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 비자금 미스터리 <추적>

2011.04.19 09:55:05 호수 0호

순항 중인 ‘박찬구호’ 돛대 꺾이나

이제 갓 돛대를 달고 순항 중인 ‘박찬구호’가 거친 풍랑을 만났다. 검찰의 ‘사정 폭풍’이 금호석유화학을 덮친 것. 금호석유화학은 물론 업계에선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적잖은 뒷말이 나오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비자금 의혹. 세간의 관심은 ‘누가 찔렀을까’에 쏠리고 있다.

본사·협력업체 압수수색 “회계장부 등 확보”
수사 배경 관심…“누가 왜 찔렀나” 의문 증폭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석유화학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수사관 20여명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등을 압수했다. 검찰은 이날 2∼3곳의 금호석유화학 협력업체도 압수수색했다.



박찬구 회장은 출국금지 된 상태.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회사 임원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통해 박 회장 소환시기를 조율할 계획이다.

검찰이 뒤지는 것은 비자금이다. 비자금 규모는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대로 추정된다. 검찰은 “현재 수사 초기 단계라 비자금 규모, 조성 방법 등을 자세히 밝히긴 어렵다”고 밝혔다.

수십억∼수백억원대
‘검은돈’ 실체 추적


금호석유화학은 발칵 뒤집혔다. 회사 관계자는 “(박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사실과 다를 것”이라며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면서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날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연차 총회 행사장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검찰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세간의 관심은 검찰 수사 배경에 모아지고 있다. 검찰에 ‘누가 찔렀을까’하는 의문이다. 검찰은 금호석유화학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 기초적인 자료 검토 등 내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선 내부 제보자의 귀띔이 있지 않았겠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공익적 제보보다는 개인적 감정 등 제보자가 원한을 갚으려는 사적 동기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비자금 수사는 대부분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관련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면서 시작된다”며 “금호석유화학 수사도 비자금 조성 내용을 깊숙이 아는 내부자가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6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박 회장은 광폭 행보를 보이며 경영정상화에 ‘올인’해왔다. 그는 “직원들이 열심히 해 준 결과 회사 주가가 많이 올랐고 앞으로도 올라갈 가능성이 보인다”며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까지는 자율협약을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결과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6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뒀다. 지난 1분기에도 영업이익(연결 기준)이 288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0% 급증한 깜짝 실적을 내놓았다. 2분기 실적 전망치도 좋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해고된 고위 임원이 앙심을 품고 검찰에 비자금 첩보를 제공했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재계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무더기 정리해고가 잇따르고 있다. 오너와 전·현직 고위 임원들의 비리 의혹부터 회사 경영에 관한 의혹까지 각종 폭로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당해고자모임 한 간부는 “쫓겨나는 마당에 무슨 짓을 못하겠냐. 죽으면 혼자 죽겠냐. 그럴 수 있다면 나름 대책을 세우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실제 검찰의 수사를 받았던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내부 고발로 진땀을 흘렸다. 최근 들어 ‘검풍’이 휘몰아친 곳은 한화그룹, 태광그룹, C&그룹 등이다. 이들 기업은 모두 내부자 제보가 결정적으로 검찰을 움직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한화그룹의 비자금 의혹 수사는 금융계열사의 퇴직 직원의 제보에서 비롯됐다. 2005년 퇴직한 이 직원은 지난 6월 금융감독원에 차명계좌 등 증거와 함께 “한화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고 제보했다. 태광그룹도 결정적인 제보에 의해 수사가 시작됐다. 태광그룹 수사가 단기간에 그룹의 심장부를 겨냥한 것은 내부 고발자가 건네준 구체적인 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C&그룹 수사는 오너를 수년간 가까이서 보좌한 수행비서와 오너와 불화를 겪었던 전·현직 임원들의 제보가 큰 역할을 했다. 앞서 2003년 SK그룹 분식회계와 2006년 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 2007년 삼성그룹 특검 역시 내부 인사들의 제보로 시작됐다.

잘나가다 ‘삐거덕’
결정적 제보 가능성

검찰의 금호석유화학 수사가 협력업체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검찰은 금호석유화학 본사와 함께 협력업체도 뒤졌다. 검찰은 박 회장이 지인과 친인척 등이 운영하는 협력업체와 거래를 맺으면서 납품단가 등을 부풀려 차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지인 이모 대표의 G사, 지인 김모 대표의 S사, 작은처남 위모 대표의 J사 등이 검찰의 타깃이다. 검찰은 이들 회사가 박 회장의 비자금 조성 창구 역할을 했는지 집중 수사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금호석유화학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는데도 다른 업체가 공급한 것처럼 세금계산서를 허위 작성해 단가를 부풀리는 수법을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업체에서 싸게 구입한 물건을 금호석유화학에 비싸게 파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린 의혹도 있다.

‘원한’ 내부 고위임원 제보?
‘왕따’ 협력업체 정보 제공?
‘앙심’ 금호가 갈등 분풀이?

상황이 이쯤 되자 비자금 조성에 개입했거나 알고 있는 협력사의 제보가 있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 회장이 구조조정과 경영권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금호석유화학에게 팽 당한 협력업체가 홧김에 민감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검찰이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혐의가 있는 협력업체들을 딱 꼽아 압수수색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금호석유화학 측도 ‘물 먹은’협력업체들을 의심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번 검찰 수사와 관련해 “죄지은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협력업체나 다른 사람들의 의도적인 음해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또 음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도 내비쳤다.

검찰은 박 회장 일가가 경영권 확보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들을 통해 조성된 비자금이 박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수사 배경으로 금호일가의 이상기류를 배제할 수 없다. 금호일가는 2009년 ‘형제의 난’이후 냉전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그룹에서 계열분리 수순을 밟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사고’가 터지지 않았냐는 관측이다. 형제간 분쟁에서 이번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다는 의견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형 박삼구 회장과 동생 박찬구 회장의 해묵은 갈등이 이번 수사의 원인이 되지 않았겠냐”며 “만약 그렇다면 금호가 ‘형제의 난’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도적인 음해”
또 형제의 난?


박삼구-박찬구 형제가 처음 충돌한 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찬구 회장은 향후 자금난을 걱정해 인수를 반대했지만 박삼구 회장이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 회장의 예상대로 그룹은 대우건설을 삼킨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박삼구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불신의 싹이 자랐다. 형에게 불만을 품은 박찬구 회장은 돌연 그룹 경영권을 노린 ‘쿠데타’를 일으켰다. 2009년 6월부터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부장과 함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당초 10.01%에서 18.47%로 늘렸다. 이게 화근이 됐다.

‘10.01%’는 금호가 형제들이 동일하게 보유해온 이른바 ‘황금 지분율’이다. 뒤늦게 박삼구 회장 부자도 금호석유화학 지분(11.77%)을 사들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은 박삼구 회장은 결국 ‘동반 퇴진’이란 초강수를 뒀다. 박삼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2009년 7월 다른 친인척들의 지분을 동원해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을 박탈했다.

이후 검찰 주변에선 양측이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낼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X파일’을 수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해 두 형제가 경영에 복귀하고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는 등 금호석유화학의 계열분리가 속도를 내자 검찰에 X파일이 접수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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