습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이런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파상공세 성격을 띠면서 재계의 불만도 폭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 마디로 표에 홀려 집단이성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나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일련의 수순에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며 “이명박 정부의 최대 우군이었던 기업을 표 때문에 적군으로 만들려는 일부 세력이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단체들은 국회 청문회에 대기업 회장들을 대거 소환하거나 공청회에 경제단체 수장들을 세우려 했던 흐름에 정치권의 오만함이 엿보인다고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단체장이 참석하면 국회의원이 무조건 호통부터 치며 망신 줄 것이 뻔한데 굳이 참석할 이유가 없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인을 부르면 충분히 소명할 기회도 주지만 우리는 의원들이 호통만 칠 게 뻔하다. 그런 정치적 이벤트에 어떻게 단체장들이 가겠는가”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계는 그러나 정치권과의 갈등이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원하지 않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정치권과 맞서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재계에서는 일단 ‘비바람은 피해가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재계는 내년 총선과 대선 등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세력결집 차원에서 기업에 손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재계 인사는 “최악의 경우에도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1년6개월만 버티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가 정치권과의 싸움에서 전면전보다 장기전을 기획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재계가 적어도 이 대통령의 기업 프렌들리 방침은 큰 변화가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청와대는 한나라당 지도부에 대기업 비판을 자제해달라고 요청 했지만 당 지도부는 이에 반발하고 대기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재계를 향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정책 뿐 아니라 ‘친 서민’ 정책까지 배격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비판했다.
 
이 의장은 “대기업의 성장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관세수입조치, 고환율저금리 정책 등 시장원리에 반하는 각종 특혜를 정부로부터 상당부분 의존해온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치권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지나치게 ‘좌 클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라며 “재벌기업 역시 사회적 기여나 공정거래 관행 등에서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인 만큼 서로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불만스러운 경제계

한나라당 중진의원들은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기업 때리기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정몽준 전 대표, 김무성 전 원내대표 등은 “재벌이나 대기업은 무조건 나쁘고 서민·노동자는 무조건 옳다는 식의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쓴 소리를 했다.

이에 반해 정동영 최고위원은 “재벌 대기업의 국회 무시가 도를 넘었다”며 “한진중공업 청문회를 다시 추진할 것”이라 밝혀 정치권과 경제계의 날 선 공방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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