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에 실종된 정치권 ‘뜨거운 감자’

2011.03.22 11:12:50 호수 0호

속으로 미소 짓는 사람들 “휴~쓰나미 아니었으면…”


일본 대지진이 정치권의 이슈마저 집어삼켰다. 지난 연말부터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던 정치권이다. 새해 예산안 강행 처리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등 지역과 관련된 현안이 이어졌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의 잇따른 입국 이후 불거진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과 ‘상하이 스캔들’은 정치권을 흔들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연임 문제와 강만수 산업은행지주회장 선임까지 굵직한 이슈들이 빼곡했지만, 모두 뒤로 밀려난 상황이다.

나라 뒤흔든 ‘상하이 스캔들’ 온데간데없어
구문 된 BBK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

대지진이 연일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지진에 쓰나미까지 겹치면서 붕괴와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위태로운 원자력발전소로 세계의 시선이 고정된 상태다. 대지진의 여파는 바다 건너 여의도 정치권까지 미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던 사건·사고들이 자취를 감춘 것.



정치 이슈 행방불명
여의도에서 “꼭꼭 숨어라”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 대지진과 관련, “항간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정말 천운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뉴스는 대부분 앵커 리포트로 끝나거나 중요하게 배치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최고위원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불가피하지만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뉴스가 많다”며 “이 대통령의 측근 오기 인사의 종결판인 강만수가 산업은행지주회장으로 오늘 선임된다. 끝없는 주군의 총애에 강만수가 보답하는 길은 스스로 용퇴하는 것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 대해서도 “청문회 역시 ‘한결 수월해지겠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국민은 방통위원장을 원하지 먹통위원장을 원하지 않는다. 노욕 부리지 말고 초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 최고위원은 또 ‘상하이 스캔들’을 거론하며 “이 사건이 일본 지진 이전엔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대형 사건이었나 싶을 정도로 잊혀져가고 있다”며 “국가적인 치욕 사건인 이 사건은 한 치의 의혹도 없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획입국 편지 조작설에 대해서는 “2008년 대선을 뒤흔든 BBK와 도곡동 땅 진실을 국민은 알고 싶어하고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재해에 쏠린 관심을 틈타 대충 넘기려 하면 안된다”며 “민주당은 꼼꼼히 챙기고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도 지난 15일 박선영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을 통해 “상하이 스캔들, 장자연 사건, 한상률 사건, 에리카 김 사건 등 국내 주요 현안들이 일본의 대재앙이라는 쓰나미에 쓸려 나갔다”며 “어떤 환경에서도 국내 현안을 철저하게 챙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짐과는 달리 대부분의 정치 이슈들은 ‘조용히’ 넘어가는 모양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에리카 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달 중 마무리될 전망이다.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한 전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으로 전·현직 국세청 직원과 골프 로비 의혹 당시 참석자, 전군표 전 국세청장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난리통 속에 ‘MB의 남자들’ 화려한 귀환  
강만수·최시중 ‘구렁이 담 넘듯’ 제자리로일본


또한 한 전 청장의 자택과 그림 로비에 사용된 ‘학동마을’을 구입한 서미갤러리 등 3곳을 압수 수색했다. 에리카 김의 횡령 혐의 등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달 26일과 27일, 지난 9일 김씨를 소환 조사해 김경준씨의 주가 조작 및 횡령 가담 여부와 2007년 대선 당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그러나 한 전 청장과 관련된 그림 로비와 연임 로비,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 과정의 직권 남용,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차명 소유 관련 의혹 등 여러 혐의 중 그림 로비 의혹에 대해서만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에리카 김에 대해서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무혐의 처분하고 횡령과 주가 조작 등의 혐의에 대해선 불기소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야권은 당장 검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하고 나섰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5일 검찰이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수사에서 계좌 추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으며 “일반적인 뇌물 사건에 있어 수사 개시 즉시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인까지 계좌 추적을 벌이는 것이 검찰의 통례”라면서 “한 전 청장에 대한 수사가 의혹을 파헤치는 시늉만 내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며, 결국 봐주기 수사로 한 전 청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 대변인은 또 “일본 대지진에 국민의 관심이 쏠린 틈에 어물쩍 진실을 은폐하려는 검찰의 작태”라며 격분했다. 
 
뒷전으로 밀린 사건들
쉬쉬하며 조용히 넘겨라?

박지원 원내대표도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본 지진의 여파 속에서 국민과 당이 염려했던 한 전 청장, 에리카 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했던 대로 꼬리 자르기 면죄부 수사로 마무리 될 전망”이라며 “지진을 핑계로 수사를 묻으려고 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이 진실을 묻으려고 한다면, 일본 지진의 여파로 (진실이) 땅 속으로 묻힐 것 같지만 언젠가는 또 폭발할 것”이라며 “구제역의 경우처럼 임시방편으로 땅에 파묻었다가 해동이 되면 터져 나오듯 밝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그야말로 깃털만 건드리는 형국”이라며 “한 전 청장이 판도라의 상자임을 우리 국민들은 뻔히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하이 스캔들’에 대한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7일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일어난 문제와 관련 정부합동조사단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는 중에 있어 곧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결과가 나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깃털 건드린 수사
판도라의 상자 닫힐까

정치권은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4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계획이어서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상하이 스캔들’의 진실뿐 아니라 이 대통령의 ‘보은 인사’에 대한 지적이 강도 높게 제기될 수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번 스캔들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 챙기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개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힌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해 일부 장관들의 교체 얘기가 나오면 이 대통령의 인사 문제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덩달아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강만수 전 대통령 경제특보의 산은금융지주 회장 내정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연임을 두고도 말이 많다. 민주당, 자유선진당, 미래희망연대, 창조한국당 등 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은 지난 18일 공동성명을 내고 강만수 경제특보의 산은금융지주 회장 임명 취소를 주장했다. 야 4당 정무위원들은 이날 “강 특보가 과거에 재무부에 재직했었고, 기획재정부 장관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은행 민영화 추진 등을 위한 적임자라고 볼 수 없다”면서 “강 특보는 이 대통령의 측근이며 경제 과외교사였는지는 모르지만,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범 중 한 사람이며 지난 3년간 서민의 삶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실패한 MB노믹스’의 주역으로서 더 이상 공직에서 우리 경제나 금융에 대해 조언하거나 관여해서는 안 되는 인사”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또 “강 특보가 산은지주 회장이 된다는 것은 MB정부 ‘관치금융’의 완결편”이라며 “국내 주요 3대 금융지주사(KB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의 회장이 이 대통령의 친구와 대학 동문 등으로 선임되어 있는데, 여기에 산은지주까지 대통령의 측근이 되면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며, 한국 경제는 퇴행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연임 도전이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최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17일 강행됐지만 본인과 가족들의 땅 투기와 증여세·소득세 탈루 등 10여 가지의 의혹이 제기된 것.

강만수·최시중의 귀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라

민주당은 최 위원장의 낙마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어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도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이 대통령은 소정의 날짜가 지나면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23∼24일경에는 임명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럴 경우 앞으로 3년간 중요한 방송 정책과 통신 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후보자 본인과 국민이 판단하리라고 믿는다”고 경고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지진에 흔들리고, 쓰나미에 휩쓸렸던 정가 이슈들이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돌아올 수 있다”며 “4월 임시국회와 4·27 재보선에서는 이러한 이슈들이 다시 활개를 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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