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없는 대통령상 '왜?'

2017.02.27 11:32:57 호수 1103호

잔치해도 모자랄 판에 ‘쉬~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레임덕(임기 말 지도자의 권위가 약해지는 현상)’은 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에게 거의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마지막까지 국민에게 높은 지지를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박근혜 대통령을 덮친 레임덕은 그 속도와 크기가 ‘쓰나미’급이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드러난 박근혜정부의 실체에 모든 권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난해 7월 처음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관련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지금 상황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 불씨는 작았지만 여기저기서 쏟아붓는 기름과 장작 탓에 불길은 크게 타올랐다. 1000만 시민이 광장에 모여 대통령 탄핵을 외쳤고, 그 목소리는 지난해 12월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귀결됐다.

권위 땅에 떨어져

탄핵안 가결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됐고 대통령으로서 모든 권한 역시 상실했다. 탄핵안 가결 이전에도 조금씩 잃어가던 대통령의 권위는 지난해 12월9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권위의 소멸은 모든 언행의 힘을 앗아갔다.

박 대통령이 공식석상서 하는 말은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했고, 모든 행동에는 조롱과 비판이 뒤따랐다. 대통령의 이름으로 주는 모든 표창 역시 그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정부 표창 규정에 따르면 표창은 공적에 대한 표창인 포상과 성적에 대한 표창인 시상으로 나뉜다. 포상에는 대통령표창·국무총리표창·기관장표창이 있고, 시상은 대통령상·국무총리상·기관장상이 있다.


포상은 성실한 직무 수행 등으로 국가 또는 사회 발전에 기여한 경우나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국민 복지 증진에 도움이 된 경우 수여한다. 시상은 정부 각 기관이 실시하는 각종 교육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경우에 준다. 포상이나 시상에서 대통령표창과 대통령상이 가장 큰 권위를 지닌다.

지난해 11월 열린 ‘2016 대한민국 게임대상’서 모바일 게임분야 우수상을 수상한 이원술 로이게임즈 대표는 대통령상에 대해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모바일게임 ‘화이트데이’로 상을 탄 그는 이날 수상 소감서 “사실 더 좋은 상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그 상이 대통령상이더라. 그 상을 받지 않고 이 상에도 충분히 만족하게 해주신 현재의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당시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이 하나둘씩 사실로 밝혀지고 있던 때였다. 시상식에 모인 사람들은 이 대표의 일침에 박수를 보냈다.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 대상 수상자에게는 대통령상과 상금 1000만원이 주어졌다.

우수상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탄 이 대표의 대통령상을 받지 않아 기쁘다는 소감은 대통령의 이름으로 주는 상의 권위가 바닥까지 추락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대통령 직무정지로 대통령상에 권한대행의 이름을 새겨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26일 미래창조과학부는 ‘대통령 과학 장학생’으로 선정된 학생을 초청해 메달을 수여했다.

탄핵 이후에도 여기저기 수여
수상하고도 숨기는 기업 있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제14회 대통령 과학 장학생 메달’ 사진에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누리꾼들은 메달 인증 사진을 두고 희귀한 물건을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인 ‘레어템’이라고 칭하며 웃음과 씁쓸함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에도 대통령상 수상자는 꾸준히 나왔다. 경남 양산시는 행정자치부 등이 주관한 제13회 대한민국 지방자치 경영대전 환경관리 분야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지난달 25일 열린 시상식서 양산시는 2015∼2016년에 추진한 환경관리시책을 주요 내용으로 환경관리 분야에 응모, 평가 항목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아 최고의 행정 능력을 입증했다는 평을 받았다. 같은 시상식서 전남 구례군도 대통령상을 받았다.


구례군은 친환경 식품 가공 유통단지인 구례자연드림파크 조성 이후 발전상을 소개해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의 훌륭한 모델로 평가받았다.

지난해 12월21일 aT센터서 개최한 대한민국 우수품종상 시상식에선 ‘필립’이라는 장미 품종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우수품종상은 ‘종자업계의 장영실상’으로 불릴 만큼 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최고상을 받은 필립은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품종으로 가시가 없고 화려한 색상이 특징이다. 현재 9억4000만원 상당의 로열티를 받고 13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에는 LG전자의 ‘LG 시그니처 올래드 TV’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2016 우수디자인’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수상 감추기도

박 대통령을 향한 실망감이 한창 커질 무렵, 몇몇 공직자들은 박근혜정부서 받은 훈장이나 표창을 감췄다고 한다. 40여년간 교직 생활을 했던 최모씨는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진열장서 훈장을 치웠다”고 고백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대통령상 수상 사실을 숨기는 기업도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의 방증으로 나타난 ‘박근혜 흔적 지우기’처럼 기업 이미지에 도움 될 게 없는 대통령상 수상 사실을 감추는 것이다. 해당 기업은 대통령상을 수상하고도 보도자료 한 줄 내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상 반납하겠습니다”


대통령상을 반납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40년간 유리 시공 사업을 해온 JSK글래스의 김정식 대표.

김 대표는 2015년 11월 ‘2015 대한민국 기술안전대상(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그에게 대통령상을 안긴 제품은 ‘JSK 고정형 유리 파쇄기’로 2014년 4월16일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생각하며 발명한 것이다.

제품은 선박, 자동차, 열차, 지하철 등이 침수와 화재 등 재난에 휩싸였을 때 장착된 안전핀을 제거, 레버를 돌려 강화유리를 깨고 탈출하도록 고안된 도구다. 김 대표는 세월호참사 당시 선체에 갇힌 아이들이 유리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개월간 침식도 잊고 작업에 매달린 끝에 제품을 개발한 김 대표는 대통령상을 받게 됐을 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상을 반납하고 싶다고 나서게 된 것.

작은 기술이지만 세월호참사 같은 비극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그는 기업이나 부처 어느 곳에서도 기술을 상용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제품을 상용화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국가나 사회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으니 상을 반납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한 언론과 인터뷰서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게 한국 정부”라며 “우리 정부는 상만 주고 그냥 땡이다”라고 비판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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