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돈으로 본' 재벌가 도박왕 블랙리스트

2015.11.09 11:32:52 호수 1150호

억소리 나는 판대기…하룻밤 수억 베팅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기업인이 대거 포함된 도박판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됐다. 연루된 기업인은 12명, 판돈은 500억원을 훌쩍 넘겼다. 서민들은 평생 구경하기 힘든 돈이 하루밤새 도박 판돈으로 왔다 갔다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꽤나 맥이 풀리는 모양새다. 과거에도 재벌가는 어마어마한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여 서민들을 분노케 했다. 과거 회장님들이 판돈으로 얼마나 탕진했는지 확인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심재철)가 해외 도박 혐의로 재판에 넘긴 기업인은 모두 12명이다. 이들이 사용한 도박판돈 규모는 드러난 것만 525억원에 이른다. 



기업인들이 거대 판돈을 걸고 원정 도박을 벌인 혐의가 드러나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한 네티즌은 “서민들은 평생 모아도 구경할 수 없는 돈을 해외서 물 쓰듯 썼다”며 “기업활동은 국내에서 하고 돈은 해외에서 낭비한다”고 지적했다.

재벌가들의 도박 사랑(?)은 연혁이 깊다. 1977년 7월에는 대한그룹의 창업주 설경동의 차남 설원철이 대규모 도박판을 벌여 물의를 일으켰다. 설원철(당시 40)씨 등 6명은 상습도박을 벌이고 도박장을 직접 개장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서울 중구 충무로2가에 있는 L관광호텔에서 하룻밤 새 1000여만원이 넘는 판돈을 놓고 포커판을 벌였다. 모두 열 두번에 걸쳐 오고간 판돈 총액은 2억8000만원에 달해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자장면 값이 2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하루밤새 오고간 판돈이 대략 75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검찰은 도박판 현장에 급습해 미화 5199달러, 엔화 2만2500엔, 한화 110만원 등 361만2000원의 판돈을 회수했다.

검찰 원정도박 기업인 수사 마무리
해외 들고간 도박자금에 ‘입이 쩍’


설원철씨는 이후 대한그룹의 경영권에서 멀어지는 모습이었다. 대한그룹은 현재 대한전선, 대한제당, 대한방직 등이 주요 계열사가 있다. 

그러나 창업주 설경동 회장은 장남 설원식 전 회장에게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물려주고 바로 3남에게 대한전선을 줬으며 4남인 설원봉 회장에게 대한제당을 물려줬다. 설원철 씨는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고문직을 맡기는 했으나 기업을 직접적으로 이끌어 본 적이 없어 당시 도박파문으로 창업주의 눈 밖에 난 것 아니냐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1992년에는 여성 기업인이 100억원대 도박판에 기웃거리다 검찰의 수사망에 덜미를 잡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춘자 한국광학 대표는 87년부터 강남일대서 벌어진 100억원 규모의 도박판에 발을 담군 혐의로 수배를 받았다. 이 대표를 비롯해 도박에 빠진 도박꾼들은 하루 평균 300만∼1800만원의 판돈을 걸고 마작도박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재벌2세 오종섭 동양백화점 전 부회장도 도박판에 거액을 베팅해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았다. 그는 1996년 5월부터 1997년 6월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한국인마케팅 최모씨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355만달러를 빌려 도박으로 탕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그를 구속기소했으나, 보석금 1억원을 내고 풀려났다. 당시 도박 규모도 문제였지만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다.

동양백화점은 대전 지역의 향토기업으로 오랜 사랑을 받아왔지만 이후 경영난이 시작되면서 한화갤러리아에 팔렸다. 동양백화점 한때 최대주주였던 오 전 부회장은 2011년 향년 56세를 일기로 별세햇다.

김인태 경남종합건설 대표는 1997년 20만달러의 도박자금을 해외로 밀반출 한 혐의로 도피행각을 벌이다 지난 2002년 구속됐다. 김 회장은 마카오 등지에서 수억원의 도박을 벌이며 외화를 반출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7∼20여 차례 마카오호텔 카지노 등에서 원정도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박 판돈은 크지 않았지만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IMF 등으로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때라 국민적 분노는 컸다. 김 대표는 50만달러를 빌려 도박을 하고 같은 해 12월 위조 여권을 사용해 해외에서 도피행각을 이어오다 덜미를 잡혔다.

장소·성별불문 
나이·시대불문

범삼성가에서도 도박 파문이 있었다. 주인공은 창업주 이병철 차남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이다. 1975년 이창희 전 회장(당시 43)은 장택용 진로 부사장, 김국남 범진전기 대표 등 6명의 기업인들과 도박을 벌인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 


당시 하루밤새 오간돈은 500만원이 넘었으며 총 판돈은 1억2000만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관들이 당시 현장을 급습했을 때 회수한 돈은 1000만원 규모. 이들은 김 대표 집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모여 약 23회에 걸쳐 상습적으로 도박판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회장 입장에서는 1966년 사카린 사건으로 구속되는 아픔을 겪고 난 이후 10년 만의 기소였다. 당시 후계구도에서 밀리고 있던 이창희 전 회장에게 도박사건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이후 이 전 회장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눈에 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삼성가 계열사를 물려받지 못하고 1987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재계에서는 장남 이맹희 CJ명예회장과 함께 ‘불운한 삼성가 황태자’로 분류한다.

1978년 김창원 거화회장도 원정도박으로 거액을 탕진했다. 그가 날린 도박자금은 23만달러 규모였다. 당시 외화유출에 대해 정부 당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시절이라 비난의 강도는 더욱 거셌다. 

서울지검이 김 회장을 구속기소한 혐의는 외국환관리법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외화유출) 이었다. 해외로 빼돌린 외화규모는 38만달러 수준으로 전해진다.

당시 거화그룹은 1970년대까지 재계 3위 자리를 굳혔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김 회장의 도박으로 회사는 경영난에 빠지며 신진학원을 제외한 주요 계열사를 다른 기업에 빼앗기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러니 한 것은 김 회장의 아들도 도박으로 구설에 올랐다는 점이다. 검찰에 따르면 그의 아들 김용식 신진 학원 이사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수십억원의 도박자금을 탕진한 혐의를 받았다. 김 이사장이 2009년 5월부터 날린 도박자금은 263만달러 수준이다. 

검찰은 아버지의 전력(?)을 근거로 외화 밀반출 혐의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70년대부터 재계 타짜들 보니…
후계자 탕진으로 기업 사라져


한보그룹의 왕자님도 거액의 도박판 스캔들이 있다. 1997년 한보그룹 정태수 당시 총회장의 차남인 상아제약 회장 정원근(당시 35)씨는 1996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도박으로 거액을 날린 혐의로 검찰에 기소를 당했다. 서울지검 외사부(유성수 부장검사)에 따르면 30만달러의 자금을 빌려 카지노 도박을 했다. 

당시 외국환관리법에 따르면 1만달러 이상의 외화를 송금할 경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정 회장은 이를 어겼다.

특히, 정 전 회장이 도박을 했을 무렵은 한보그룹이 경영난에 빠질 무렵이어서 비난의 강도는 거셌다.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 한보철강은 1997년 15억원의 자금을 막지 못해 부도처리된다. 이후 지급 보증을 섰던 한보계열사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지면서 한보그룹은 공중분해 된다. 

한보그룹 부도 원인을 정원근 회장의 개인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라는 평가지만 오너일가의 고삐풀린 경영 마인드를 방증했다는 견해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정태수 전 총회장은 1997년 5월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며, 국세청이 발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려 50년 전인 1966년에 하루 판돈 2000만원이 넘는 고액이 오고간 도박판도 있었다. 당시 인천올림포스호텔 유화열 회장을 비롯해 전락원 구왕건설사 대표 등 3명이 대규모 카드 도박 혐의로 구속된 것. 유 회장 일행은 호텔 등을 전전하며 도박판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유 회장은 카지노를 이용해 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 회장은 사위 함양섭 회계계장이 손님으로 가장해 딜러가 보관중인 게임용 칩을 현금으로 바꿔 수입금액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90년부터 3년 동안 세금 14억3000만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았다.

모두 정신없던
IMF 때도 도박

1997년 당시 북악파크호텔 구판서 회장의 4남 구상회(당시 37)씨가 100만달러를 빼돌려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구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에 대학을 졸업한 뒤 국내로 비디오테이프를 수입하는 사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악파크호텔은 70~80년 북악을 대표하는 호텔이었으나 1990년 중후반을 기점으로 쇠락의 길을 접어들며 2003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새로운 도박왕 후보는?

앞서 검찰은 올해 4월부터 기업인 연루 도박사건 수사에 착수해 문식 켄오스해운 대표(56),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0), 목사를 자칭하며 요양원을 운영한 박모 씨(54), 폐기물처리업체 대표 임모 씨(53) 등을 재판에 넘겼다. 정 대표는 100억원대의 도박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문 대표는 50억원에 가까운 돈을 탕진한 혐의다. 임씨는 회삿돈 42억원을 횡령해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금융투자업체 P사 대표 조모(44)씨, 경비대표업체 한모(65)씨 등이 검찰의 수사망에 걸렸다. 박순석 회장은 13억원 가량의 도박판을 벌였으며, 장 회장은 86억원 도박판을 벌였다. 조 대표는 최소 20억원대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으며, 한모씨는 35억원의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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