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박근혜보다 무서운 황교안 체제 미리보기

2016.12.12 09:58:24 호수 1092호

권위적이고 앞뒤 막힌 ‘공안 본색’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미스터 국보법’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이 국정을 이끈다. 지난 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서 가결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수장으로서의 직무 권한을 상실했다. 신분만 유지돼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은 모습이다.



분리된 국정 1인자의 권한은 헌법 71조에 의거, ‘2인자’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넘어갔다. ‘공안통’ 검사 출신이 사실상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야권과 여권 비주류를 중심으로 황교안 체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자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권한대행직을 수행했던 사람은 7명. 4·19혁명으로 국정 공백이 생기자 허정 총리, 곽상훈 국회의장, 백낙준 참의원 의장이 차례로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바 있다. 5·16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윤보선 대통령의 실권을 뺏고 직을 수행했다. 10·26사태 후에는 최규하 총리가 직무대행자로 올랐다.

역대 8번째
대통령 대행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이 사임하자 박충훈 총리 서리가 잠시 직을 맡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으로 고건 총리가 권한대행에 오른 데 이어 황 총리까지 8번째다.

앞서 야3당 지도부는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를 우려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황 총리는) 촛불민심이라는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 연대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또한 “황 총리를 그대로 두고 탄핵을 하면 결국 박근혜정권의 연속”이라며 교체를 주장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야당은 황교안 체제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동시에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가 현실화될 때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실제적인 총리 교체 움직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자칫 새로운 총리 후보자 인선이 탄핵 열기를 흔들 수 있다는 더민주 측 주장 때문이었다. ‘선 총리 후 탄핵’ 입장이던 국민의당도 결국 한발 물러서 더민주 측 입장을 받아들였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황교안 체제’가 모습을 드러낸 배경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 추천 총리’를 제안한 바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총리 교체는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급기야 청와대는 지난달 초 김병준 신임 총리 내정자를 발표했다. 황 총리는 이와 관련해 어떤 통보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문자 해임 통보’ 의혹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황 총리는 곧바로 총리실에 이임식 준비를 지시해 균열이 감지됐다. 청와대의 갑작스런 발표에 마음 상한 황 총리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는 게 정설처럼 돌았다.

총리-내정자
기묘한 동거

이후 총리와 총리 내정자 간 기묘한 동거가 이어졌다. 야당의 거부로 청문절차를 밟지 못한 김 내정자는 줄곧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연수원을 사무실로 이용하며 때를 기다렸지만, 끝내 부름을 받지 못했다.
 

반면 황 총리는 박 대통령을 대신해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대행 체제를 준비했다. 특히 지난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폐막 기념식에 참석,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나는 등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사례는 상징적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후 실질적으로 황 권한대행이 국정을 이끌었다고 봐야 한다. 총리·부총리협의회는 황 권한대행이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또한 그는 정책조정회의를 통해 국정교과서, 한일군사정보보호 협정, 사드 배치 등 국내 현안을 챙겼다. 대통령이 의장인 국무회의도 황 권한대행이 주재했다.

탄핵이 가결된 지금, 황 권한대행의 직무범위가 초유의 관심을 받고 있다.

헌법상 대통령이 갖는 권한은 ▲국군통수권 ▲헌법개정안 발의·공포권 ▲헌법기관의 임명권 ▲공무원 임면권 ▲외교사절접수권 ▲조약체결 비준권 ▲사면·감형·복권 ▲법률개정안 공포권 및 거부권 ▲행정입법권 ▲국민투표 부의권 ▲예산안 제출권 등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권한대행의 직무범위를 명시한 규정은 딱히 없다.


탄핵안이 통과되기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민주 박범계 의원은 YTN 라디오에 나와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권한을 전부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학설의 대립이 있기는 하다”고 설명했다.

탄핵안 가결, 직무 없는 껍데기
수면 위로 오른 ‘미스터 국보법’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직무 중 개헌권과 각종 임명권은 행사할 가능성이 정치권에 대두되고 있다. 개헌은 차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임명권은 사법부 길들이기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원외에선 꾸준히 개헌 주장이 제기돼왔다. 앞서 지난달 말 여야 출신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종교·학계 관련 원로 20명은 최순실 게이트의 원인이 제왕적 대통령제라 진단, 입장 발표문을 통해 “여야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헌 전도사’ 이재오 전 의원은 비슷한 시기 여야 국회의원 300명에게 자체 개헌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안이 가결됨에 따라 원내에서도 개헌 논의가 봇물처럼 터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실제 황 권한대행이 개헌에 나설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앞서 박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국회 발의 전, 정치권이 개헌에 나서줄 것을 시정연설을 통해 촉구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 받은 황 권한대행도 개헌에 적극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 내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은 상황서 개헌 정국을 일으켜 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정권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는 야권 입장에서, 특히 친문계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시나리오다. 자칫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 개헌이 이루어질 경우 다 잡은 토끼를 놓칠 수도 있다. 탄핵 정국이 개헌 정국으로 넘어가는 상황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제3지대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계속적으로 거론되고 있어, 여권 성향의 대선주자를 이용한 새누리당의 유사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가 발동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권 재창출
개헌권 발동?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임명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은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을 임명할 권한이 있다. 특히 내년 3월 임기를 마칠 헌법재판관 2명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지 주목된다.

이는 탄핵 열쇠가 국회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결정지을 중요한 변수다. 자칫 탄핵이 기각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정치권 곳곳서 나오는 이유다.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헌재 재판관의 임기는 각각 내년 1월31일, 3월14일까지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려면 반드시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공석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황 권한대행이 재판관 후임 인선을 늦출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만약 예상대로 후임 인선이 늦어져 재판관 7명만 남는다면, 이 중 2명만 탄핵에 반대해도 인용 결정은 불가능하다. 또한 황 권한대행이 친 정부 성향의 재판관을 임용할 여지도 있다.

황 권한대행이 내년 1월로 예정된 검찰 인사에도 손을 댈 지 관심이 모아진다.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대통령의 인사권 때문이다. 지난달 초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한겨레TV에 출연했을 당시 사회자가 ‘검찰은 왜 권력의 말을 잘 듣나?’라고 묻자 채 전 총장이 “인사권 때문이다”고 답한 부분이 이 같은 사실을 잘 대변한다.
 

알려진 것처럼 황 권한대행은 강한 보수 성향을 가진 공안 검사 출신이다. 30여년간 검찰 조직에 몸담으며 대검 공안1·3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미스터 국보법’이란 별명은 그가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집필해 붙여졌다. 지난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초대 법무부장관에 올랐다.

개헌으로 정권 재창출 나서나
헌재·검찰 인사권 박통 위해?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정권 출범의 일등공신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 반대, 혼외자 의혹 보도를 빌미로 감찰을 펼쳐 채동욱 교체에 앞장선 바 있다. 또한 통합진보당 해체에 앞장서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이력 때문인지, 야권과 여권의 비주류에선 대대적인 사정 정국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 야권에서는 검찰이 지난 20대 총선 이후 추미애 대표 등 야당지도부를 포함해 33명을 기소한 데 대해 편파 기소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더민주 측은 “혐의가 뚜렷한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은 기소하지 않으면서 야당 의원들만 편파적으로 수사했다”고 지적했다.
 

탄핵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인 지난 7일, 탄핵을 찬성하는 여당 의원들에게 사정기관발 ‘협박성’ 전화가 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개되면 망신이 될 수 있는 사안을 알고 있다는 식의 전화가 탄핵 찬성 입장인 의원들에게 돌았다는 것이다. 정권 차원의 조직적 압박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장악한
황교안 본색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서 “황교안 또한 탄핵 대상”이라며 “탄핵 뒤 즉시 정치회담을 열고 국민추천총리 등을 논의해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한 상태다. 그러나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권한대행이라는 헌법적 지위를 가진 황교안을 어떻게 물러나게 하겠다는 건지, 추미애 대표가 얘기하는 국민추천총리는 무슨 방식으로 누가 임명하겠다는 건지 아연실색할 따름”이라고 반박했다.

박 대통령이 물러난 자리에 공안 그림자가 아른 거리는 지금, 여야는 황 권한대행을 두고 다시 한번 충돌할 조짐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탄핵’ 박근혜 신세는?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되기 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돼도 경호와 의전은 이전대로 제공 받는다. 월급도 종전대로 받지만, 일부 업무추진비 성격의 급여는 받지 못한다.

대통령 비서실 역시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박 대통령이 아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보좌하는 역할로 변한다. 노 전 대통령 때 대통령 비서실장은 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를 노 전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에게 보고, 국정 실무를 챙겼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어디서 생활할까. 지난 2004년 노 전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후 관저에서 생활하며 공식적인 일정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신문과 책을 보는 등 비공식 일정만 가졌으며, 정치적 언행은 최대한 자제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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