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세상’ 서남표식 개혁이 화 불렀다?

2011.04.19 09:39:53 호수 0호

<심층진단>사상 초유 카이스트 사태 몰고 온 문제점 셋

사상 초유의 사태로 내홍을 앓고 있는 카이스트에도 봄꽃은 피었다. 하지만 아직도 체감온도는 쌀쌀하다. 언론은 물론 정계, 시민단체 등은 카이스트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고, 일부 재학생들은 면학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모든 일에는 징후가 있기 마련, 카이스트 사태가 발생하기 전 카이스트에는 어떤 징후가 있었을까. 카이스트 학생들은 학교와 학생간의 소통 부재를 꼬집었고, 징벌적 등록금의 폐해와 미래에 대한 불안, 전 수업 영어 강의에 대한 불만, 신입생 서약서의 부정당성 등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개혁을 앞세운 서남표 총장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언론과 사회 역시 학생들의 이 같은 절규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제와서?"라는 학생들의 반문이 들리는 듯하지만 이제와서라도 한 번 짚어보기로 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몰고 온 카이스트의 문제점 세 가지를 짚어봤다.

잇따른 학생 자살에 교수 1명도 자살 충격 
입학하면 입 막고 눈 가리는 서약서 싸인

예비 과학자들의 요람, 카이스트의 이번 사태는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건에서 비롯됐다. 올해 들어 4명의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했고, 가장 최근에는 교수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생들의 자살 배경을 추적하면서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했던 카이스트, 그들만의 세상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사자 아님 다음에야 정확한 배경과 그 효과를 제대로 알 수는 없겠지만 알려진 그들만의 세상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국민들은 서남표 총장이 이루고자 했던 교육개혁에서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징벌적 등록금 문제
"성적별로 돈 내라?"
 
가장 먼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건의 발단으로 지목되고 있는 징벌적 등록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카이스트 총학은 이번 사태가 빚어지기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3월 초 수업료 폐지 및 인하를 위한 총투표를 실시했다.

전체 학부생 4000여명 가운데 2800여명이 참여한 선거에서 96%인 2680명은 폐지 혹은 인하에 찬성했다.

당시 총학은 "이번 투표는 지난 2006년 서 총장 취임 뒤 학생들에게 자극을 준다는 명목아래 책정된 수업료에 대한 것"이라면서 "직전 학기 평점 3.0 이하 학생들에게 서울대나 포스텍의 2배가 넘는 1500여 만원의 수업료를 부과하라는 것은 학우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학은 앞선 2009년 10월에도 등록금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도 응답자 74%는 평균 42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카이스트 재학생에 따르면 카이스트의 한 학기 등록금은 150만원이다. 게다가 학점이 3.3만 넘으면 150만원의 등록금도 면제해주고, 학점에 관계없이 모든 재학생들에게 한 달 13만5000원의 식대가 제공된다. 알려진 부분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학점이 3.0 이하인 학생들은 3.0에서 0.01점이 낮아질 때마다 6만3000원을 더 내야 한다. 학점이 2.0일 경우 630만원이라는 거금을 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이는 기본 등록금 150만원에 더해지는 벌금 개념이기 때문에 단순 계산만으로도 딱 한 학기만 설렁설렁 공부했다간 780만원이 한방에 날아가는 것.
실제 2006년 서 총장이 취임한 이후 카이스트 학생들의 학자금 및 생활비 대출 규모가 해마다 증가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는 서 총장이 도입했다.

징벌적 등록금 도입 이후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진 학생들은 은행 대출을 통해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마련했고, 성적이 나빠 장학금이 잘리는 소위 장짤은 주홍글씨처럼 학생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줬다.

결국 "징벌적 등록금은 학우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던 총학의 주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현실이 됐다.


100% 영어 강의
"정확한 정보전달 안돼"

카이스트 사태의 이면에는 징벌적 등록금 외에 글로벌화라는 미명아래 진행된 100% 영어 강의도 존재한다. 이 역시 서 총장이 도입한 제도다. 서 총장은 부임 이후 학과수업을 전면 영어수업으로 전환하게 했고, 비영어 강의가 생기면 학생들의 몰린다는 이유로 예외도 없앴다. 중국어, 일본어도 영어로 강의하게 한 것. 때문에 현재 카이스트 모든 학생들은 영어로 수업을 듣고 있다.

서 총장은 이와 관련 "카이스트와 같이 과학기술 분야에 특화된 연구대학의 경우, 언어적 장벽이 큰 데미지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세계적인 석학들이 대부분 영어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면 그만큼 이 분야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경쟁구도 조성하는 징벌적 등록금제도 문제 
중국어·일본어도 영어로 강의…황당한 정책


하지만 실제 영어강의에 대한 학생과 교수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기본적인 내용 전달이 어렵고, 영어로 개설된 과목을 이해해야 다른 전공과목들을 들을 수 있는 점이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 내용들을 영어로 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교수 역시, 영어강의를 하게 되면 전해줄 수 있는 정보의 30% 정도밖에 미치지 못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교수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에 따라 격차가 커서 수업이 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외국계 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도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는 것.

심지어 카이스트 최모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 영어수업은 한 마디로 미친 짓"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영어강의는 수학시간에 영어공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영어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읽기, 쓰기, 서양문화의 이해 등을 세분화해서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어를 중시하는 세태도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젠 우리가 새로운 문화, 기술 등을 만들어 나눠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양문물을 얻으려고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

마지막으로 그는 "총장에게 등록금 문제, 영어 문제 등을 놓고 몇 차례 고언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미국에서 혼자 공부를 한 분이라 한국정서를 잘 이해하기 어려운 듯하다"고 말했다.



눈 가리고 입 막는 서약서
카이스트 ‘기밀문서’인가?

마지막으로 카이스트에는 입학하자마자 써야하는 서약서가 존재한다. 모든 학생이 무조건 작성해야 하는 황당한 서약서는 연대보증인까지 있어야 하고, 대부분의 보증인은 부모가 된다. 부모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연대책임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학생들의 입을 막고 눈을 가리는 서약서의 내용을 살펴봤다.
"본인은 KAIST 재학 중 학칙 및 제 규정을 성실히 준수하고 교내외 활동에 있어서 학교의 승인을 받지 아니한 집단행위 등 학생 본분에 어긋난 행동으로 우리학교의 명예를 손상했을 경우에는 어떠한 조치도 감수할 것을 보증인 연서하여 서약합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카이스트 학생들은 입학할 때 신입생 안내문에 동봉된 이 같은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한다. 그 아래에는 보증인의 주소와 성명, 주민번호와 관계도 적어 넣고, 통상적으로 부모가 보증인이 되어 연대책임을 지는 형식이다.

문제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나면 학생들은 모든 학내활동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는 데 있다. 자칫 해를 입을까 두려워진 학생들은 교내외 집회나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학교의 눈치를 보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이와 관련 한 학생은 "헌법에도 보장된 자유를 대학교에서 막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카이스트 측은 "서 총장 취임 전부터 해오던 전통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약서에 서명하는 상황이라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은 서약서는 입학을 위한 필수요건으로, 이 서약서가 학생들의 창의력과 비판정신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데 동의했다.

한편, 카이스트 학칙 59조에도 허가 없이 집단적 분위기로 수업을 방해하거나 면학 분위기를 파괴하는 자는 징계대상이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실제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카이스트 참가단으로 참석한 학생은 위신 손상을 이유로 경고를 받고 주기적으로 감시를 받았고, 2009년에는 한 학생이 한 인터넷 포털에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과 학교의 횡포를 고발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학교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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