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태풍’ 상륙한 여의도, 민주당 저격수 총동원령
소문난 저격수, 개인 정보라인 풀가동 실탄 확보전
현 정권을 향한 야권의 공세가 매섭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주춤하고 있지만, 김윤옥 여사의 대우해양조선 사장 연임로비 관련 의혹부터 대포폰 등으로 대표되는 민간인 사찰 관련 의혹에 이르기까지 ‘폭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정가 안팎에서는 야권에 정보를 쥐어준 ‘제보자’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권력의 심장을 겨냥할 실탄을 제공하는 이는 누구일까. 여의도 저격수들의 정보전을 쫓았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마무리하고 있다. 전 정권들이 이 시기 ‘집권 3년차 증후군’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권력형 게이트를 겪은 데 비하면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조차 “현 정부 들어 권력형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지만 없다고 보느냐. 그건 아닐 것”이라고 단언한다. 현 정권이 아직 큰 무리 없이 돌아가는 것은 대규모 게이트 사태가 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게이트로 연결될 ‘건수’가 없어서라 아니라 민주당에 게이트를 터뜨릴 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야성 회복한 민주당, 몸통 향해 ‘정조준’
이들은 “정치권과 연루된 게이트로 흥망이 좌우됐던 과거 정권과 달리 지금의 민주당에는 게이트를 파헤칠 만한 인물이 없고 그로 인해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최근 ‘야성’을 회복한 민주당의 공세가 만만치 않아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몸통 의혹과 친형 상은씨가 대주주로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한국수출입은행 중소기업 육성사업 선정 특혜 의혹, ‘후원자’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알선수재 혐의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로비 연루 의혹까지…. 이 대통령의 친인척 주변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의혹들을 꼬집어 내고 있다.
여기에 대포폰으로 대표되는 국무총리실과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까지 더해져 ‘살아있는 권력’의 숨통을 죄고 있다.
그렇다면 권력의 심장부를 노리는 민주당 저격수들의 ‘실탄’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민주당 관계자들은 “저격수라 꼽히는 이들은 자체적인 정보망을 가진 이들”이라고 말한다. 최근 국회에서도 정보전에 의원 개개인의 정보망이 중요하게 동원되고 있다. 전에는 국정감사나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정부와 여당이 손을 잡고 야당을 경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같은 공식은 많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 참여정부 이후 정부에 자료를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결국 개인의 정보망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많은 인맥을 쌓고 있을수록,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수록 공세는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당내 ‘정보통’으로 꼽히는 이들은 ‘저격수’로서도 이름을 떨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 정부 시절 2인자로 불리면서 각계에 쌓아둔 인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활용, 고급의 정보를 얻고 있다는 것.
박 원내대표의 정보력은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도 그의 정보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 원내대표는 천 전 후보자와 그가 신사동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15억5000만원을 빌린 사업가 박모씨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극비리에 입수한 입출국 자료를 바탕으로 2004년과 2008년 일본으로 부부 동반 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밝혀냈다. “같이 간 기억이 없다”는 천 전 후보자의 거짓 해명은 낙마의 결정타가 됐다.
또한 천 전 후보자 부인이 호화 명품 쇼핑을 즐긴다는 것을 알아내 집중 추궁했다. 천 전 후보자 가족의 면세품 구입 리스트를 낱낱이 공개하면서 “후보자 부인이 명품 속옷을 산 자료까지 입수했는데 관세청에서는 거짓 자료를 줬다”며 천 전 후보자와 정부를 동시에 겨냥한 것.
천 전 후보자 아들의 호텔 결혼식과 위장전입까지 알아내자 여권 의원들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결국 세세한 자료를 면전에 들이민 박 원내대표의 공격에 정부도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인사청문회 직후 ‘저격수 박지원’의 뒷얘기가 전해졌다. 천 전 후보자의 발목을 잡은 정보들은 보좌진들도 모르는 사이 취합됐으며 인사청문회 하루 전에야 보좌진에게 건네졌다는 것. 박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보망’만을 움직여 천 전 후보자의 낙마를 이끌어냈다는 내용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이후에도 본인이 직접 전면에 나서거나 그렇지 않거나 당내 ‘정보의 근원지’로 주목받아 왔다. 최근 현 정권을 향한 각종 공세와 관련, 제보자로 지난 정권 시절 검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에 포진했던 인사들이 꼽히거나 여권 인사의 제보설 등이 제기되는 와중에도 ‘박 원내대표가 모든 정보를 취합한 후 당내 저격수들에게 분배했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하지만 ‘정보의 실체’나 ‘제보자의 존재’는 극비에 붙여지고 있다. 한 당관계자는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 정부 시절 거미줄처럼 연결해둔 정보원들이 각계에 걸쳐 있으며 이와 관련한 부분은 소리 소문이 없이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도 박 원내대표의 정보망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당내 의원들도 출신에 따라 독자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있지만 박 의원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거미줄 같은 정보망 ‘알짜배기 정보’ 흐른다
박 원내대표 외에도 ‘저격수’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급 정보에 다가설 수 있는 인맥을 갖췄거나 ‘전투력’을 갖춘 이들이라는 점이다.
정가 한 인사는 “정확한 정보는 그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전·현 정권 실세들에게 몰리지 않겠냐”며 “검사가 파견된 청와대 민정라인조차 잡아내지 못한 ‘결함’을 속속 찾아내는 실력이나 인맥은 그냥 생긴 게 아니”라고 말했다.
당내 ‘저격수’로 통하는 의원실 관계자의 설명도 마찬가지다. 그는 “평소 돌아다니다가 언뜻 흘려들은 한 마디가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고 그 바닥에서는 파다하게 퍼진 이야기들이 ‘진짜’를 가리키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기자들이 정보 수집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좌관들도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정보 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진짜 정보는 의원이 가지고 오기 마련”이라며 “국회의원이 된 만큼 만나는 사람들이 다양한데다 직급이 높은 이들과 만나는 경우도 많다. 청와대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이와 관련된 정보가 가장 많이, 심도있게 나올 곳은 그와 가까운 곳인데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질이 다르다. 그렇다면 의원과 보좌관 중 누가 더 좋은 정보를 가질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평소 의정활동에서 ‘전투력’을 인정받은 의원실에 제보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며 “제보를 하는 사람도 자신의 정보가 ‘제대로’ 쓰일 수 있기를 바라니 공격을 할 저격수를 이리저리 재보고 정보를 건넨다. 의원실들 끼리도 ‘파헤칠 능력이 있는’ 의원실에 일감을 몰아주다보니 몇몇 의원실에는 제보가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저격이 시작되면 제보들이 하나 둘 추가되고는 한다. 이번에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서도 박 원내대표가 “‘대포폰’에 대해선 계속 자료가 확인되고 있다”며 “자료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만큼 분석하고 하나하나 확인, 검증해 확실할 때 공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름 높은 곳에 제보도 모여든다
저격수의 손에서 ‘실탄’으로 변모하는 제보의 상당수는 의정활동 중 얻게 되거나 의원실로 전화나 이메일, 우편물을 통해 전달된다. 다만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전해지는 제보들은 ‘헛방’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쏟아지는 제보들 중 옥석을 가리는 것도 ‘일’”이라고 말했다.
제보의 진위를 파악하다보면 어렴풋하게나마 ‘얼굴 없는 제보자’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안’에 있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사안으로 판명돼 ‘내부 고발’이 확실시 되거나, 저격수의 총탄에 맞게 될 이의 ‘적’이 의도적으로 전한 제보라는 게 밝혀진다는 것.
국회 ‘정보통’으로 꼽히는 한 인사는 “아직까지 곳곳에 양심 있는 내부 고발자가 있는 편”이라면서도 “어떤 일에나 경쟁자는 있게 마련”이라며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제보를 하거나 정치권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일부러 정보를 흘리는 경우, 적극적으로 정보조작에 나서는 등 제보 이유도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인사도 “무슨 일을 하든 경쟁자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있다. 야당의 폭로전에 여당 인사의 제보설이 떠도는 이유도 이 같은 이유”라며 “내부 권력다툼 등 불협화음을 내다가 ‘차도살인계’를 쓰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숨은 제보자가 누구이건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 ‘철칙’이다. 박 원내대표는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이후 사정기관에서 천 전 후보자의 낙마를 도운 ‘제보자’를 추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직후 “국정원과 검찰에서 본격적으로 (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면서 “내 주위에서 누가 어떻게 제보를 했는가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정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자리를 빌어 국정원과 검찰이 이러한 못된 짓을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다른 저격수들도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는 한다.
청와대 대포폰 의혹을 제기한 이석현 의원은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를 이용해 제보자와 통화했다. 또한 ‘꼬리’가 잡힐 수 있는 이메일, 팩스 사용은 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실 측은 “국회 의원회관이 도·감청에 취약하다는 건 이미 비밀이 아니지 않나. 휴대전화뿐 아니라 유선 전화의 감도 상당히 떨어진 상태”라며 “제보자 신원 보호와 도·감청의 위험을 생각해 공중전화를 이용하거나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숨소리까지 ‘쉿’…007작전 따로 없네
몇몇 의원들은 여러 개의 휴대전화를 바꿔가며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휴대전화를 바꿔서 사용하는 것으로 도·감청 위험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 여러 개의 휴대전화를 쓰는 바람에 매번 보좌관에게 ‘지금 통화 가능한’ 휴대전화 번호를 확인한 후 통화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감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당 차원에서 전면전에 나설 때는 당내 정보통 의원들에게 ‘함구령’이 내려지기도 한다.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거나 흙탕물을 만들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보안 유지와 치밀한 정보수집 활동을 통해 ‘갈고 닦은’ 저격수들의 총탄이 향후 정국에서 얼마만큼의 파장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