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내가 유전자 쇼핑으로 태어난 아이라면?

2008.10.28 11:44:04 호수 0호

비과학자인 시민에게 묻는다. 배아는 인간인가 아닌가. 생명공학은 더 발전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제라도 자연에 대한 도전은 그만두어야 하는가. 왜 그걸 비과학자들에게 묻느냐고? 시민들이 과학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출 때마다 인류는 끔찍한 참사를 겪어 왔기 때문이다. 우생학의 미몽에 빠져 독일의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가 그랬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한 일도 그렇다. 기록하고 반성하는 동물로서 다시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에 당혹스러워하지 말기를. 대신 이해하고 판단하라. “당신이 가난한 까닭은 열등한 유전형질 때문이다”라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에 휘둘리다 보면 우리는 생명공학 시대의 들러리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는 근본주의에 얽매이면 더 많은 혜택을 얻을 기회를 잃고 말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미래 사회를 주도하게 될 생명공학에 대해 독자 개개인이 하나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풍부한 지지대를 마련하고 있다.
나와 유전적으로 동일하여 외양과 형질이 거의 같은 누군가가 세상을 활보한다고 생각해 보라. 내 존재의 독자성이 침해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본능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 개체 복제는 개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복제’라는 단어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생명공학에 있어서의 복제가 ‘어떤 사람의 복사본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동일한 구성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엄연히 다른 인격과 정체성을 가진다. 나와 똑같은 복사판을 거리에서 마주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제너가 천연두를 치료하기 위해 소의 고름에서 짜낸 우두를 인간에게 접종하는 우두법을 개발했을 때, 사람들은 “제너는 인간을 소로 만들 작정인가?”라며 조롱했다. 이렇듯 새로운 치료법은 늘 거센 저항을 받곤 했다. 유전자 쇼핑도 지금은 종교적·관습적 거부감이 크지만 언젠가 제너의 우두법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류가 안고 가야 할 두려움도 크다. 유전자 개량이 수백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었을 때 인간의 유전자 분포에 영향을 줄 가능성, 그것은 언젠가 자연의 철퇴를 맞아 처참하게 무너질 또 하나의 바벨탑인지도 모른다. 
생명공학 기술을 통한 질병치료에 희망을 갖는 이들은 가만히 앉아 불행을 겪느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편이 낫지 않느냐며 생명공학의 발전을 지지한다. 그들은 초기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누군가 내일 당장 맹장수술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역사상 그 어느 시대의 뇌수술보다 안전할 것이다. 최초의 사용은 위험하다. 그러나 선대의 희생을 토대로 의료기술이 진보했듯이, 어느 정도의 희생은 때로는 감수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도 확고하다. 희생되어도 좋은 생명이 있는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 뒤에 “비장애인이 되기 위해 이런 위험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냉혹한 인식이 깔려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문이다.
생명공학 기술이 안전성을 확보하면, 분명 소수의 부자들이 일찍, 양질의 시술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계급 사회를 불러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생명공학 발전으로 인한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는 공정한 경쟁에서 일어나는 활력이나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디스토피아가 아닐까?그런데 이를 예방하겠다고 기술을 통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들은 사회정의를 위해 오히려 생명공학의 베일을 벗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도기에 소수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불평등을 감수하는 대신, 전체적으로 혜택의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평등을 창조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정혜경 저/ 뜨인돌 펴냄/ 9천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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