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올인’ 현대그룹 뒤통수 맞은 사연

2010.11.09 09:54:04 호수 0호

사방이 적…‘현정은 반대파’ 각개 공격


사방이 적이다. 어느 누구하나 거들지 않는다. 아군은커녕 식구마저 외면해 버렸다. 그야말로 외톨이 꼴이다. 현대건설 껴안기에 올인하고 있는 현대그룹이 수세에 몰렸다. 여기저기서 인수 반대 목소리가 나오더니 급기야 경쟁 중인 현대·기아차그룹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홀로 쓸쓸히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대그룹. 과연 현대건설을 품을 수 있을까.

곳곳서 현대·기아차 우회적 지지 목소리 쏟아져
‘식구’ 현대증권에 현대건설 노조·퇴직자들 가세


지난달 29일 오후 6시30분 서울 여의도 현대증권 본사 앞. 현대증권 노조원들이 삼삼오오 모이더니 금세 500여명이 됐다. 이들은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노조는 “현대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현대건설 입찰에 참여하려 한다”며 “현대건설 인수참여 결정은 전면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가 적격일까요”

현대증권이 ‘1등 증권사’를 지향한다면 회사 자금을 회사의 발전에 써야지 그룹의 무리한 계열사 확장에 자회사의 소중한 자금이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즉 현대건설 인수에 현대증권 자금을 쏟아 부을 수 없다는 것.

민경윤 노조 위원장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것은 현대그룹 경영권이 매우 위태롭기 때문”이라며 “현대증권에서 나가는 자금이 3000억원 이상일 수 있다. 현대건설 인수나 경영할 능력도 없는 현대그룹이 부당하게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대증권 노조원들은 앞서 지난달 12일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 본사 앞에서 “현대그룹 경영 간섭반대”를 외치며 촛불집회를 갖기도 했다.

식구에게 일격을 당한 현대그룹은 씁쓸한 표정이다. 현대증권은 현대그룹 계열사다. 현대증권 주주는 최대주주인 현대상선(23.17%)을 비롯해 우리사주(4.83%),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0.08%), 현 회장의 모친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0.02%) 등으로,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8.14%에 달한다. 현대증권 이사회 의장은 현 회장이 맡고 있다. 사내이사도 현 회장을 포함해 현대상선 임원들로 채워져 있다.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건 현대그룹이 복병을 만났다. 현대·기아차그룹과의 막판 경쟁이 가열되는 와중에 현대건설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분위기가 확산되는 뜻밖의 악재를 맞닥뜨리게 됐다. 반대로 현대·기아차그룹으로선 예상치 못한 호재가 아닐 수 없다.

현대증권 노조뿐만 아니라 현대건설 노조와 현대건설 퇴직자 모임인 현대건우회도 현대·기아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지지하는 내용의 광고를 주요 일간지에 잇달아 실어 현대그룹의 심기를 건드렸다. 현대건설 노조는 지난 2일 주요 일간지에 ‘현대건설 가족의 호소문’이란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노조는 광고에서 “건설업의 선두주자로서의 명성을 유지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무형의 기업가치 상승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재도약하는 계기로 삼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안정적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M&A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우량기업이었던 대우건설이 잘못된 M&A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각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기준에 있어서도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 노조가 특정 기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대우건설을 언급한 것은 사실상 현대그룹을 겨냥하고 현대·기아차그룹을 옹호하는 듯한 광고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건우회도 이날 ‘현대건설 매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신문 광고를 통해 우회적으로 현대·기아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두둔했다.

현대건우회는 “최근 M&A 실패 사례에서 보듯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과도한 차입금 등으로 인수기업이 부실화되고 이로 인해 현대건설마저 동반 부실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인수자금 조달액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향후 기업으로서 지속 가능성이 있는지 면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대건설 인수자는 고부가가치 사업영역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투자 여력과 육성의지, 경영능력을 두루 갖춘 기업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대건우회는 현대건설의 기술 유출도 우려했다. 이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전략적 투자자(SI)로 독일 엔지니어링기업인 M+W그룹을 끌어들인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현대·기아차그룹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현대건우회는 “현대건설의 축적된 우수 기술과 풍부한 경험이 해외에 유출돼서는 안 된다”며 “현대건설의 원자력 발전시공기술, CO2 저감/저발열 콘크리트 기술, 에너지변환 저장기술 등 국가적 수준의 기술과 노하우들이 해외로 유출된다면 현대건설만의 손실이 아니라 국내 건설업과 국가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과열 인수전을 부추기는 비방광고가 난무하는 감정적인 여론전이 벌어지고 있다. 작고하신 고 정주영 회장님을 홍보에 이용, 고인의 명예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삼가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표현으로 현대·기아차그룹을 공격하는 광고전을 펼치고 있는 현대그룹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현대건우회는 총 회원이 1000여명으로 현대건설 통합구매실장(전무)을 역임했던 김주용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이외에 이춘림, 이내흔, 김윤규, 이종수씨 등 전직 현대건설 대표이사들이 고문을 맡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과거 현 회장의 남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가신들이었다는 점에서 현대그룹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 현대그룹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우회의 광고에 대해 “현대차를 일방적으로 편들고 헐값 매각을 부추겼다”며 “형법상 입찰방해죄에 해당된다고 보여 형사고소 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현대·기아차그룹 직원들이 현대건설 인수를 찬성하는 뜻을 밝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현대차의 부장 이하 전 직원으로 구성된 우리사주조합은 지난달 11일 ‘현대건설 인수, 조합원에게 독인가? 약인가?’란 제목의 소식지를 내고 “무조건 반대보다는 내용을 따져봐야 한다. 현대건설은 투자가치가 충분한 기업이다. 자동차와의 시너지가 기대된다”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불편한 기색 역력

조합은 “이미 삼성, SK, LG 등 국내 주요기업이 기존 사업을 넘어 태양광, 해수개발사업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대차 역시 자동차 산업과 함께 고부가가치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반대하고 있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은 4만3000여명인 반면 현대차 우리사주조합원은 5만6000여명이다.
조합원 중 상당수는 노조원이어서 우리사주조합의 주장은 현장 노조원들의 의사를 적지 않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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