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몰리는 ‘흡연 난민’ 실태

2016.06.27 10:26:25 호수 0호

“5배나 많은 세금 내는데…”

[일요시사 사회팀] 박민우 기자 = 대한민국 흡연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길거리로 시작한 금연구역은 대학캠퍼스, 음식점, 시내 광장 등 급속도로 확대됐다. 지난해 담뱃세까지 2000원이나 인상되는 등 정부의 일방적인 금연 정책 탓에 흡연자들은 울상이다.



정부는 그간 모든 음식점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금연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쳐왔다. 서울시도 지난 5월1일부터 지하철역 1662곳 출입구 10m 이내를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한강공원도 금연구역으로 지정, 올해 여의도와 이촌 한강공원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연차적으로 11개 한강공원이 금연구역으로 확대될 방침이다.

10조 더 내고도…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늘어나는 금연구역에 대해 흡연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집계한 지난해 담배 세수는 10조5000억원에 달한다. 모두 흡연자들의 주머니에서 거둬들인 금액이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작년 담뱃세 인상 이후 하루 한 갑 피우는 흡연자가 매달 납부하는 담뱃세는 10만923원으로 연간 121만원 수준이다.

연봉 2500만원인 근로자가 내는 연간 근로소득세액이 23만559원인 것을 감안할 때, 흡연자들은 매년 그보다 5배나 많은 세금을 내고 있어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연구역 확대에 대해 흡연자 이모(31·남)씨는 “비흡연자를 위한 정책은 이해가 가지만 흡연자의 권리가 일방적으로 무시당하고 있어 억울하다”며 “흡연자들이 내는 세금이 연간 10조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죄인 취급 받는 현재의 금연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흡연자인 회사원 김모(33·남)씨는 최근 담배를 피울 곳이 없어 곤욕이다. 근무 시간에는 상사 눈치를 보며 옥상이나 1층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하고, 자리를 자주 비운다는 핀잔도 들려온다. 모든 음식점이 금연인 탓에 회식자리에서도 눈치를 보며 밖에 나가보지만,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눈을 흘기고 지나가는 행인들 모습에 위축이 되고 만다.
 


김씨는 “어디를 가도 눈치를 보게 되고 죄인이 된 기분이다”면서 “비흡연자보다 세금도 더 내는데 마음 편히 담배 피울 장소는 마련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내뱉었다. 우리나라 흡연자 수는 약 1000만명이다. 일방적인 금연정책 속에 이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지만, 공공장소나 거리에서 마저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오히려 간접흡연의 피해가 더 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대로의 경우, 2012년 금연거리로 지정되고 최근 금연 구역이 더욱 확대됐다. 금연구역에선 흡연자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근처 이면도로나 골목길, 주택 밀집지역으로 이동하여 집중 흡연을 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길거리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이고 곳곳에서 담배 연기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는 등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일방적 금연정책은 음식점과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영세사업자들에게까지 피해가 이어져 서민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담배소비자협회가 일반시민과 영세규모 음식점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중 37.6%가 금연구역 지정에 따른 최대 피해자로 점주를 꼽았다. 조사 대상 점주의 절반 이상인 59.3%는 실내흡연 규제로 매출에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매출 감소폭은 평균 17.6%라고 했다.

흡연자-비흡연자 모두 불편한 금연정책
분리형·선택 도입 등 현실적 대안 필요

국민의 건강을 위한 좋은 취지로 시작된 실내금연 정책. 규제당국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보다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권리를 동시에 보호하고 국민 건강뿐만 아니라 경제도 살릴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분리형 금연정책’이 대두되고 있다. 세금 일부를 충당해 흡연부스를 설치하고 간접흡연 피해를 줄여 흡연자와 비흡연자간의 공존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작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79.9%가 ‘길거리 흡연구역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여 ‘흡연구역이 불필요하다’는 의견(20.1%)보다 4배 가까이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실외 흡연 구역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보건 당국은 각 지자체에 공을 넘긴 채 뒷짐만 지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등의 이유로 꺼려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기준 서울시에 설치된 흡연 부스는 8개 구에 26곳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홍콩 등의 나라는 공공장소 흡연을 막고 있지만 ‘분리형 금연정책’을 시행 중이다. 일본은 도심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2만엔(약 19만8000원)이 넘는 고액의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지만, 어디서든 도보로 5분 이내에 찾아갈 수 있는 흡연부스도 함께 설치되어 있다.
 

외국처럼 일정 규모 미만의 작은 음식점 등은 금연구역에서 풀어주고 주인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상점을 선택할 수 있고 주인들도 영업에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택적 금연법’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 이원욱 의원실과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이 성인남녀1000명(흡연자 500명·비흡연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사업주가 흡연 가능한 식당과 비흡연 식당을 직접 선택하고 이를 사업장 입구에 표기토록 해 소비자에게도 선택권을 주는 선택적 금연법에 72.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울 곳 없다”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의 운영자 이연익씨는 “1000만이나 되는 흡연자를 억누를 것이 아니라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 필요하다”며 “금연구역을 확대하더라도 별도의 흡연공간을 마련하고 지정된 공간에서만 흡연하도록 바람직한 흡연문화를 조성하는 등 흡연자·비흡연자간 상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방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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