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정희 신격화’ 구미시 왜?

2016.10.31 10:02:32 호수 0호

“혁명의 정기를 받아…”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구미시는 ‘사이버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부속 사이트를 운영, 박 전 대통령의 일대기·업적 등을 홍보하고 있다. 지역 대통령을 해당 지자체서 홍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객관적이어야 할 기록 콘텐츠에서 지나친 미화가 발견돼 지적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 우상화·신격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 앞서 남유진 구미시장은 지난 2013년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서 박 전 대통령을 하늘이 내린 ‘반인반신’이라 칭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사이버 박정희 대통령’은 구미시가 지난 2007년부터 운영·관리해 오고 있다. ‘인간박정희’ ‘생가’ ‘민족중흥관’ ‘업적’ ‘흔적’ 등 복수의 카테고리에 기록들이 잘 정리돼 있어 접속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설화 등 현 시대와 맞지 않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자의적 해석이 반영돼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출처 없는 기록들이 많아 우상화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참고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풍수 설화

해당 사이트에는 박 전 대통령과 관련, 2개의 설화가 실려 있다. 먼저 지역주민 이모씨가 증언한 ‘풍수가 알아본 박정희’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동장씨 사람이 큰 인물이 나는 명당을 찾기 위해 풍수가와 함께 알아보던 중 상모동의 한 집을 사기로) 그곳 주인하고 약속했는데 아이 한 명이 책보를 둘러메고 왔다. 집 주인이 아이에게 “이 집을 팔기로 했다”고 하니 아이가 “절대 못 팝니다”라고 말한 뒤 지나갔다.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본 풍수가는 “아이고 안 된다. (집을) 사봤자 헛일이다. 이 터에는 벌써 (큰) 사람이 났다. 아이고 늦었다”고 말했다. 그 아이가 바로 박정희였다.’


두 번째 성수스님(선봉사 주지)이 말한 ‘오수작탈형인 박 대통령의 집터’ 내용은 이렇다.

‘박 전 대통령의 집을 보면 까마귀가 까치집을 뺏어 내려앉은 형국이다. (중략) 그래서 박 전 대통령 집이 그 정기를 받았기 때문에 5·16 혁명을 해서 나라를 얻은 것이다.’

두 이야기는 풍수 설화에 해당된다. 이 설화의 요지는 땅의 좋은 기운을 받아 박정희라는 큰 인물이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적 구전 설화는 자칫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객관적 평가를 저해할 수 있는 요소로 지적된다.

부속 사이트에 일대기·업적 홍보
너무 주관적…지나친 미화로 지적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실장은 본지와의 통화서 “만약 책이라든지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면 (설화가) 문제될 일이 없겠지만,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서 운영하는 곳이라면 얘기가 다르다”며 “해당 설화는 박 전 대통령을 미화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위인은 그 땅의 정기를 받아 날 때부터 남달랐다는 풍수 ‘금수저’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이는 하늘의 뜻으로 천명을 받아 역성혁명을 일으켰다는 전근대적 발상이다. 구미시가 풍수까지 동원해 현대판 삼국유사를 만들고 있다”며 ”해당 설화가 (박 전 대통령) 우상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정부나 지자체, 또는 재단서 운영하는 역대 대통령 사이트 중 이처럼 설화를 담은 곳이 또 있을까. <일요시사>가 전수조사한 결과,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과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서 태몽을 구술한 내용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구전되는 설화를 담은 곳은 구미시가 유일했다.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있던 1940년대 기록에는 친일파들이 다수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군인시절 일대기 중 ‘청운의 꿈을 안고’ 메뉴에는 강재호, 방원철, 이재기, 이기건, 홍사익 등 만주군관학교 출신 선후배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친일인명사전>과 대통령 소속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증언자로 나와 박 전 대통령이 비록 만주군에 있었지만, 투철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재기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내용을 보면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 국민복을 입은 자그마한 청년이 만주군 대위와 함께 들어오기에 시험 감독관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청년이 박정희였고, 그 장교가 강재호였다. 강재호는 대단한 민족주의자였으며 박정희도 아마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라고 돼 있다.

또 다른 증언서 이재기는 ‘홍사익 중장이 만주군관학교를 방문한 적 있다. 그는 조선인 생도들만 별실로 모아 “민족적 차별 대우의 비통함을 극복해 조선민족의 우수함을 과시해야 한다”는 요지의 훈시를 했다. 박정희 생도가 답사를 했는데 평소에 과묵하던 그가 감동적인 열변을 토하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놀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로 묘사된 강재호는 박 전 대통령의 고향 선배로 지난 1939년 3월,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으로 참여한 이래 수많은 인명 살상에 가담한 자다. 그는 1943년 9월, 독립군 토벌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 받아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이력도 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조선민족의 우수함을 과시하라고 훈시했던 홍사익은 중일전쟁 당시 화북지대서 조선의용대 출신들이 다수 있는 팔로군과 교전하는 등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경력이 있다. 그외 증언자로 나온 방원철, 이기건, 정일권 또한 <친일인명사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등록된 반민족행위자들이다.

날 때부터 특별해? “풍수 금수저”
친일파 입 빌려 ‘애국청년’ 포장

즉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의 항일정신을 기술하기 위해 친일파의 증언을 가져온 셈이다. 또한 증언의 출처도 기재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다른 기록들 또한 출처가 없는 경우가 많다). 박 전 대통령에 우호적인 내용을 담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기록을 끌어다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의 기록들에 대해 해당 사이트 담당자는 “현 시대와 안 맞는 부분이 있어 디자인을 바꿀 예정”이라며 “설화는 늦어도 다음 달까지 삭제할 것이다. 사이트가 리뉴얼 된 후에 내용적인 면에서 수정할 것이 있으면 검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증언한 사람들이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사람들인지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아마도 일제강점기라는 동시대를 살던 분들이고, 함께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증언을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자료의 출처에 대한 질문에는 “최초로 사이트를 만드셨던 분이 다 퇴직하셔서 알 수가 없다. 자료에 대한 요청이 많아 최초로 만드신 분들을 섭외하려고 했는데 소재를 알아낼 수 없었다”고 다소 황당한 답변을 했다.


“사이트 개편”

우상화 의혹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입장에선 우상화·신격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곳이 박 전 대통령께서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일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사이트도 개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는 단계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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