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재평가 받는 사람들

2016.12.05 11:34:08 호수 1092호

그땐 몰랐던 그들의 외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던 말이나 행동이 시간이 흐르면 다시없을 진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반대로 과거에는 진실처럼 믿었던 사실이 허무한 거짓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사안이든 시대 보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요즘 같은 재평가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신문, 방송할 것 없이 온 언론이 매달려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수없는 의혹이 쏟아져 전 국민이 경악했다. 현실이 팍팍하면 과거를 되돌아보는 법,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일가와 연관됐던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립다’
책·영화 인기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그를 다룬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8년간 일한 강원국씨의 저서 <대통령의 글쓰기>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인터넷서점 ‘예스24’서 베스트셀러 6위, ‘교보문고’서 7위에 올랐다. 상위 작품들이 전부 올해 발간된 것을 감안하면 2014년 2월에 나온 책이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강 전 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3년, 노 전 대통령과 5년간 일했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에 ‘빨간펜’ 첨삭을 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글쓰기는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연설문을 쓸 때마다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에게 관심이 쏠렸다.


노 전 대통령의 연설문 사랑은 지독한 구석이 있었다고 한다. 강 전 비서관은 언론과 인터뷰서 “노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쓸 때 같이 앉아서 고치고 토론했다”며 “말을 하셔야 말이 생각나고 말이 발전한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보다 설득력 있는 말과 글로 다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만큼 대통령에게 연설문은 전부였다”고 했다. 국정 방향, 국내외 정책, 대통령의 의지 등 국민을 상대로 드러내는 국가 수장의 생각 자체인 연설문이 농락당한 현실이 노 전 대통령을 다시금 2016년으로 불러들였다.

최순실 게이트서 ‘재평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재판정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일갈했다는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인물로, 10·26사태의 장본인이다.
 

당시 김 전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부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노무현, 김재규, 이기붕, 이정희
사건과 연관 인물들 재조명 화제

강 변호사는 주간지 <시사인>과 인터뷰서 당시 영애였던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수차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이를 묵살하자 거사를 결심하게 됐다는 김 전 부장의 증언을 전했다.

강 변호사는 “김 전 부장이 사형당하기 4개월 전인 1980년 1월28일 면회를 갔더니 최태민 얘기를 처음 꺼냈다.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최태민은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할 놈이라고 분개했다”고 전했다.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 전 부장은 최후변론서 “구국여성봉사단이 많은 부정을 저질러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돼왔다”며 “그럼에도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가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구국여성봉사단은 최태민씨가 총재, 박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맡고 있던 단체였다.

최근 시국을 덮친 사태에 최태민씨의 딸인 최순실씨, 최순득씨 등 최씨 일가가 얽혀 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당시 김 전 부장의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역적, 대통령 살해범 등으로 불렸던 김 전 부장은 젊은 층에서 구국의 영웅, 의사, 열사 등의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민주화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함세웅 신부는 <채널예스>와 인터뷰서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제거한 바로 그날 김재규 부장이 유신의 핵을 제거했다. 김재규가 재평가되는 그날,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최순실의 관계서 이승만-이기붕의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10월19일 “최순실 모녀 사태를 보면 옛 이승만정권 때 권부 핵심 실세로 정권의 부패와 몰락을 자초했던 이기붕 일가가 떠오른다. 이기붕 일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최순실씨와 이기붕 전 부통령은 대통령을 움직여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전 부통령은 노쇠한 이승만 전 대통령 뒤에서 국정 전반을 주물렀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는 바로 이 전 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1960년 예정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이기붕을 후보로 내세웠다. 야당인 민주당은 조병옥과 장면이 후보로 나섰다.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그 직을 승계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자유당은 정당한 선거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대리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가공할 만한 부정을 저질렀다.

국민들은 부정선거에 항의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4월11일 마산 앞바다서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얼굴에 맞은 김주열의 시신은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 전 부통령은 자신이 이 전 대통령에게 양자로 바쳤던 아들 이강석의 총에 죽었다.

이승만·박근혜
둘은 닮은 꼴?

이미 오래 전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을 제기해 옥살이를 한 사람들도 재조명 받고 있다. 당시 목사였던 김해호씨는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경선 과정서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2007년 6월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며 “자신이 가진 재단조차 소신껏 꾸리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는가”라고 했다.


김씨의 폭로에 사람들은 그를 ‘이명박의 개’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상대였던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서 일하고 있었다.

김씨는 “최 목사(최태민)와 그의 딸(최순실)이 육영재단에 개입한 1986년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이 세 번 바뀌었고 직원 140명이 최 목사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직당했다”며 “유치원을 운영하던 최 목사의 딸은 서울 강남에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가졌는데 이 돈은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재산일 가능성이 있으니 검증위원회가 밝혀달라”고 주장했다.

무시당한 폭로
이제야 사실로

김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했던 내용은 지금 거의 사실로 밝혀졌다. 김씨의 폭로가 9년이 지나서 일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당시 법원은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허위사실로 치부했다. 김씨는 사전선거운동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1심서 징역 1년의 실형을, 항소심에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검찰과 피고인 측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은 그대로 확정됐고, 김씨는 6개월가량 옥살이를 겪었다.

김씨는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정책특보였던 임현규씨와 함께 재심을 청구한 상황이다. 임씨는 김씨가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작성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입장자료를 통해 “당시 제기한 의혹 상당수가 현재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당초 재심청구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다시는 이 같은 국정농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재심 청구를 결심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자칭 목사’ 조웅씨는 2013년에 등장했다. 조씨는 2013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조씨는 “박 대통령(당시 당선인 신분)이 평양에 방문할 때 정부에 허가받지 않은 500억원을 들고 갔고, 김일성 동상에 참배했다”고 했다.

그는 최태민씨와 관계,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 배후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수사관은 언론 인터뷰 도중 조씨를 긴급 체포했고,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조씨는 1심과 2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대법원은 원심 확정판결을 내렸다.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박 전 행정관은 지난 2014년 <세계일보>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폭로하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는 박 대통령의 오래된 측근인 ‘문고리 3인방(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의 동향을 다룬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작성했다. 박 전 행정관은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수사 과정서 박 전 행정관은 담당 검사와 수사관에게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며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와 대부분의 언론은 박 전 행정관의 발언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팍팍한 현실에 과거 회상

그의 발언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재조명받고 있다. 박 전 행정관의 발언은 최순실씨의 운전기사로 17년간 그녀를 비롯해 최씨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김모씨의 인터뷰서도 확인됐다.

김씨는 “박 의원님(박 대통령) 위에 정 실장(정윤회)이고, 그 위에 순실이(최순실)야”라고 말했다. 기자가 박 전 행정관의 발언과 같다고 말하자 “맞지. 순실이가 대장, 그 다음은 정 실장, 박 의원은 꼴등”이라고 설명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잊혔던 정치인도 다시 상기시켰다. 지난달 30일, 박 대통령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 가운데 박영수 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를 선택했다. 특검은 대통령을 직접 수사할 가능성이 있어 누가 선정될지 여부에 큰 관심이 쏠렸다.

그 가운데 등장했던 이름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다. 2014년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이후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진 이 전 대표는 특검 후보로 거론되며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전 대표는 18대 대선 TV토론 때 박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전 대표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토론에) 나왔다”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것이다. 한국이름 박정희” “뿌리는 숨길 수 없다. 대대로 나라 주권 팔아먹는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를 자격이 없다” 등 날선 발언으로 박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일각에선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사이다’라고 환호했지만 한편에선 동정론을 일으켜 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때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출판한 <i 전여옥>이라는 책에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담은 바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용서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자기 자신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식견·인문학적 콘텐츠도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한다” 등의 어록들을 쏟아냈다.

전 전 의원은 최근 박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비판했다.

전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를 언급했다. 전 전 의원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격을 스스로 무너뜨리신 게 아닌가 하는 매우 유감스런 담화였다. 지도자라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판단하고 명확하게 밝혔어야 한다”고 했다.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는 최순실 게이트로 이미지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박태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직전인 9월 초 금지약물 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의 금지약물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돼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8개월 자격 정지, 메달 박탈 등의 징계를 받았다.

박태환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피부 치료 때문에 찾은 병원서 의사가 부작용과 주의사항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네비도’ 주사제를 놨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박태환의 수영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막혀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다. 박태환은 법정 다툼 끝에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 여론은 여전히 약물 의혹서 자유롭지 못한 박태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반전이 일어난 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박태환을 상대로 올림픽 출전 포기를 강요하는 등 압력을 행사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부터다.

30년 만 재등장
이미지 회복도

김 전 차관은 박태환에게 올림픽 출전을 고집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환은 언론과 인터뷰서 “(김 전 차관이) 너무 높으신 분이라 무서웠지만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밝혔다.

박태환은 최근 일본 도쿄서 열린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박태환에게 네비도를 투약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김씨 상고심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박태환은 약물 고의 투여 의혹을 벗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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