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꽃’ 검사장 흑역사

2016.07.27 10:14:55 호수 0호

돈에 눈멀어…공들인 탑 와르르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법조계에서 검사장은 ‘검찰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히 명예로운 자리다. 그런데 이른바 잘나가던 전·현직 검사장들이 잇따라 몰락하면서 검찰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검찰총장이 직접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고 나섰지만 이미 도덕성에 흠집이 난 검찰은 초상집 분위기다.



지난 17일, 검찰 68년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인 진경준(49·사법연수원 21기) 검사장이 구속됐다. 넥슨 주식을 통해 1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린 진 검사장. 애초 주장과는 달리 본인 돈이 아닌 넥슨 회삿돈으로 주식을 매입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패닉 빠진 검찰

검찰은 지난 13일 진 검사장의 주식 매입 과정에 연루된 김정주 넥슨 회장을 소환했다. 이 과정에서 진 검사장이 넥슨 측에 먼저 공짜를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대표가 이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기 때문. 김 대표가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수사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이로 인한 후폭풍은 거셌다. 수뇌부의 책임론이 불거진 데 이어 사회 각층에서 검찰 개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 그리고 학계까지도 “(검찰의) 내부 자정 시스템이 한계에 달한 게 아니냐”며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을 주장하는 모습이다.

‘특수부 검사’로 명성을 떨치던 홍만표 전 검사장의 몰락은 검찰로선 더욱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수백억원의 수임료, 100채가 넘는 오피스텔, 온갖 청탁 의혹에 탈세까지. 숱한 추문은 검찰이 덮을 수준이 아니었다. 홍 전 검사장은 결국 특수부 후배 검사들로부터 구속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가 구속된 사례는 1993년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1999년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이 있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검찰 고위 간부였던 이건개 대전 고검장을 구속했다. 검찰은 이 전 고검장에 대해 “정덕일씨로부터 5억4000여만원을 받았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이 전 고검장은 “뇌물을 받은 게 아니고 투자 소개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고검장이 “슬롯머신 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내 이름이 나오는데 나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 그는 1996년 15대 총선 때 자민련 전국구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했던 홍준표 의원은 이때 YS의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 공천을 받고 서울에서 당선돼 이 전 고검장을 국회에서 만나게 된다.

이 전 고검장은 <대통령제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저서 등을 통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으로 무리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 뿌리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며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 분야를 맡고, 일반 행정은 총리에게 맡기는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과 검찰·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명성 떨치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스스로 무너져…국민 불신 자초

1999년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을 유도한 것으로 드러난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을 형법상 직권남용,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진 전 공안부장은 3차례에 걸쳐 조폐공사 강희복 전 사장에게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노조의 불법파업을 공권력으로 즉각 제압해 줄 테니 임금삭감안 대신 구조조정을 단행하라”며 옥천·경산 조폐창 조기통폐합 계획을 발표토록 해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
 

진 전 공안부장은 당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때 “강 전 사장이 작년 9월 찾아와 자문을 구하기에 ‘임금 때문에 하는 파업은 합법이지만 구조조정 때문이라면 불법’이라는 원칙적인 입장만 얘기했으며 그는 이미 조폐창 통폐합 방침을 정하고 이를 알리는 가정통신문까지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파업유도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진경준 사태를 비롯해 홍만표 전 검사장의 법조비리 사건 연루까지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일어난 원인으로 검찰에게 주어진 무소불위 권력이 지목된다. 대한민국 검찰은 영장청구권·수사권·기소권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여기에 차관급 인사(검사장급)만 50명에 육박하는 등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보다 권한이 큰 곳을 찾기 힘들다.

여기에 상명하복 중심의 조직 문화에 검찰 출신 주요 인사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막강한 권한이 유지되는 이유로 꼽힌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 보니 각종 특혜 유혹에 쉽게 노출되고 비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그 파장도 다른 공무원에 비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검찰 개혁과 관련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정치권이다. 진 검사장 구속 당일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검사 출신 금태섭·백혜련·송기헌·조응천 의원은 ‘검찰 개혁 방향과 과제’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들 의원은 “최근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제고하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그동안 논의된 검찰개혁 방안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향후 개혁과제를 선정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정치인들이 검찰 개혁을 앞다퉈 화두로 던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5일 “검찰과 법무부는 (진 검사장) 의혹을 외면하고 어떤 의미에서 비호해 왔다”며 “검찰 개혁을 위한 가장 단호한 수단을 취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박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검찰 개혁은 정계와 멀어질수록 가능하다”며 “대통령의 국정 취지는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반영하고, 검사들의 인사는 법무부 장관 일임 하에 공정한 시스템을 통해 맡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소불위의 독

법조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검찰 내부의 감찰 기능을 강화하고, 청와대, 법무부, 공직자윤리위원회 등 정부의 인사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진 검사장의 구속 만료 기간이 열흘 정도 남은 만큼 이달 말 수사를 마무리하고 진 검사장을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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