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부산 민심 앞과 뒤

2016.07.04 11:00:59 호수 0호

여당 텃발? 이젠 야도로 밭갈이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부산이 야도(野都)로 변신할 채비를 갖췄다. 부산 시민들은 20대 총선에서 야권에 힘을 실어주면서 26년간 이어진 여권지지세가 균열을 보이고 있다. 부산 경제의 끝없는 추락은 현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13 총선서 부산 18개 선거구 중 5곳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이래 가장 많은 의석을 야당이 확보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 단 2명에 그쳤다는 점에서 4년 만에 3석이 늘어난 셈이다.

제2의 부마항쟁?

당초 문 전 대표의 사상구 불출마와 조 의원의 더민주 탈당으로 부산에서는 더민주가 18석 전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더민주 당선자 5명 중 4명은 수도권을 떠나 험지인 부산행을 택했다. 예상을 뒤엎고 김영춘, 최인호, 전재수, 박재호 의원이 부산에 깃발을 꽂았다. 이들은 부산에서 지역 밀착형 정치인으로 오랫동안 바닥을 다져온 정치인들로 부산 민심을 얻었다.

특히 김해영 연제구 의원은 30대 후반의 젊은 변호사로 여성가족부장관을 지낸 새누리당 김희정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18석 전석 확보를 노렸던 새누리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개표 상황실에서는 “부산 민심이 무섭다”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총선 직후 새누리당 부산시당은 “시민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산시민 편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며 “더 많은 소통과 실천으로 시민 편에 서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더민주 부산시당은 “반드시 부산 발전으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더민주 김영춘 의원은 “4·13 총선 결과를 위대한 부산 시민의 승리”라며 “새누리당 20년 독점체제로 추락할 대로 추락한 부산을 부활시키라는 시민들의 엄중한 요청으로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과거 민주화 성지로서 야도 부산이라는 자존심을 회복하는 역사적 쾌거”라고 말했다.

부산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야도(野都)’로 통했다. 호남보다 더욱 야세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정권이 막을 내리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부마항쟁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한 지역구에서 2명씩 뽑는 중선거구제가 있던 1985년 12대 총선에서는 부산 시민들은 6개 선거구 가운데 3곳에서 야당만 두 명씩 동반 당선시켰다.

현재 우리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총선에서는 한 곳만 빼고는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부산이 ‘여도’로 돌아선 것은 1990년 3당 합당을 하면서부터다. 이후 14·15·16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여당이 부산을 장악했다. 무려 26년 동안 여권지지세가 유지된 것이다.

일례로 2006년 지방선거 때 금정구의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구의원 후보가 후보 등록 전 이미 사망해 선거운동을 한 차례도 하지 않고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2014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부터 ‘야도 부산’의 명맥이 되살아날 기미를 보였다.

당시 민주당 김영춘 후보의 양보로 야권 단일후보가 된 무소속의 오거돈 후보는 49.3%라는 득표율로 50.6%를 기록한 새누리당 서병수 후보를 압박했다. 이번 총선에서 18석 중 5석을 차지하면서 야도 부산의 신호탄을 쏜 셈이다.

 

20대 총선에서 부산의 투표율은 55.4%로 대구 54.8% 다음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진다. 전국 평균 58%보다 낮은 수치다. 전체 투표율이 낮아지고 청년 투표율은 상승한 것으로 볼 때 노·장년층의 상당수가 투표를 포기했다. 19대 때 20%에 그쳤던 부산지역 야당 득표율은 20대 국회에서는 30∼40%대로 상승했다. 이 같은 민심 변화의 결정적 이유로는 경제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총선서 야권에 힘…26년 여권지지세 균열
'문재인 건재' 새누리 내년 대선 장담 못해

부산은 수출 부진에 내수 침체까지 장기화되면서 고용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은 고용 절벽이 심각한 상황이다. 동남지방통계청의 부산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올해 1분기 부산지역 취업자는 165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4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청년 실업자는 3만4000명으로 지난해보다 4000명 늘어났다. 이에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정부가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빠져 경기 회복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3월31일 더민주 부산시의회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는 경제선거”라며 박근혜정권의 3년간 경제 실정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부산의 정치를 독점해온 25년동안 부산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며 “지금 부산은 쇠퇴와 침체, 절망의 도시가 됐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부산은 400만명이던 인구가 지난해 기준 350만명으로 줄어들었고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위상은 경제력에 있어 인천에게 위협받고 있다.

부산은 조선·해운업 등 부산경제를 지탱하던 업종이 부실화되면서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는 상황이다. 부산 시민은 이번 총선을 통해 뚜렷한 경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신공항이 백지화되면서 민심은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모두 부산 출신이라는 점도 새누리당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문 전 대표는 "부산에서 국회의원 5명만 뽑아 주신다면 박근혜정부 임기 중에 신공항 착공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신공항은 백지화됐지만 국회의원 5석을 얻으면서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 호남에서는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던 문 전 대표가 부산에서는 나름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부산의 6곳에 후보를 냈지만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당 투표에서 20.3%의 지지율을 얻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4월19일 “20대 총선에서 부산시민들이 20% 지지를 보낸 것은 선물이 아닌 숙제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 변화로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23일 부산상의에서 진행된 상공인간담회에서 안 전 대표는 부산에 대한 러브콜 발언을 쏟아냈다. 안 전 대표는 “지금 부산 경제가 매우 어렵다”며 “부산이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업종과 함께 하면서 미래 일자리를 적극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국민의당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탈출구가 없다”

부산 정치권 관계자는 “당초 새누리당 독주가 예상됐던 부산에서 더민주가 5석을 확보하면서 부산 정치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며 “부산 출신 더민주 문 전 대표, 국민의당 안 전 대표 등의 향후 대권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shs@ilyosis.co.kr>


<기사 속 기사> 유신독재 내린 부마항쟁은?


부마항쟁은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벌어진 유신독재 반대시위로 부산과 마산의 첫 글자를 따 명명했다. 유신 정부에 의해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총재직 정지 가처분과 의원직 박탈 등의 사건이 발생하자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고조됐다. 부산에서 1979년 10월16∼17일 이틀 동안 부산대와 동아대 학생 5000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까지 합세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경찰력으로는 도저히 사태를 진압할 수 없다고 판단해 18일 새벽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공수단 병력을 투입해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계엄령과 위수령 발동 후 부마사태는 단기간에 진압됐지만 그 뒤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당했고 유신체제도 막을 내렸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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