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대한민국 면세점 정책 민낯

2016.05.30 10:22:30 호수 0호

10조 두고 갈팡질팡 ‘정신 나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면세점 특허권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공표되자마자 유통공룡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10조원대 면세점 시장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고자 벌써부터 출사표를 던진 기업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기회를 엿보는 곳도 눈에 띈다. 누가 최종 승자로 기억될지 아직은 속단하기 힘들다. 다만 기존 면세점 사업자들에 유리하게끔 만들어진 룰이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난달 29일 관세청은 올해 하반기에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사업권을 4개 더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대기업 세 곳, 중소·중견기업 한 곳을 포함하는 게 기본 골자. 논란이 됐던 심사방식은 일부 수정이 가해질 예정이고 심사가 끝난 후 심사위원 명단과 평가 점수를 선별적으로 공개할 방침이다. 시내면세점 추가는 관세청의 고시 개정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 방침대로 추진할 수 있다.

면세점 특허권
누구에게로?

면세점 추가 사업자 선정 계획이 발표되자 유통업계에는 곧바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기존 사업자는 물론이고 신규 사업자들도 대거 참여 의사를 표명한 상황이다. ▲롯데면세점 ▲SK네트웍스 ▲현대백화점그룹 ▲신세계DF ▲두산 ▲이랜드 ▲한화 등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만 10곳 가까이 된다.

유통업계는 신규 사업자들 사이에서 현대백화점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분류하는 분위기다. 신규 참여를 원하는 기업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는 현대백화점은 허가를 받으면 기존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문을 연다는 계획이다. 강북에 치우진 시내 면세점의 쏠림현상을 보완하고, 면세관광산업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심산이다. 

현재 서울시내 면세점은 총 10곳으로 이 중 9곳은 명동, 장충동, 여의도 등 주로 강북 지역에 있고 강남에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이 유일하다. 현재까지는 강남을 방문한 외국인이라도 면세 쇼핑을 할 곳이 충분치 않아 강북에 있는 면세점들을 이용했다. 하지만 강남지역에 유입되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강남권 면세점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양상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무역센터점 일대는 국내 유일의 ‘MICE 관광특구’로 지정됐고 2021년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라며 “서울 시내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으로 떠오르고 있어 경쟁력이 있다”라고 밝혔다.

기존 사업자들 신규 특허권에 군침
‘이랬다 저랬다’ 정부 계획에 혼란

호텔롯데의 롯데면세점이나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 등 기존에 면세점을 운영했던 사업자의 특허권 획득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특히 국내 시내면세점 가운데 매출액 3위인 롯데 월드타워점은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6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던 월드타워점은 ‘관광쇼핑 복합단지 면세점’으로 재탄생시켜 5년동안 28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내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상태. 관광산업 활성화를 강조하는 정부의 의중과 맞아떨어진다. 이는 정부가 월드타워점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명분이기도 하다.
 

일단 ‘독과점 논란’이라는 변수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정부는 지난달 특허기한을 기존과 같이 10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발표하면서 ‘시장지배적 추정 사업자’가 신규 특허심사를 받을 경우 일부 감점을 받도록 했다. 사실상 시장점유율 60%를 웃도는 롯데면세점을 겨냥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24년 역사를 가진 워커힐면세점 역시 오랫동안 면세점을 운영했던 노하우를 앞세워 특허권을 노리고 있다. 다만 인천 통합물류창고와 IT시스템 등 면세점 자산을 연이어 매각했던 워커힐은 그동안 밟아온 폐업 절차를 다시 되돌리는 게 선결과제다. 일부 인력의 유출 해결해야 한다.

워커힐측은 면세점 자체에 충분한 물류센터 공간이 있는데다 IT시스템도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인력 유출 역시 극소수이고 특허권을 획득하면 충원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세계·두산
아전인수 해석

굴지의 유통공룡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면세점 특허권에 목메는 건 면세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운영방식 때문이다. 백화점이 임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내는 것과 달리 면세점은 매입과 판매를 통해 수익이 창출된다. 판매처가 세분화될 경우 저렴한 가격에 매입이 가능하고 재고율도 떨어뜨릴 수 있다. 롯데면세점이 업계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존 면세점 사업자들이 특허권 쟁탈전에 다시 뛰어들 수 있게 만든 관세청의 결정이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특허권을 따낸 일부 업체의 경우 이중적인 행보로 벌써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동전 뒤집듯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인다는 게 주된 요지.


신세계와 두산은 정부의 면세점 추가 허용 정책에 반대하다가 신규 면세점들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면세점을 추가할 경우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했다가 이제는 오히려 자신들이 사업에 도전하려는 모습이다.

김해공항 면세점 등 기존 경영능력을 앞세워 지난해 말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했던 신세계는 지난 2월 적자를 이유로 돌연 김해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했다.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획득 소식이 전해진 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진 결정이었다. 

게다가 신세계와 두산은 면세점 사업자 추가 선정 여부가 알려지자 나머지 신규 면세점 사업자와 공동으로 행정소송까지 거론하며 정부의 입장에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생력이 생기는 최소 1년간 이 문제를 보류해 줄 것을 요구했다. 면세점 사업자 추가 선정 시 경쟁 과다에 따른 면세점 품질 저해 및 업계 공멸 가능성을 걸고넘어진 셈이다.

어긋나버린
정부의 결정

그러나 신세계와 두산은 기존의 입장을 재차 뒤집었다. 정부가 고용문제와 면세점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신규면세점 특허권자 추가 선정 계획을 발표하자 추가 특허를 검토하고 있다며 태세를 전환했다. 사실상 시내면세점 특허권 싸움에 뛰어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18일 성영목 신세계 DF 사장은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지난 20일 이천우 두산 부사장도 “시내가 됐든 공항이 됐든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한화갤러리아도 자사의 면세사업부의 성장을 위해 면세 특허 취득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들의 ‘말 바꾸기’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기업 윤리를 무시한 채 이익에만 집중하는 처사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이들의 면세점 운영능력에도 아직까지는 물음표가 붙는다. 최근 개장한 두타면세점의 MD는 아직까지 미흡한 수준이고 어느새 매출목표도 하향 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규 업체들의 면세점 운영능력에는 아직 물음표가 붙어 있다”며 “이들이 추가로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더라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금의 상황을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은다. 오락가락한 면세점 정책이 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고제로 운영되던 면세점 제도는 허가제로 전환된 후 대기업 독과점 논란에 봉착했다. 결국 특허기간을 줄이는 식으로 땜질식 처방이 이어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고 작금의 혼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거듭된 말 바꾸기 이중성
다음은…현대백화점 유력

지난해 벌어진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 논란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세청은 지난해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권을 15년 만에 처음으로 내놨다. 특허권을 차지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너나없이 달려든 모습은 총력전 그 자체였다. 제각각 수백억 단위의 투자금을 제시했던 사활을 건 혈투 끝에 결국 5개 사업권을 놓고 희비는 엇갈렸다.

최종 승자는 ▲HDC신라 ▲한화 ▲신세계 ▲두산 ▲SM컨소시엄이었다. 반면 기존 사업자였던 호텔롯데와 SK네트웍스는 고개를 떨궈야 했다. 후폭풍은 엄청났다. 면세점 대전 패배의 여파로 SK네트웍스는 지난 16일 워커힐면세점을 폐점했고 호텔롯데의 롯데면세점은 6월30일자로 월드타워점 운영을 종료하게 된다.

승패가 뚜렷이 갈린 싸움이었지만 투명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았던 절차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관세청은 특허권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특허권 심사도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자동갱신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정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사실상 인정했다. 한술 더 떠 관세청은 올해 하반기 서울에 면세점 특허권을 늘린다는 전례 없는 계획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사업자들이 신규 면세점의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상도덕이고 뭐고'
불거진 이중성

유통업계 관계자는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며 “지난해 신규 특허권에 도전한 기업들은 올해도 도전한다고 보는 게 맞다. 올해도 한정된 특허권을 두고 불가피한 전쟁을 치를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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