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 박세리의 19년 골프인생

2016.08.22 09:29:23 호수 0호

굿바이 세리! 살아 있는 전설로 남다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눈물 속에 마지막 US여자오픈을 마감했다.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의 드라마 같은 우승을 비롯해 19년간의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메이저대회 5승을 포함해 25승을 거뒀고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자신을 스타로 키워준 이 대회를 끝으로 미국에서의 마지막 무대를 US여자오픈으로 끝내는 순간 박세리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 속에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US여자오픈 연장전 극적 역전 드라마
메이저 5승 등 총 25승 ‘명예의 전당’

지난달 9일 US여자오픈 2라운드에서 8오버파 80타를 쳐 이틀 합계 9오버파 153타로 컷 탈락한 박세리는 마지막 홀 그린을 벗어나면서 “지금 내 가슴 속에 너무 많은 감정이 솟구친다. 괜찮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필드를 떠나다

혼자가 아니었다. 박세리의 마지막 US 여자오픈을 함께한 최나연(29·SK텔레콤)도 눈물을 보였다. “박세리 선배가 우는 것을 본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최나연은 “그가 US여자오픈을 우승할 때 난 아빠와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계기였고, 많은 한국 후배들에게 꿈을 주었고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박세리가 라운드를 끝내는 순간, 미국골프협회(USGA) 직원들이 도열해 경의를 표했다. 호주 여자골프의 간판스타 카리 웹(43)도 그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포옹을 나눴다. 웹은 박세리가 전성기 시절 함께한 라이벌이다.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치열한 3파전을 벌이던 때도 있었다. 박세리는 “웹은 한때 나의 우상이기도 했고, 좋은 친구였다. 그의 축하를 받고 떠나게 돼 정말 의미가 크다”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개척자로, 살아 있는 전설로 골프선수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을 이룬 박세리. 하지만 이날 박세리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박세리는 “사람들은 내가 젊은 나이에 굉장한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많은 돈을 벌었고, 진정으로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박세리는 “늘 골프만 생각했고, 18홀을 돌고 나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었지만,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외로움을 느꼈다”며 “조금은 재미있는 일이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시간이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성공 뒤의 외로움과 허탈함, 그리고 힘겨움을 느꼈기 때문일까. 박세리는 후배들에게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매 경기 110%의 힘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그것을 즐기고 있느냐는 것”이라며 “그것을 즐기고 있을 때 더 좋은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라고 조언했다.

박세리에게는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정확히 18년 전인 1998 년 7월7일. 박세리는 ‘맨발의 투혼’을 펼치며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영광의 지난 날

당시 해저드에서 샷을 하기 위해 양말을 벗은 박세리의 하얀 발과 검게 탄 다리는 그의 노력을 한눈에 보여줬고 극적인 우승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실의에 빠졌던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때 ‘세리 키즈’라고 불리는 골프 꿈나무들이 탄생했다.

박세리도 그날의 감동이 떠오르는 듯 “내 우승 이후 한국에서는 그저 특별한 스포츠로 인식됐던 골프가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후배들이 LPGA투어에 진출했다”고 회상했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LPGA투어에서 25승을 거둔 박세리는 한국 선수 중 LPGA투어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게 됐고 2007년에는 한국 선수로서는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 은 박세리를 ‘한국의 아널드 파머’라고 평가했다. <ESPN>은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박세리의 선수 경력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글로벌한 영향력을 미쳐왔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같이 비유하며 ‘어쩌면 그런 호칭도 박세리에게 충분치 않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 칼럼은 현지 언론에 작별 인사를 전한 박세리의 선수 생활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ESPN>은 “새로운 선수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은퇴도 하지만 그 중 소수만이 자신의 종목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다”며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예정인 박세리는 그 소수에 들어가는 선수”라고 규정했다.


‘K골프’세계에 알린 개척자
“성공?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이 매체는 “1998년 20살이던 박세리가 LPGA투어 신인으로 등장해서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난 뒤 한국에서 골프는 그 이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달라진 위상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후 561개 LPGA대회에서 한국 출생 선수들이 149 개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들도 ‘최강 K골프 선구자’ 박세리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했다. 미국 <머큐리뉴스>는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당시 20세의 나이에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뒤 이후 십수년 동안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을 이끌고 LPGA 무대를 누볐다”고 상세하게 전했다. 또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당시만 해도 LPGA투어에 한국 선수는 그가 유일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골프 세계랭킹 상위 125위 이내 한국 선수는 50명이나 된다. 상위 25위 이내에도 11명의 한국 선수가 있다. 디펜딩 챔피언 전인지(22·하이트진로)를 포함해 최근 11차례의 US여자오픈 중 7번을 한국 선수가 우승했을 정도로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

박세리는 “은퇴를 하고 미래 골프선수들에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도울 것”이라며 “한 개인으로서 선수로서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나연은 “그녀는 전설이자 한국의 개척자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은 항상 TV에 나오는 그녀를 응원하며 자랐다”며 “모든 어린 선수들은 진정으로 그녀를 존경한다. 그녀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우리에게는 영광이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조언을 원하는 모든 골프 선수들에게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최선의 경기를 하라. 그리고 골프 코스에서 떨어져 조금은 더 편안함을 얻어라. 다른 뭔가를 위해 좀 더 시간을 갖고 좀 더 주의를 기울여라.”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역시 “만일 한국과 아시아의 TV 중계권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LPGA투어는 4~5년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아시아 시장이 커진 이유 가운데 박세리가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평가했다.


1998년 박세리와 함께 투어 신인이었다가 지금인 LPGA투어 임원으로 일하는 헤더 델리 도노프리오는 “박세리는 한국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며 “태국, 일본, 중국 선수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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