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골퍼 해링턴 '어제와 오늘'

2016.04.26 09:40:41 호수 0호

“노병은 죽지 않는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유럽투어를 병행하는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은 올해 마흔다섯 살이다. 전성기는 지난 나이다. ‘패디(Paddy)’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해링턴의 투어 경력은 화려하다.



젊은 선수와 대결 겁나지 않아
솔직 꾸밈없는 아일랜드 촌뜨기

메이저대회 디오픈을 2007년과 2008년 연속 우승했고 2008년에는 PGA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도 곁들였다. 메이저대회 우승컵만 3개다. PGA투어에서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통산 6승을 올렸고 유럽투어에서는 11차례 우승했다. 아시아투어에서 4차례 우승을 보탠 해링턴은 아일랜드의 내셔널타이틀 대회인 아이리시오픈을 무려 6차례 제패했다.

화려했던 지난 날

해링턴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운동선수이자 국민 골퍼다. 그의 전성기는 타이거 우즈의 전성기와 거의 겹친다. 많은 선수가 우즈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지만 해링턴은 달랐다. 그는 우즈의 PGA투어 올해의 선수상 수상을 가로막은 선수 가운데 한명이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13년 동안 우즈가 PGA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놓친 것은 3번뿐이다. 투어 2년차이던 1998년 마크 오메라(미국)에게 올해의 선수상을 내준 우즈는 2004년 비제이 싱(피지), 그리고 2008년 해링턴에 올해의 선수상을 뺏겼다. 해링턴은 2006년 초청 선수로 출전한 일본투어 최고의 대회 던롭피닉스 토너먼트에서 우즈를 연장전에서 꺾었다. 그때까지 우즈는 14차례 연장전에서 12승을 올려 ‘연장불패’라는 훈장을 달고 다녔기에 해링턴의 연장전 승리는 큰 화제가 됐다.


‘붉은 셔츠의 공포’도 해링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붉은 셔츠의 공포’는 당시 우즈와 동반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이 한결같이 제풀에 주저앉자 생겨난 말이다. 해링턴은 우즈의 전성기 때 최종 라운드 맞대결에서 우즈보다 더 좋은 스코어를 낸 드문 선수였다.

‘아일랜드 촌뜨기’를 자처하는 해링턴은 성격도 좋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그는 언론과 관계도 좋은 편이라서 미국 골프전문기자협회가 미디어에 협조적인 선수에게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특히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데도 뛰어나다.

지난 2008년 LPGA투어가 한국을 비롯한 비영어권 선수들을 견제하려고 영어 시험 도입을 추진하자 “말을 못하는 장애인은 LPGA투어에서 뛰지 말라는 거냐”고 직격탄을 날린 적도 있다.

그러나 해링턴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잦은 부상과 스윙 교정으로 고전하던 해링턴은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 PGA투어뿐 아니라 유럽투어에서도 ‘이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다. 세계랭킹도 297위까지 떨어졌다.

해링턴의 쇠락은 PGA 투어에서 20대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40대 선수들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현상으로 해석됐다. 그러던 해링턴은 작년 이맘때 PGA투어 혼다클래식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아들뻘인 22살 신인 대니얼 버거(미국)를 연장 접전 끝에 누르고 7년 만에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버거는 장타를 앞세운 파워풀한 경기 스타일로 작년 신인왕을 탄 선수다.

40대 기수론 최전선
여전한 경쟁력 평가

해링턴은 이후 12차례 대회에서 7차례나 컷 탈락했고 디오픈 공동 20위를 빼곤 대개 하위권 성적에 그쳤다. 그의 혼다클래식 우승은 그야말로 ‘이변’에 불과했던 셈이다. 해링턴은 이번 시즌 들어 부지런히 대회에 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적은 신통치 않다. 출전 선수가 32명인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공동6위에 올라 딱 한번 ‘톱10’에 입상했고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해링턴은 올 시즌 대회를 앞두고 ‘40대 기수론’을 힘차게 외친다. 그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요즘 20대 선수들이 투어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40대 선수들이 뒷전에 물러나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던 스피스(미국), 제이슨 데이(호주),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리키 파울러(미국) 등 20대 선수들이 세계랭킹 최상위권을 점령한 데다 파워를 앞세워 공격적인 경기를 하는 젊은 선수들이 대세이긴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해링턴은 “나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면서 “일찍 재능을 피웠다가 일찍 시드는 선수도 있고 서른 넘어서 빛을 보기 시작해 마흔 넘어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선수도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나는 여전히 체육관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비거리도 전성기 때보다 더 나간다”며 “젊은 선수와 겨루는 게 겁나지도 않고 경기에 나서면 아드레날린이 솟는 걸 느낀다”고 큰소리를 쳤다.

해링턴의 ‘40대 기수론’은 마흔여섯 살인 필 미켈슨(미국)과 최경주의 부활과 무관하지 않다. 2013년 이후 우승이 없는 미켈슨은 2014년부터 상금랭킹 30위권으로 밀렸고 지난해에는 프레지던츠컵에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지 못해 단장 추천 선수로 참가하는 수모를 겪었다.

전의 불태우나

미켈슨은 그렇지만 이번 시즌에는 4개 대회에서 준우승 한 번, 3위 한 번 등 우승을 넘보는 높은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지독한 부진에 허덕이던 최경주 역시 올해 두차례 우승 경쟁을 벌인 끝에 준우승 한 번과 공동5위 한 번을 차지해 부활을 알렸다.

최경주는 “비거리는 젊은 선수와 비교가 안 되지만 아이언샷과 쇼트게임, 그리고 퍼팅으로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해링턴 역시 “점점 장타를 치는 선수가 많아지고 있지만 장타를 친다고 우승하는 건 아니다”며 “우승을 결정짓는 건 최종 라운드에서 얼마나 퍼팅을 잘하느냐에 달렸다”고 노련미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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