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재벌후계자 체크 ⑥ 태광그룹 이현준

2010.10.19 09:32:14 호수 0호



‘아직 16세인데…’ 조급한 승계 다지기 ‘진통’
고의실권 등 변칙증여 의혹 제기…검찰 수사

한 나라의 경제에서 대기업을 빼곤 얘기가 안 된다. 기업의 미래는 후계자에 달렸다. 결국 각 그룹의 후계자들에게 멀지 않은 대한민국 경제가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경제를 맡겨도 될까. 불안하다.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경영수업 중인 ‘황태자’들을 체크해봤다. 여섯 번째 주인공은 태광그룹 이현준씨다.



1996년 11월 고 이임룡 창업주가 별세한 뒤 태광그룹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호진 회장은 1남1녀를 두고 있다. 이중 외아들 현준씨가 후계자로 유력하다. 올해 16세인 현준씨는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으로, 대학도 미국에서 졸업할 예정이다.

48세인 이 회장이 젊은 데다 현준씨가 아직 어려 태광그룹의 경영권 승계 여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태광산업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대한화섬, 흥국화재, 흥국생명 등 주요 계열사 주식도 없다.

비상장사 통해 장악

하지만 현준씨를 왕좌에 앉히기 위한 보이지 않는 물밑작업은 계속돼 왔다. 비상장사들을 통해서다. 대물림 핵심고리는 티시스(옛 태광시스템즈), 티알엠(옛 태광리얼코), 한국도서보급 등 3개다. 현준씨는 이들 회사의 지분을 49%씩 갖고 있다. 나머지(51%)는 모두 이 회장이 쥐고 있다.

티시스와 티알엠은 태광산업 지분을 각각 4.51%, 4.63%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합하면 9.14%에 달해 이 회장(15.14%)에 이어 2대주주에 오를 수 있다. 한국도서보급은 핵심 계열사인 대한화섬의 최대대주(17.74%)다.


여기에 현준씨는 케이블방송 사업 부문의 중심축인 티브로드홀딩스의 지분 8.21%도 확보하고 있다. 티브로드홀딩스는 15개 SO(종합유선방송사업)들의 지주회사다. 결국 현준씨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자회사들을 동원, 그룹 장악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준씨는 비상장사들을 기반으로 황태자 자리에 언제든지 올라설 수 있다”며 “현 상태를 유지하다 나중에 이 회장의 지분만 넘겨받아도 사실상 경영 승계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준씨의 지분 매입 과정이다. 변칙증여 의혹이 불거진 것. 약 3%의 지분으로 태광산업 소액주주를 대표하고 있는 서울인베스트는 최근 이 회장이 현준씨에게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도록 편법으로 신주를 헐값에 넘겼다고 주장했다. 계열사들이 싸게 발행한 신주를 이 회장이 고의적으로 실권, 현준씨에게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토스’해줬다는 것이다.

현준씨는 2006년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이 회장이 100% 출자했던 티시스 지분 49%를 보유하게 됐다. 당시 현준씨는 주당 1만8955원에 넘겨받았다. 현준씨는 2005년 한국도서보급과 티브로드홀딩스, 2006년 티알엠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현재의 지분을 확보했다.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는 “이 회장이 기업 활동으로 확보한 여러 자산과 기회를 자신과 현준씨가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비상장 기업에 편법적으로 이전했다”며 “이를 통해 현준씨가 태광그룹 전체를 소유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재편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준씨는 이외에 그룹의 골프장 사업을 맡고 있는 동림관광개발의 주식(39.00%)도 갖고 있는데, 동림관광개발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태광산업 등 계열사들의 밀어주기 의혹이 제기된 것. 서울인베스트는 “그룹 계열사들이 2008년 강원도 춘천에 골프장을 짓고 있는 동림관광개발의 회원권 792억원어치를 매입했다”며 “골프장을 완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유명 골프장 회원권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여 지원했다”고 꼬집었다.

사실 현준씨의 승계 작업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었다. 그때마다 그룹 측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검찰이 나섰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지난 13일 태광산업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20여명의 수사관들을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태광산업 본사 사무실로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주요 계열사 지분을 저가에 발행하는 방식으로 현준씨에게 넘긴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회사 관계자들을 소환해 이 회장의 지분이 현준씨에게 넘어간 경위와 이 과정에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또 이 회장이 비상장 자회사 지분을 헐값에 넘기거나 내부자 거래로 오너일가 회사에 이익을 몰아줬는지도 확인할 예정이다.

뭐가 그리 급했나


태광그룹 측은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여러 번 의혹이 나왔지만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서울인베스트가 제기한 의혹에 일절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검찰의 수사에 대해선 “갑자기 압수수색을 당해 당황스럽다”며 “현재로선 검찰의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현준씨가 그룹에 합류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걸린다. 경영 전면에 나서기까진 20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벌써부터 시끄럽다. 너무 조급했던 게 탈이 난 모양이다. 현준씨가 혹독한 신고식을 잘 치르고 제대로 ‘데뷔’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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