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노숙자들은 지금…

2015.12.31 10:11:16 호수 0호

“따뜻한 봄날만 기다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2015년의 끄트머리 영등포역은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 연인 등 올해가 가기 전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훈훈한 마음이 감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틈 외로이 영등포역 바닥에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차가운 바닥에 잠들어 있는 사람, 낮부터 술에 취해있는 사람, 심지어 서로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바로 노숙자들이다. 그들은 연말이 훈훈하지 않다. 자신을 괴롭히는 추운 겨울일 뿐더러 하루하루가 더욱 고통스럽다.



영등포 지역의 노숙자 숫자는 공식적으로 150여명, 비공식적으로 6000명에 이른다. 노숙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외로움과 편견·무력감을 첫 번째로 들었다. 노숙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23명이 ‘외로움’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 이라고 말했다.

하루하루가 고통

‘무기력’(22명), ‘주위 사람들의 편견’(24명)까지 합치면 심적인 어려움을 토로한 이가 69%에 달했다. ‘배고픔과 추위’라고 답한 이는 28명이었고, ‘건강 악화’를 꼽은 이는 3명에 불과했다. 가장 필요한 것으로는 41명이 ‘직업 훈련’을 꼽았다.

노숙자들의 대부분은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숙박은 길거리에서 자거나 더러는 PC방·만화방·고시원 등을 이용한다. 이들의 절반 이상은 5년 이상 노숙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영등포 지역은 잠재적 노숙자들이 무더기로 대기하는 곳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곳에는 일용직 인력시장과 기초수급자 집단이 몰려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시설·노숙 생활을 번갈아 가면서 한다.

노숙자들의 월 평균 수입은 20만∼40만원. 월수입이 있는 노숙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술값, 담배값이나 경마, PC게임 등으로 탕진한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각종 종교·사회봉사단체 등의 숙식 지원 때문이다. 노숙자가 많은 영등포에 숙식 지원이 집중되다보니 노숙자들의 자활의지가 떨어지는 것.


노숙자들의 범죄도 위험수위에 올랐다. 지난 13일 영등포역에서 노숙자 두명이 말다툼 끝에 몸싸움을 벌여 이 과정에서 노숙자 이모(61)씨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피를 흘리고 미동조차 없는 이씨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난 김모(45)씨는 달아나려 했지만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7분 뒤 경찰의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 응급처치 후 봉합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해 병원으로 후송하려 했지만 술에 취한 이씨가 이를 거부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이씨가 먼저 욕을 하며 시비를 걸어 왔다”면서 “부모욕을 하는데 누가 참을 수 있겠냐. 때리진 않았지만 밀치긴했다” 는 등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

노숙생활을 하던 남성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화물차 안의 건설공구를 상습적으로 훔치다 붙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2일 밤, 노숙자 김모(49)씨는 골목길에 주차된 화물차 안의 건설공구를 훔치다 꼬리를 잡혔다. 김씨는 지난 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 금천구, 관악구, 영등포구 등을 돌아다니며 27회에 걸쳐 절도를 저질렀다.
 

김씨가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생활비 마련 때문이었다. 김씨는 같은 범죄를 저질러 수감됐다 2010년 초 출소했다. 이후 특별한 직업 없이 영등포역에서 노숙생활을 했으나, 노숙이 장기화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다시 절도를 시작한 것.

갈 곳 없는 길거리 생활 “추위가 야속”
생계형 범죄 급증…부랑 외국인도 늘어

김씨는 박스포장용 끈으로 화물차 문을 열고 충전드릴, 전동드릴 등 비교적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공구를 빼내는 방식으로 약 1400만원 상당의 공구를 훔쳤다. 이렇게 훔친 공구는 3분의 1가격으로 중고거래상에 팔았고, 이 돈으로 여인숙 이용료와 식비 등을 충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모여 있는 영등포역에는 노숙자끼리 다툼이나 사고 등 노숙자 관련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고 말했다.

노숙자 중에는 외국인도 섞여 있다. 지난 10일 수년 전 한국에 들어와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던 외국인 노숙자 토머스씨가 담도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토머스씨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5년 전 영어교육 사업을 하려고 한국에 왔다. 이후 사업이 기울며 불법 체류자로 전락해 노숙자가 됐다. 반포 지하상가 등지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토머스씨는 올해 초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센터의 지원을 받아 서울역 인근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오랜 거리 생활로 온 몸에 종양이 생기고 손을 심하게 떠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토머스씨가 숨을 거두자 서울시는 장례식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아직 국적 확인도 정확히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대사관은 “우리 국민이 아니다”라고 밝혔으며 유품 정리 과정에서 발견된 영국 여권도 위조된 것으로 판명났다. 여성노숙자가 성폭행·임신 등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노숙생활 중 성범죄로 인해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거나 원치않는 출산을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간혹 자녀와 함께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의 안전도 아슬아슬하다. 현재 영등포역 부근 응급쪽방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는 여성 노숙자 최모씨도 7살 아들과 영등포역 대합실이나 영등포공원 등에서 노숙하다 발견됐다. 최씨는 지금도 낮이면 아들과 함께 PC방이나 영등포역 주변을 맴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많이 어눌하다. 최씨는 “딸도 있지만 지인이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직자와 가정불화 등의 사유로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거리노숙인 들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노숙인들을 쉼터에 입소시키거나 숙식, 의료서비스 제공, 알콜 재활 등의 자활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여성노숙인과 아이가 딸린 여성가족 노숙인을 위해서는 여성 및 여성가족쉼터를 별도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성거리노숙인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해 이들이 목욕, 세탁 등 생활상의 편의시설을 상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편 자활에 성공한 노숙자들은 거리·시설 노숙자 뿐 아니라 일용직노동자와 기초수급자를 아우르는 새로운 빈곤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노숙자는 “노숙자들은 주저앉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현 상황을 극복하고픈 욕구가 있다”며“직업훈련 등 좀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방안이 모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 노숙

노숙자 쉼터인 햇살보금자리 관계자는 “노숙자들이 뭔가를 스스로 만들어 일을 성취했을 때 그 만족감이 자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들의 달라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벼룩 간을 빼먹지” 노숙자 등쳐 먹은 사기꾼 

일자리 소개와 휴대폰 깡을 미끼로 노숙자 명의의 휴대전화를 각각 개통한 후 그대로 달아난 성인 남성 두 명이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들에게 공동으로 노숙자 두 명을 유인·감금한 혐의도 적용했다. 

지난 6월 A(41)씨는 대전 동구 정동 소재 대전역 광장에서 노숙자에게 접근해 “택배 일을 같이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휴대전화 2대가 필요하다”고 꼬드겨 시가 106만원 상당의 아이폰 한 대를 편취했고, B(35)씨는 같은 달 같은 장소에서 “내 대신 휴대전화를 개통해 주면 그 대가로 100만원을 주겠다”고 노숙자를 꾀어낸 후 노숙자가 실제 106만원 상당의 삼성 스마트폰을 개통해 오자 이를 건네받아 그대로 도주했다. 

이에 앞서 A씨와 B씨는 지난해 10월 대전역 지하도에서 노숙자 두 명에게 접근, 숙식제공을 미끼로 대전 중구 모처의 여관으로 유인한 후 “주민등록등본 등 서류를 주면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노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태도를 바꿔 욕설을 퍼붓고 몸에 새겨진 문신을 들춰내 위협하는 등으로 노숙자들이 다음날 오전까지 밖에 나오지 못하게 감금하기도 했다. 

대전지법 형사6단독(임민성 재판장)은 사기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공동감금)로 기소된 A씨(41)와 B씨(35)에게 각 징역 6월과 징역 8월을 선고했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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